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Aug 28. 2022

8월 28일 송영감의 하루

어느 마을의 이야기

아주 옛날 어느 마을에 송영감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송영감은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노인이었지만 젊은 사람 못지않게 체력과 힘이 좋아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또한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공경했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송영감을 찾아갔고 송영감은 고민을 하다가 답을 내려줬다. 신기하게도 송영감의 말은 잘 맞아떨어졌고 그가 하라는 행동대로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마을에서 송영감의 말은 절대적이었고 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송영감을 꿈을 자주 꿨다. 마을에 어떤 사건이 생기기 전에 송영감은 항상 특이한 꿈을 꿨다. 한 번은 그가 물에 빠지는 꿈을 적이 있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송영감은 물속에서 어떤 여인을 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굉장히 기괴하게 생겼었고 송영감은 단번에 그녀가 화를 불러올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필사적으로 물에서 빠져나온 송영감은 여인을 피해 마을로 돌아갔다. 그러나 마을에는 사람들이 없었고 불안한 생각이 든 송영감은 다시 마을을 빠져나와 물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이번엔 아까 봤던 여인이 마을 사람들을 물에 빠뜨리고 있었고 송영감은 여인을 쫓아내려고 했다. 그때, 송영감은 꿈에서 깼고 마을에 이상한 일이 닥칠 것이라는 것을 감지했다. 그는 꿈속에서 물을 봤으니 마을에 홍수가 생길 것이라 판단했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다가올 홍수를 대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에 많은 비가 내렸고 다른 마을에서는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으나 송영감네 마을은 큰 피해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송영감의 꿈 덕분에 마을이 살아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몇 번 송영감의 꿈 덕분에 마을이 살아나자 나라 곳곳에서는 송영감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송영감이 하늘의 계시를 받은 신령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가 귀신의 힘을 얻어 마을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존재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의 신비로운 소문을 듣고 송영감을 만나 자신들의 미래를 봐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문은 곧 왕의 귀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왕은 마을을 살린 송영감의 업적을 치하하면서도 그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했다. 그래서 왕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관리를 보내 송영감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라고 명령했다. 왕은 관리에게 만약 송영감이 귀신의 소리를 듣거나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그의 목을 치라는 명령도 내렸다. 

왕의 명을 받은 관리는 곧장 채비를 하고 마을로 갔다. 마을에서는 중앙에서 온 관리가 온다는 말에 잔치를 준비했다. 실질적인 마을의 이장 자리를 맡고 있는 송영감은 관리를 대접하는 역할을 했다. 관리는 송영감과 술을 함께 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봤다. 송영감은 양반의 교육을 받아본 적은 없는 사람이었지만 무척이나 기품이 있고 예의도 있는 사람이었다. 관리는 송영감의 인물 됨됨이를 보고 올곧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왕의 명령도 있었기 때문에 송영감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날 밤, 송영감은 또 꿈을 꿨다. 산에서 산적들이 나타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꿈이었다. 그리고 산적의 얼굴은 관리의 얼굴과 똑같았다. 꿈에서 깬 송영감은 마을에 차차 닥칠 위기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산적의 얼굴을 한 관리의 모습 때문에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의 꿈에 따르면 관리로 인해 마을에 위기가 생기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관리를 쫓아내거나 그를 해하면 자신의 목숨을 내놔야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송영감은 며칠 동안 전전긍긍하며 마을의 경계에만 신경 썼다. 관리는 송영감의 그런 행동을 유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마을에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송영감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안심하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관리는 마을 사람들을 수소문하며 혹시나 있을 송영감의 부정을 찾아다녔다. 송영감은 관리가 자신의 잘못됨을 묻고 다닌다는 것을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그러던 중 관리는 석순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석순은 마을에서 송영감을 거의 유일하게 싫어하는 남자였다. 한 번은 송영감이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면서 마을의 위기를 막으려고 했는데 그때 송영감이 잘못 생각해서 석순의 아버지가 목숨을 잃은 적이 있었다. 석순은 그 이후로 송영감이 거짓된 꿈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그런 석순을 뭐라 하고 송영감을 옹호했다. 석순은 그런 마을 사람들도 미웠고 송영감도 증오스러웠다. 결국 그는 마을을 떠나 산속에 집을 짓고 살았다.

관리는 석순의 소문을 듣고 산으로 가서 그를 찾았다. 송영감의 부정을 찾고 있는 관리의 소문을 들은 석순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송영감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고했다. 대부분은 석순의 거짓말이었고 나머지는 과장이었지만 관리는 그 정도면 송영감을 관아로 압송할 충분한 명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물증이 없어 관리는 고민이 되었다. 관리가 물증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석순은 마을에서 들리는 한 소문을 말했다.

석순은 마을이 위기에서 구해지면 마을 사람들은 송영감에게 재물을 바치는데 이중에는 역적과 관련된 물건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10여 년 전, 이곳으로 귀양을 온 역적이 하나 있었는데 그와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관리는 이야기를 듣더니 제법 그럴싸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관리는 석순에게 자신이 조정으로 돌아가면 왕에게 잘 말을 할 테니 송영감의 집에 들어가서 그 물건을 훔쳐오라고 지시했다. 석순은 도둑질을 하는 것이 두려웠지만 관리의 명령이니 한번 자신이 해보겠다고 했다. 

그날 밤, 석순은 송영감의 집으로 들어갔고 물건을 훔치는 데 성공했다. 관리는 석순이 가져온 물건을 보고 역적의 직인이 찍힌 물건임을 확인했다. 관리는 미소를 지었다. 날이 밝으면 송영감을 관아로 압송할 계획이었다.

다음 날, 관리가 압송의 명을 내리려고 하는데 송영감이 그를 찾았다. 관리는 송영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송영감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어제 관리가 무서운 도깨비에게 찢기고 그 시신은 산속에 있는 연못에 버려지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영감은 자신의 꿈이 틀린 적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이곳을 떠나 조정으로 돌아갈 것을 관리에게 권유했다. 송영감의 말을 듣던 관리는 크게 웃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내 네놈의 속셈을 모를 줄 알고? 잘됐구나. 이게 무엇인지 기억나느냐? 이건 너의 집에서 나온 물건이다. 이건 역적의 물건이지. 어디 감히 허튼 술수로 마을 사람들과 다른 백성들을 현혹하려고 하느냐? 네놈이 역적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여봐라, 밖에 누구 없느냐, 어서 이 죄인을 포박하라”


송영감은 바로 죄인 신분이 되었고 관리는 송영감을 신문하였다. 송영감은 자신의 억울함을 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감옥에 갇힌 송영감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다음 처분을 기다려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송영감이 억울하다며 그의 죄를 다시 판단해줄 것을 관리에게 요청했지만 그는 전혀 듣지 않았다. 

관리는 그날 밤, 잠에 들었는데 기이한 꿈을 꾸었다. 도깨비의 얼굴을 한 사내가 계속해서 자신을 쫓아왔고 결국 그에게 잡혀먹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관리는 식은땀을 흘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관리는 다시 잠을 자려고 했지만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 지르는 소리에 놀라 문을 열어 확인했다. 그러자 밖에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관아 곳곳에 불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놀란 관리는 무슨 일인지 확인하니 감옥에서 큰 불이 났다고 했다. 주위를 살펴보던 관리는 불을 잡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어서 달아나려고 했다. 그는 달아날 곳을 찾다가 석순이 있는 집이 생각나 산으로 도망쳤다. 

말을 타고 관리는 석순의 집으로 들어갔다. 관리는 석순을 찾았지만 집에서 그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관리는 석순의 방문을 열었는데 방 안에서 펼쳐진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석순이 누군가에게 난도당해 죽어있는 것이었다. 겁에 질린 관리는 혹시 범인이 주위에 있을까 칼을 찾았지만 칼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서둘러 도망치다 보니 칼을 챙기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었다. 

관리는 이곳에 있으면 자신도 죽은 목숨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빠져 나가려고 했다. 관리가 말을 타고 나가려고 하는데 눈앞에 무언가 이상한 형체가 보였다. 관리는 눈을 감고 도망치려 했지만 이윽고 말이 이상한 형체가 휘두른 칼에 찔려 쓰러졌다. 관리는 무서워 뛰어가려고 했지만 이미 다리에 힘이 풀린 다음이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형체가 그에게 다가갔다.

관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바로 앞에 도깨비 가면을 쓴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리는 밤에 꾼 꿈이 생각나서 더욱 무서워했다. 그러나 두려움은 곧 아픔으로 바뀌었다. 도깨비 가면은 관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고 곳곳에 피가 낭자하기 시작했다. 관리는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도깨비 가면을 향해 원망의 눈빛을 보내고 있을 때, 그의 눈앞에 가면이 떨어졌다. 관리는 힘없이 위를 쳐다봤다. 자신을 숙인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관리를 죽이려 했던 사내는 바로 송영감이었다. 관리는 피를 흘리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며 송영감을 역적이라고 불렀다. 송 영감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관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관리는 조정에서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송영감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이게……네… 놈의 꿈… 이야기인… 것이냐? 거짓을 말하고… 네놈이 범죄를.. 저… 질러 그… 런 것…이냐?”


관리가 남은 힘으로 어렵게 송영감에게 말했다.


“아니요. 나리, 소인은 항상 예지몽을 꾸는 것입니다. 소인은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도 산적 놈들이 마을을 해하는 꿈을 꿨는데…. 그게 석순이 놈이었지 뭡니까? 저는 석순이 놈에게서 마을을 지켰고 나리께서는 소인과 마을을 같이 구하다가 석순이 놈한테 목숨을 잃으신 것이다….라고 다른 나리가 오시면 소인이 고하겠습니다.”


송영감은 차분하게 말했다.


“네… 네놈이.. 감… 히”


관리는 눈을 부릅뜨고 송영감을 쳐다봤다. 송영감은 그의 눈빛을 외면하고 발길을 돌려 마을 방향을 쳐다봤다. 그리고 마을로 돌아가려던 송영감은 다시 관리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아…. 예지몽이 아닌 게 하나 있습니다. 소인이 도깨비에게 나리께서 죽임을 당한다고 한 그 꿈…. 그건 사실 거짓이옵니다. 소인이 한 경고였지요. 그런데 그것도 소인의 예지몽이 되었으니…. 쯧쯧. 어찌 앞날을 못 보시는 것입니까?”


송영감은 이미 죽은 관리를 한참 쳐다봤다. 곧이어 마을 사람 몇몇이 송영감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관리의 시신과 석순의 시신을 수레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다시 산속 깊은 곳으로 가서 연못이 있는 곳에 도착한 그들은 시신을 포대기에 꽁꽁 싸매고 피가 새지 않게 하여 돌을 매달아 연못에 빠뜨렸다. 산속의 연못은 꽤나 깊어 그들의 시신을 누군가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관아가 불타 증거가 없어졌기 때문에 조정에 송영감의 죄가 넘어갈 일은 없었다. 대신 송영감은 석순이라는 산적이 마을로 쳐들어 와서 관아가 불타고 관리가 죽는 일이 벌어졌고 자신도 크게 다친 것으로 마을 사람들과 입을 맞췄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온 관리는 송영감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왕은 이번 사태가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반란이 일어나면서 왕은 권좌에서 내려왔다. 이제 송영감을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오늘도 마을에는 송영감의 예지몽을 듣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벼슬을 하는 관리들도 있었다. 송영감은 그들에게 다가올 불운을 점지해주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런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송영감을 칭송하며 그에게 크고 작은 재물을 바쳤다. 송영감이 꿈을 꾸는 만큼 그의 곳간과 창고는 점점 재물로 넘쳐났다. 

이전 01화 9월의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