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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Sep 10. 2022

9월 10일 송주승의 하루

추석, 꿈 이야기

아버지는 꿈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꿈이 미래를 예측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한테 항상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신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아주 어렸을 때, 한 번은 큰 병을 앓은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도 아버지가 아픈 이유를 속 시원하게 대답 못 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어 갔다. 그러던 중 할아버지가 아주 잘 아는 무당이 아버지의 증상을 살폈고 무당은 아버지가 아직 어려서 금방 괜찮아지겠지만 결국엔 언젠가는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운명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무당의 말에 크게 화를 냈고 무당은 자신의 말을 안 들으면 아들에게 큰 화가 닥칠 것이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무당의 말대로 아버지의 병은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아졌다. 그 이후에도 아버지는 몇 번 더 아팠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무당의 말대로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아버지는 결국 신내림을 받지 않고 지금까지도 잘 살고 계시기 때문에 무당의 말은 틀린 것으로 증명되었다. 아버지는 현재 교회를 다니고 장로님까지 하고 계시다. 지금은 무당의 무 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실 정도다.

하지만 아버지는 꿈에 있어서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신뢰하셨다. 내가 꿈을 왜 이렇게 진지하게 믿냐고 아버지게 물어보자 아버지는 자신이 어렸을 때 신기가 있었고 지금도 꿈에 그런 것이 반영된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교회를 다닌다는 분이 왜 그런 말을 하냐고 아버지에게 말했지만 아버지는 그저 웃으면서 그래도 좋은 꿈을 꾸고 좋은 일이 일어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다양한 태몽을 꾸셨다. 그리고 그 꿈을 다 일기로 기록해두었는데 가끔가다 내가 아버지의 속을 썩일 때면 일기를 보여주시곤 했다. 아버지의 표현에 따르면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의 운명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느냐?”였다. 내가 사춘기 시절에도 아버지는 그러셨는데 그때 나는 아버지의 그런 행동들을 정말 싫어했다.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는 아버지의 꿈과는 다르게 나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주 평범하게 살고 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그런 내 모습에 대해 크게 실망을 하시더니 지금은 체념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 대신 아버지는 내 자식 세대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2~3번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혹시 우리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겼는지를 물어보셨다. 우리는 아직 아이 계획이 없었고 실제로 소식도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아쉬운 소식을 전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그래? 그러면 곧 좋은 소식이 들리려나보다. 내가 정말 좋은 꿈을 꿨어! 너 나중에 나한테 감사해야 할 거다.”라고 말하셨다. 성인이 된 지금도 아버지의 꿈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아내에게도 미안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부모님 댁을 찾아야 했다. 부모님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옛날스러운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라 명절마다 아내가 고생할게 너무 뻔해서 나는 사실 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다가 아버지의 꿈 잔소리까지 더해지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아내도 불만은 많았지만 그래도 며느리의 노릇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내는 일단 참고 부모님 댁에 가겠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오늘, 부모님 댁을 찾아 추석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는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머니는 아내에게 무엇을 시키시려는지 바로 부엌으로 데려가셨다. 나는 부모님에게 그러지 말고 음식을 따로 사 올 테니 그걸로 밥을 먹자고 제안했지만 부모님은 바로 거절하셨다. 아내는 표정으로 ‘괜찮으니 어서 아버님이나 상대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의 시간. 아버지는 오늘도 정말 좋은 꿈을 꾸셨다며 나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꿈은 절대 나를 위한 꿈이 아니었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미래의 손주를 위한 꿈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 아버지의 꿈에는 아기 사자가 등장했다. 사자는 아기였지만 늠름한 모습이었고 다 큰 사자들을 이끄는 일종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자 무리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기 사자가 아버지에게 다가왔다. 아기 사자는 아버지 앞에서 크게 울부짖더니 갑자기 어디론가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아기 사자를 따라갔는데 아기 사자가 도착한 곳은 어떤 동굴이었다. 아기 사자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아버지도 동굴 안을 살폈다. 동굴은 아주 고요했는데 아버지는 약간의 오싹함을 느꼈다. 동굴은 꽤나 깊었고 아기 사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동굴을 탐험하기로 했다.

동굴의 끝에 다다르자 그곳에는 5개의 보물상자가 있었다. 아버지는 보물상자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떤 상자를 열지가 고민되었다. 아버지는 상자를 유심히 살폈고 상자 중 하나에 사자의 털이 묻어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버지는 그 상자를 망설임 없이 열었다. 상자 안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금이 있었다. 상자의 크기를 생각하면 절대 들어있을 수 없을 정도의 양이었다. 아버지는 놀라며 자신의 가방에 금을 넣기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방 안에는 모든 금을 넣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아쉬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동굴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빠르게 도망쳐야 했다.

그때, 아기 사자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 사자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었다. 아주 큰 사자 한 마리가 아버지 앞에 서있었다. 모습은 약간 달라졌지만 아버지는 눈앞의 사자가 방금까지 같이 있었던 아기 사자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사자는 아버지에게 달려들었고 아버지는 무서워 웅크렸다. 하지만 사자는 아버지를 해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사자는 자신의 등에 타라는 식의 행동을 했고 아버지는 바로 사자의 등에 올라탔다.

동굴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아버지를 태운 사자는 재빠르게 동굴을 빠져나갔다. 사자는 아버지를 태운체 한참 초원을 달렸다. 어느새 아버지를 태운 사자 뒤로 다른 사자들이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마치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때, 아버지는 꿈에서 깼다.


아버지는 이 꿈을 이야기하면서 내 자식이 장차 우두머리를 하거나 높은 지위에 오를 사람이라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직 자식 소식은 없으니 너무 기대하지 마시라”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했지만 자신이 쓴 일기를 보여주면서 내 자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될지를 다시 어필하기 시작했다. 오늘 꿈뿐 아니라 예전에 꾼 꿈까지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오늘 하루 종일 자신의 꿈 이야기만 하셨다. 아내도 나도 너무 지쳤다. 원래 저녁까지 먹고 가려고 했지만 나도 괴롭고 아내도 너무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적당한 시간에 핑계를 대며 집을 나왔다. 아버지는 끝까지 나에게 손주 소식을 기대한다고 말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더욱 실망스러워졌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의 소식은 정말 궁금하지도 않은 것인가? 며느리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기 싫으신 것인가?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아내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겠다고 했다. 아내는 그냥 집에 가서 잠만 자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차에서 눈 좀 붙이고 있으라고 하고 운전에 집중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싶고 고민도 털어놓고 싶었는데 아버지의 불가능한 꿈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그저 지치기만 한 날이 되었다. 아버지의 꿈이 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는 언제쯤 이해해 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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