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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29. 2022

8월 29일 정성훈의 하루

담배 정치

원래 나는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했다. 20살이 넘어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담배를 피기 시작했을 때, 나도 담배를 배웠지만 곧 내 체질과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담배를 멀리했다. 솔직히 무슨 맛으로 피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나 군대에 가서 처음으로 담배가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굉장히 엄격하던 선임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나를 매일 갈궜다. 나는 그가 너무 무서워서 그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나는 혼나지 않으려고 더욱 열심히 했지만 그는 어떻게든 내 틈을 찾아내서 나를 혼냈다. 그의 인정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이렇게 살다가는 죽겠다 싶어서 선임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담배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와 친한 사람들은 모두 담배를 같이 피우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담배를 같이 피우는 후임들을 잘 갈구지 않았다. 단체로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혼내는 정도였지만 그마저도 내게 하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약했다. 나는 이것이 그에게 혼나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선임과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거의 피워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며칠 지나니 괜찮아졌다. 무엇보다 선임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고 그와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선임은 내 실수를 대부분 눈 감아줬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혼나고 있으면 그가 어느 정도 커버 쳐줬다. 내 군생활은 덕분에 굉장히 수월해졌다. 그리고 그 선임이 제대를 하고 나서는 다시 담배를 끊었다.


아주 가끔 담배 생각이 났지만 피우지 않아도 내가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취업을 하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나는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다시 담배를 피워야지만 이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시점이었다. 


회사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우리 회사에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크게 2곳이 있었다. 하나는 회사 1층이었고 하나는 회사 옥상이었다. 1층은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아 그냥 빠르게 담배를 피우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옥상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옥상에는 아주 구석진 곳이 있었는데 이곳은 하늘을 가리고 있어 비가 와도 비를 할 수 있고 조금 막혀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았다. 그리고 이곳은 아무나 갈 수는 없었다. 보통 부장급 이상이 되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장소였다. 그래서 여러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출세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옥상에 와서 일부러 담배를 폈다. 윗사람들의 눈에 띌 수도 있었고 운이 좋으면 구석진 자리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과장은 시도 때도 없이 옥상에 가서 담배를 폈다. 나는 처음에는 그가 심한 골초라고만 생각했지만 사정을 알고 나서는 그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조금씩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신입이기 때문에 아직 부장들의 대화에는 절대 낄 수가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나 혼자 가면 새파랗게 어린 신입이 벌써부터 줄 서기를 한다고 욕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과장을 이용했다. 과장에게 혼자 담배 우면 심심하지 않냐면서 그를 졸졸 따라다녔다. 다만 거의 매시간 옥상으로 가는 과장만큼 올라가지는 않았고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퇴근 전에 한 번, 이렇게 하루에 세 번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은 사내 정치의 온상이었다. 사내에 도는 이상한 소문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퍼뜨리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들끼리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과장이나 나처럼 윗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들끼리 나눈 정보가 남에게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작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려서 남을 물 먹이는 지략을 펼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생산되고 재가공되고 음모로 만들어진 정보는 다시 가공되어 사내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담배를 피우지는 않지만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소문을 조금은 늦게 들을 수는 있었다. 담배도 안 피우고 커피도 안 마시는 사람들은 가장 늦게 정보를 접하거나 그런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회사를 평화롭게 다녔다. 나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면 별생각 없이 회사를 다니는 부류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옥상에서 나오는 정보 중 정말 기밀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더 중요한 이야기는 개방된 옥상이 아닌 부장급 이상의 방이나 저녁의 술집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옥상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오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옥상을 끊을 수가 없었다. 


오늘도 평상시와 같이 과장과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김차장이 우리를 불렀다. 김차장이 우리를 부른 곳은 바로 구석진 자리였다. 우리는 놀라면서 우리가 이곳에 있어도 되냐고 말하니 김차장은 ‘뭐 이상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데, 어때?’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옆팀 곽부장이 등장했다. 내년이 되면 임원이 된다는 소문이 파다한 회사에서 꽤나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곽부장에게 인사를 하며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러자 곽부장은 “내가 무섭냐?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담배를 털며 곽부장을 마주했다. 옆자리 과장은 곽부장에게 자신을 어필하려고 요새 자신이 하는 일을 조금 과장해서 그에게 설명했다. 곽부장은 차장이 뭐라 하든 별로 관심 없는 표정이었다. 그는 나에게 호기심이 생겼는지 내 이름과 하는 일, 그리고 사는 곳을 물어봤다. 곽부장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훑었다. 그러면서 조그만 목소리로 ‘그 녀석, 똘똘하게 생겨서 일은 싹싹하게 잘하겠네.’라고 말했다. 나는 표정이 굳어서 긴장한 상태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곽부장은 계속 담배를 피우면서 김차장을 슬쩍 쳐다봤다. 김차장은 곽부장의 표정을 살피더니 우리 보고 이제 사무실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과장은 김차장의 신호를 읽고 나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우리가 떠나자 김차장은 우리를 등지고 섰다. 마치 이제 다른 사람의 접근을 등으로 완전히 차단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아마 이제 그들은 비밀스러운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과장은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곧 회사의 실세가 될 곽부장과 인사를 한 것은 좋은 일이라며 이제 자주 올라가서 곽부장이 보일 때마다 인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장은 야심이 큰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눈에 띄는 요소가 굉장히 적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당분간 그를 따라다녀서 손해 볼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군대에서도 그랬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몸에도 안 좋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이렇게 해서 얻는 것은 일말의 출세에 대한 가능성과 병밖에는 없을 것이다. 


오늘도 회사의 옥상에는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마치 안개와 같은 담배 연기 사이로 오늘도 수많은 이야기와 계약이 오가고 있었다. 아직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낄 수는 없지만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언젠가 나에게도 그들의 대화가 들리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연기가 다 걷혔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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