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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Sep 12. 2022

9월 12일 유진한의 하루

서재 정리

이번 연휴의 마지막 날 일정은 서재 정리로 정했다. 근 1년 가까이 서재를 따로 정리한 적은 없었다. 필요한 자료를 찾아보느라 바빴지 책들을 원래 자리로 놓을 겨를이 없었다. 서재에 들어갈 때마다 정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에 내게 주어진 일을 하루라도 빨리 마치는 것이 중요했다.

올여름에 출간하고 싶었던 책은 나의 게으름 때문에 겨울로 미뤄졌다. 출판사에서는 계속해서 나에게 언제 원고가 완성되는지를 물어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하다는 말 뿐이었다. 더 좋은 작품을 위해서라고는 변명했지만 실제로는 내 손이 느린 탓이었다. 지난주, 나는 겨우 초고를 출판사에 넘길 수 있었다. 담당자는 검토하고 추석 이후에 연락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연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연휴라고는 했지만 온전히 쉬지는 못했다. 내가 쓴 초고를 다시 확인해보니 고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단순한 오탈자가 아니라, 아예 다시 쓰고 싶은 문장이 수두룩했다. 지금이라도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지만 다시 수정해야겠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오직 기회라고 한다면 출판사에서 요청하는 수정 내용이 오는 때일 것이다. 물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것이지만…. 그러지는 못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여태까지 출판한 책 중 그 어떤 것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없었다. 다행히 독자들은 내 글을 좋아해 줬지만 나는 내 책을 다시 읽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고칠 것이 수두룩하고 새로 쓴다면 더 좋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출판된 것을 수정할 수 없기에 새로운 작품을 하며 전작의 불안함을 지우려고 하지만 매번 나는 별로인 작품을 내놓고 있었다. 내 글을 좋아해 주는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작품을 왜 읽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데도 계속해서 글을 쓰는 나도 작가로서는 실격일 것이다. 

나는 원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다. 우연히 취미로 쓴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며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나의 첫 책이 출판되었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판매되었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에게 인터뷰 제의를 했었고 내 이름은 언론사 곳곳이 실리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나를 작가라 불러주니 기분은 좋았다. 그 이후 쓴 책도 이른바 대박이 났고 나는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작가 생활을 한지도 어느새 6년이 되었다. 내가 쓴 책은 항상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에 이번 책은 완성도를 높이고 싶었다. 기존에 내가 내놨던 형식과 전혀 다른 장르의 책을 쓰기로 했고 이를 위해 자료 조사도 열심히 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내 서재는 이번 책을 위한 준비물로 가득해졌다. 서재에서 하루 종일 자료 조사를 하고 글을 썼고 잠도 잤다. 서재는 곧 내 작업실이자 침실이 되었다.

그렇게 서재는 굉장히 지저분한 공간이 되었다. 연휴 기간 내내 치우려고 했지만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다른 놀거리로 서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결국 연휴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미루던 서재 정리를 하기로 했다.

막상 서재에 다시 들어서니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서재에서 나오지 않고 글만 쓰던 때가 떠올랐다. 새로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제 이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처음부터 작가라는 직업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서재는 작가랍시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둔 공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작가 인척 하며 글이나 쓰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평범한 나의 휴식 공간이던 이곳을 서재로 개조해 작가인 척하고 있는 내가 있던 곳일 뿐이다.

도저히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아 집 밖으로 나갔다. 잠시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이 역시 척일 뿐이다. 생각이 정리될 리가 없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정리한단 말인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서재로 들어갔다. 지금부터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서재만 정리하기로 했다. 크게 한숨을 쉬고 책들을 정리했다. 그냥 책장에 꽂아두는 행동이었지만.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면 다시 수정할 때 필요한 책들은 책상에 깔끔하게 쌓아두었다. 정리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책상이 정돈되자 나는 먼지를 닦아냈다. 곳곳을 닦고 보니 하얀 걸레는 어느새 시꺼먼 걸레가 되어있었다.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먼지를 치우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깔끔하게 보이는 척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내 눈에만 깔끔해 보이는 서재의 책상에 앉았다. 지난주 보낸 초고를 다시 읽었다. 여전히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내보내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저 그런 작가로 남고 싶다면 이대로 내보내는 것이 맞을 거고 이걸 마지막으로 업계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이 원고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내가 아직 이 작가라는 코스프레를 조금 더 하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 감정의 대답은 ‘아직 작가를 하고 싶다’이다. 여러 가지 생각만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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