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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31. 2022

8월 31일 박군길의 하루

월말의 감사

군길은 독특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매월 말이 되면 한 달 동안 있었던 일을 되짚어 보면서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이를 ‘월말의 감사’라고 불렀다. 보통 군길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XXX님. 000 주식회사의 박군길 사장입니다. 이번 달 도와주신 덕분에 일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귀하의 회사도 저희와의 협업을 통해 하시는 일에 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달 마무리 잘하시고 다음 달에도 화이팅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000 주식회사 박군길 사장 배상”


군길은 여기에 보내는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으면 살을 붙였다. 감사의 인사를 표할 사람이 10명이든 100명이든 군길은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군길과 처음으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월말에 날아오는 메시지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군길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는지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 다짜고짜 아쉬운 점을 토로하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군길은 그런 메시지들도 반겼다. 자신의 감사 인사를 좋게 받아들이든 안 좋게 받아들이든 군길에게는 소중한 내용들이었다. 


군길이 꼭 감사 인사만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한 달 동안 한 일 중에 미안하거나 실수한 것이 있으면 이에 대해서도 꼭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역시 이에 대해 따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군길의 태도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군길의 메시지 자체를 압박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군길은 매달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군길이 감사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스마트폰을 구매하면서부터였다. 친구들끼리 메시지로 덕담을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던 군길은 사업적으로 엮인 사람들에게도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군길의 이런 태도에 감사해하는 사람이 많았고 이를 통해 사업이 더 잘 된 적도 있었다. 그 이후로 군길은 매달 “월말의 감사”를 본격적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이제는 보통 한 달에 70명 이상의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군길은 직원들에게도 매달 메시지를 보냈다. 파트너가 아닌 사장에게 받는 메시지는 직원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군길에게 혼나다가 갑작스러운 사장의 감사 인사에 당황하는 직원도 있었다. 군길의 이런 태도가 가식이라고 생각하는 직원도 있었다. 심지어 몇 달 전 퇴사한 직원에게도 메시지를 보내기도 해서 진심으로 군길에게 화를 낸 직원도 있었다. 


군길이 매달 월말에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업계 사람들이라면 거의 다 아는 것이 되었다. 거의 똑같은 감사 인사이다 보니 대부분 군길의 메시지에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군길의 인사를 매달 받는 사람들 중 일부는 군길의 메시지를 스팸 메시지처럼 무시하기도 하였다. 군길도 이런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사업적으로나 경영적으로 큰 의미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군길은 아직까지도 메시지를 보냈다. 그에게는 그것이 습관이었고 안 하면 불안한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군길은 오늘도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달은 메시지를 보낼 사람이 120명이나 되었다. 군길은 120명에 해당하는 메시지를 모두 하나하나 고쳐 썼다. 사람의 이름을 달리했으며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용을 덧붙였다. 그렇게 모든 메시지가 다 만들어지자 이제는 자신이 보낼 사람과 내용을 대조하면서 실수가 없는지 2~3번 체크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120개가 넘는 메시지를 보내는 동안 답변들도 도착했다. 하지만 군길은 메시지를 계속 보내야 했기에 답변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군길은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는 데에만 일과의 절반을 사용했다. 


모든 메시지를 보내고 군길은 뿌듯함을 느꼈다. 군길은 이 뿌듯함의 순간을 위해 메시지를 보냈다. 감사의 인사라고는 하지만 사실 군길의 마음을 위한 행동이었다. 군길은 감사 인사에 대한 답변을 확인 후 다시 답변을 했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군길은 퇴근을 하지 않았다. 이제 원래 본인이 해야 할 다른 업무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군길은 월말이 되면 밤이 되어서야 업무를 처리했고 이 때문에 몇몇 직원들은 강제로 야근을 해야 했지만 한 번도 군길이 이에 대해 미안하다는 소리를 한 적은 없었다. 직원들은 군길이 보낸 감사 메시지를 보고 한숨을 쉬며 자신의 사장과 월말마다 야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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