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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Sep 01. 2022

9월 1일 김연희의 하루

개강

대학생의 방학이라는 것은 꽤나 길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 방학은 어제로 완전히 끝나고 오늘 나는 다시 학교로 갔다. 방학 때도 몇 번 학교를 온 적이 있지만 개강을 하고 학교에 오니 모처럼만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아직 더운 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가을의 학기가 시작되었음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었다. 


개강 첫날이라 학교에 안 온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와 가장 친한 현주와 예서는 먼저 강의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학기에는 현주와 예서와 같이 듣는 수업이 많았다. 수강 신청을 할 때 일부러 시간을 맞췄는데 다들 원하는 수업 수강에 성공해서 우리들은 계속해서 수업을 같이 들을 수 있었다. 1~2 과목 정도만 서로의 취향에 맞게 다르게 했다. 


현주와 예서는 학기 초부터 친해진 친구들이었다. 서로 취미나 좋아하는 연예인도 같았고 말도 통하는 것이 많아 우리가 친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비밀과 연애 이야기를 공유하며 더욱 친해졌다. 더 좋은 학교를 가고 싶은 욕심 때문에 학교에 입학하고 후회되는 것도 몇 개 있었지만 현주와 예서를 알게 된 것은 내가 학교를 다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나는 현주와 예서에게 인사하고 둘 사이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바로 지난주에도 우리는 밖에 만나 놀았지만 마치 몇 달은 못 본 사람처럼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물었다.


“어, 연희야. 너도 이 수업 듣는구나?”


우리끼리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내 앞에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같은 학과 선배인 선우 오빠였다. 


“네. 안녕하세요. 오빠. 잘 지내셨죠?”


나는 웃음을 지으며 선우 오빠에게 인사했다. 현주와 예서는 조금 반가워하지 않는 표정으로 선우 오빠에게 인사했다. 


“어.. 그래. 아 현주랑 예서도 안녕? 이거 조별 과제 있는 수업인데 우리 같이 할래?”


선우 오빠는 볼이 빨개지면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빠. 저 근데 죄송한데 민재도 이 수업 같이 들을 거라서요. 보통 조가 4명이라던데…죄송해요.”


예서가 빠르게 대답했다. 


“아… 하하 그래? 난 괜찮아. 나도 동현이나 수연이도 아마 올 거라… 하하 “


선우 오빠는 당황해하면서 다시 앞으로 돌아봤다. 굉장히 민망해하고 있었다.


홍선우….


선우 오빠는 20학번으로 이른바 코로나 학번의 불행을 바로 겪은 사람이었다. 코로나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바로 휴학을 하고 군대로 갔고 지난 학기부터 복학해서 학교 생활을 본격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선우 오빠와 같은 처지인 동현이라는 오빠와 함께 복학생 무리를 만들어 다녔다. 수연 언니도 20학번이었는데 동기인 선우, 동현 오빠와 함께 친하게 몰려다니는 무리 중 하나였다. 수연 언니는 스트레이트로 학교를 다녀 이미 3학년이었지만.  


예서의 이야기에 나오는 민재는 우리와 동기인 남학생이었다. 민재는 예서와 올해 4월부터 연인이 되었고 우리와도 친하게 지냈다. 민재는 자기 친구인 남자애들을 현주와 나에게 소개해줬고 현주는 그중 한 명과 잠시 사귀기도 했었다. 현주와 그 남자애의 사랑은 아주 짧게 끝났지만 민재와의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민재하고는 시간표를 같이 맞춘 것이 아니었지만 예서의 스케줄에 민재가 거의 맞춰줬기 때문에 이번 학기에는 민재와 같이 수업을 들을 일이 많았다. 그래서 오늘부터 듣게 되는 수업에서도 나와 현주, 예서, 그리고 민재가 같은 조를 하기로 이미 약속한 상태였다. 선배 한 명 없이 22학번 신입생끼리 조를 구성하는 것은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어설프게 할 사람들은 아니라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끼리 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다시 선우 오빠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선우 오빠는 학기 초부터 나에게 관심을 표했다. 다만 소심하던 선우 오빠의 성격 탓에 나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지는 않았다. 나도 처음에는 선우 오빠에게 약간 관심은 있었지만 한 학기 동안 지켜본 오빠는 나하고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 말고도 다른 애들한테도 찝쩍거린다는 소문도 있어서 나는 진작에 선우 오빠를 마음에서 완전히 내려놓은 상황이었다. 현주와 예서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어서 아까 오빠가 조별 과제 이야기를 했을 때 바로 예서가 선을 그은 것이었다.


오빠가 아까 그런 행동을 보인 것으로 보아, 아직도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방학 때도 몇 번 나에게 말을 건 적이 있는데 나는 조금 차갑게 오빠를 대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괜히 오빠에게 쌀쌀맞게 대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다. 그래서 오빠가 아까 인사를 했을 때 웃으며 받아주었다. 그런데 막상 웃어주는 모습에 볼이 빨개진 오빠의 모습을 보니 내가 실수한 것 같기도 하다.


“안녕 선우야, 오 너희들도 있었네? 반가워 얘들아!!”


수연 언니였다. 수연 언니는 굉장히 쾌활한 사람이었다. 굉장히 예쁘고 자신감이 있는 언니라 내가 조금 동경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수연 언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선우 오빠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었다.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동현 오빠는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수업 첫날부터 안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예서야. 이 수업 민재도 듣는 거지?”


수연 언니가 예서에게 물었다.


“와 언니, 더 예뻐진 것 같아요. 옷 진짜 너무 예쁘다…. 아 민재는 아마 조금 늦게 올 거 같아요.”


예서는 선우 오빠와 대화할 때와는 다르게 친절하게 수연 언니에게 대답했다. 


“그래? 너희 민재랑 같은 조 할 거지? 우리는 세 명이라…. 누구를 한 명 껴주지….”


수연 언니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누군가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인수 오빠!! 오빠도 이거 들어요?”


수연 언니의 목소리에 인수 오빠가 놀라면서 수연 언니를 쳐다봤다. 인수 오빠는 16학번 선배였다. 


“오 고수연 씨. 너도 이거 들어?”


“옙. 그럼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알겠네요?”


“그래, 나 이거 사실 재수강이라…. 내가 정말 잘할게. 너희 조에 껴줘. 홍선우, 고수연이면 나도 든든하지.”


“네. 그럼 오빠. 우리 조에 껴드릴게요. 일단 앞으로 나오시죠. 저희랑 수업 같이 들으셔야죠.”


“아…. 난 그냥 구석에 있으면 안 될까. 교수님 얼굴을 정면에서 보기는 조금 민망해서 하하…”


“옙.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대신 오빠가 조장해주세요 알겠죠?”


“응응, 열심히 할게. 고마워, 땡큐!”


수연 언니는 우리 학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얼굴도 예쁘고 싹싹하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공부도 잘했다. 코로나 학번이든 그 이전에 있던 학번이든 수연 언니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고학번인 인수 오빠에게 수연 언니는 천군만마와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선우야, 우리 조 다 모았어. 나 잘했지?”


“와 진짜, 수연아 너무 고맙다. 인수 형 진짜 고마워요! 저희 술 한잔 해요!”


선우 오빠는 인수 오빠와 수연 언니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내 자리를 슬쩍 봤다. 내 얼굴을 살짝 본 것 같았다. 나는 그의 그런 반응을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나는 책상을 보는 척하면서 내 앞에 앉은 선우 오빠와 수연 언니를 살짝 훔쳐봤다. 아마 내 예상이 맞다면 수연 언니는 선우 오빠에게 마음이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수연 언니라고 하지만 선우 오빠를 대하는 것은 살짝 다르다. 나만 이런 생각은 하는 것은 아니고 현주와 예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채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 한 명, 선우 오빠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에 대한 마음이 아직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대학교 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것 같다.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고 좋은 선배들도 있다. 여기에 연애 감정이라는 것이 더해져서 조금은 복잡하게 되었다. 가을바람이 어디로 불지는 모르겠지만 스무 살의 가을은 그렇게 시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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