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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30. 2022

8월 30일 김정범의 하루

가구 교체

정범은 오늘 하루 휴가를 내고 가구 매장을 돌아봤다. 집에서 약 15년 정도 사용한 침대의 프레임이 주저앉아서 새로운 침대를 사기 위해서였다. 정범은 가구에 큰돈을 쓰지 않고 오래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정범은 이번에도 프레임을 고쳐서 계속 사용하려고 했지만 혼자 사용하는 가구가 아니다 보니 아내의 의견 역시 중요했다. 아내는 새로운 침대를 사기를 원했고 정범은 그녀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정범은 아내와 차를 타고 가구거리로 유명한 곳으로 갔다. 집 근처에 해외 유명 가구 회사의 매장이 있었지만 그곳의 디자인은 부부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들은 보다 클래식한 디자인을 원했기 때문에 그런 가구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부부는 수많은 가구가 전시된 한 매장에 들어갔다. 손님들은 거의 없었고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틀어놓은 곳에서 부채질을 하는 사장이 한 명 앉아있었다. 정범의 아내는 정범에게 귓속말로 “여기 말고 다른데 가자”라고 속삭였지만 정범은 매장의 분위기보다는 매장에 전시된 가구들에 매료되어 아내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정범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가구를 보자 부채질을 하며 핸드폰을 보던 사장은 잠시 정범에게 눈길을 주다가 이내 다시 핸드폰을 쳐다봤다. 정범이 가구에 대해서 사장에게 묻자 사장은 퉁명스럽게만 대답했다. 아내는 그런 사장의 태도가 불만이었지만 정범은 개의치 않아했다. 

침대 말고 다른 가구를 먼저 확인하던 정범은 한 침대 앞에 멈춰 섰다. 정범의 마음에 쏙 드는 침대였다. 정범은 아내를 불러 한번 누워보라고 말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창피해했다. 정범이 침대에 누우려고 하자 사장은 “어어 안돼요. 눕지 마요!”라며 소리를 질렀다. 정범은 민망해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내는 정범의 팔을 치면서 어서 나가자고 눈치를 줬다. 정범은 침대가 마음에 든 지 계속 떠나지 못하다가 정범을 버리고 매장 문 밖으로 나가버리는 아내에게 달려갔다. 정범은 사장에게 “잘 보고 갑니다”라고 말했지만 사장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매장 밖으로 나온 아내는 “왜 이런 매장을 들어갔냐”, “왜 누워보려고 했냐”, “딱 봐도 손님 없고 사장 마인드도 별로인 거 모르냐”라며 정범을 쏘아붙였다. 정범도 화가 나서 뭐라고 반박하려고 했지만 쓸데없는 싸움만 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미안하다”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서로의 마음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지만 둘은 다시 차를 타고 다른 매장으로 갔다. 이번에 간 곳은 한 국내 브랜드의 쇼룸이 있는 곳이었다. 모던하면서도 전통적인 스타일의 가구가 많아 특별히 호불호가 갈리지는 않는 곳이었다. 아내는 이번에는 마음에 들어 하며 매장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정범은 아까 본 가구를 더 마음에 들어 했지만 지금 있는 곳도 나쁘지는 않아 가볍게 가구를 구경했다. 이전 매장과는 다르게 손님들이 가구를 만지고 눕거나 앉는 것에 대해 매장 직원들은 거의 터치하지 않았다. 매장에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이 있었다. 

잠시 후, 아내는 정범을 불러 “이 침대는 어때?”라고 물었다. 하지만 정범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침대에는 전등도 달려있었고 콘센트도 있었다. 정범은 침대에 그런 것이 있을 필요가 있냐는 입장이었다. 아내는 “당신 잠들기 전에 맨날 핸드폰을 보는데 머리맡에 둘 때 충전도 되고 좋지 않아?”라며 정범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범은 아내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충전이야 다음 날 해도 되는 거고 집에 콘센트가 없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기능으로 돈을 더 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정범의 논리였다. 아내는 자신이 정범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다른 침대를 보러 갔다.

몇 벌의 실랑이 끝내 마침내 부부는 두 사람 모두가 마음에 드는 침대를 발견했다. 아무런 기능도 없고 침대라는 본연의 가치에 충실하며 튀지도 않고 30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을 무난한 디자인의 침대였다. 가격도 부부가 생각한 예산에 딱 맞는 것이었다. 정범은 매장 직원에게 침대를 바로 구매하고 싶다고 말했다. 직원은 침대에 몇 가지 옵션을 더 붙여 판매하려고 시도했지만 정범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결국 포기한 직원은 견적을 불러주고 구매를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배송 가능한 일정을 확인하던 직원은 이 침대가 인기가 많아서 3주 후에 수령 가능하다고 정범에게 안내했다. 정범은 3주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전시되어있는 거라도 달라고 했지만 직원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범은 고민에 빠졌다. 침대 프레임이 망가져서 당장 가구를 받고 싶은데 3주 이상은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정범에게 3주 동안 요를 깔고 자면 되니 기다리자고 했지만 정범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을 지켜보는 직원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부부는 차선책으로 콘센트와 조명이 있는 침대를 구매했다. 가격은 조금 더 나갔지만 일주일에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정범이 이 침대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직원은 정말 좋은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은품을 몇 개 챙겨 주겠다고 정범에게 말했다. 정범은 사은품이 무엇인지 확인하더니 웃으면서 직원에게 고맙다고 했다. 

집으로 가는 길, 정범은 자신의 예상보다 예산을 많이 썼지만 사은품도 받고 빨리 침대를 받을 수 있어 기뻐하고 있었다. 아내는 처음에 자신이 마음에 든 침대를 살 수 있어서 좋아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부부에게는 꽤나 괜찮은 가구 쇼핑을 한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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