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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04. 2022

10월 4일 조정민의 하루

회사에서 살아남는 어떤 방법

정민은 원래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불만을 항상 다른 사람에게도 이야기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정민은 선생님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고는 했다.


“사람이 둥글게 살아야지, 불평불만만 많으면 결국 네가 피해를 본다”


정민은 이런 지적을 들을 때마다 다시 다른 불만을 이야기했고 결국 주위 사람들은 정민의 태도에 질려서 그를 멀리하거나 떠나갔다. 


정민이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인지한 시점은 군대에서였다. 계급 사회인 군대에서는 위에서 까라는 데로 까야했다. 이등병 시절 정민은 호기롭게 자신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가 며칠 동안 신나게 갈굼을 당했다. 정민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마음의 편지를 써서 병영 부조리를 바로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마음의 편지를 정민이 썼다는 사실만 알려졌고 정민의 군생활은 그대로 꼬여버렸다. 정민이 편하게 군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상병이 꺾이고 나서였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정민의 태도를 바꾼 것은 아니었다. 정민은 여전히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해도 정민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민의 태도는 심해졌다. 


첫 회사에서 정민은 일은 잘 하지만 이것저것 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알려졌다. 정민이 있는 부서의 팀장은 그런 정민을 타이르기도 했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오히려 정민은 팀장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정민의 팀장은 회사 내에서 공공연한 악역 중 하나였다. 정민은 팀장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도 불만이 많다는 것을 알고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팀장에 대한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한두 번만 그런 것은 아니고 계속해서 팀장에 대한 험담을 했고 정민은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며 회사에 대한 욕까지 했다. 그러나 정민은 자신과 대화하는 그룹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팀장은 정민을 따로 불렀다. 팀장은 정민이 자신의 욕을 하다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주고 인정하지 않으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협박했다. 정민은 험담을 했다고 해서 자신에게 해코지를 한다는 팀장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정민은 자신이 팀장을 욕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자 팀장은 누군가가 녹음한 파일을 들려주며 이래도 할 말이 없냐고 했다. 정민은 당황했다. 대화 내용에는 팀장뿐 아니라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까지 욕하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민은 그 자리에서 잘못했다고 했지만 팀장은 한숨만 크게 쉴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 정민은 회사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맡고 있는 업무가 모두 없어졌으며 팀장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까지 정민을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민은 회사라는 곳이 이렇게까지 행동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 회사에서는 조직 개편을 핑계로 정민을 전혀 다른 부서로 발령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 부서의 업무는 정민과 전혀 상관이 없어 자칫하면 정민의 커리어만 꼬이는 일이었다. 정민은 결국 회사에서 나가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며칠을 고민하던 정민은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정민은 자신의 태도가 정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민은 다음 회사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숨기기로 했다. 


다음 회사에 가서 정민은 최대한 조용하게 지내려고 했다. 그 회사에도 예전의 정민과 같은 부류가 있었지만 정민은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조용하게 묵묵히 일 하는 정민은 금방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렇다고 정민에게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새로 옮긴 회사에는 부조리가 있었고 일을 못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민하고 직접 일하지는 않지만 정민의 업무에 큰 영향을 주는 부장이 특히 그랬다. 일은 할 줄 모르고 사람 관리도 하지 못하는데 임원들의 비위만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예전 같으면 정민은 그를 욕하고 다녔겠지만 지금의 정민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민은 그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부러 부장의 눈에 띄기 위해 야근을 자처했고 그와 밥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몇 달 간의 노력 끝에 정민은 부장의 눈에 들어왔다. 정민은 부장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했고 덕분에 정민은 회사에서 조금 더 중요한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정민은 회사에서 라인을 잘 탄 사람이 되어있었다. 정민이 충성 맹세를 한 부장은 어느덧 회사의 부사장이 되었고 정민은 연차에 비해 높은 직책까지 얻었다. 여전히 열심히 일은 하지만 정민은 상사들과 노가리를 까거나 술을 마시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정민은 귀찮은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일이 다 처리되면 공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정민의 아랫사람들은 정민이 능력도 없으면서 상사에게 잘 보여 높은 자리로 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민도 자신이 사는 모습이 부끄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몸과 마음은 편했다. 회사에서 잘릴 염려도 없었고 오히려 더 많은 연봉을 챙길 수 있었다. 다니고 있는 곳이 대기업은 아니지만 회사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도 가지고 있어 이를 발판으로 다른 곳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민은 자신의 태도와 신념을 바꾼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정민은 오히려 자신이 성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불평불만이 많은 정민의 성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 그는 위가 아니라 아래를 향해서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쯤은 부하 직원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들에게는 정민은 스트레스의 근원이었지만 윗사람들한테는 정민은 일을 잘하는 직원이었다. 정민이 한 번쯤 그렇게 행동하면 일이 잘 굴러갔기 때문이었다. 정민은 자신이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늘 전체 회의에서 새로 승진한 부장이 이상한 업무 아이디어를 늘어놨다. 회사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아이디어였지만 정민은 그의 의견에 동조하며 잘 만들면 회사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기분이 좋아진 부장은 신나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정민은 웃으면서 그의 말을 받아주고 있었다. 정상적인 다른 직원들은 둘이 하는 소리가 헛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조용히 퇴사를 생각하는 직원도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정민은 다른 직원들을 불러 다시 회의를 열었다. 부장이 던진 아이디어를 현실적으로 실행할 방안을 고안하기 위해서였다. 그제야 어떤 직원이 용기 있게 부장의 아이디어가 잘못된 것 같다는 의견을 말했다. 정민은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불평이 있으면 대안을 제시하세요. 어설픈 아이디어보다 대안 없는 불만이 더 문제인 것입니다.”


정민이 이렇게 말하자 직원은 자신의 생각을 소신 있게 말했다. 정민이 요구한 대안까지 들어간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민은 그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대안 자체가 별로라는 것이 아니라 부장의 아이디어에 전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민은 화제를 돌려 그 직원이 지금 못 하고 있는 업무를 핑계 삼아 갈궜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직원은 할 말을 잃었고 회의의 주도권은 다시 정민에게 돌아왔다.


“자, 다들 오늘 처음 들은 것이니 혼란스러울 거예요. 그래도 부장님이 제시한 게 오늘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고 부사장님이나 사장님의 의견도 반영된 것이니 우리가 잘 만들기는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업무는 현수님이 우선순위 및 R&R 잘 정리해서 저에게 보고해주세요. 모르는 것 있으면 나에게 물어보고요. 그럼 회의는 이만 끝내겠습니다.”


정민은 업무를 바로 밑에 있는 현수에게 다 맡기고 서둘러 회의를 종료했다. 현수는 정민이 또 부장이나 임원에게 잘 보이기 위한 보고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캐치했다. 그는 정민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측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는 또 다른 충성스러운 직원 중 하나였다. 정민은 자신의 의중을 잘 반영해줄 만한 사람에게 일을 맡긴 것이었다. 


회의가 끝난 후, 정민은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고 있는 부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회의 때 말한 아이디어에 대해 부장이 묻자 정민은 잘 정리되고 있고 금방 정리해서 따로 보고를 드리겠다고 했다. 부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민은 화제를 돌려 부장이 주말에 나간다는 골프에 대해 불었다. 골프 이야기가 나오자 부장은 신난 표정으로 다음에는 정민도 같이 라운딩을 가자고 제안했다. 정민은 부장이 불러주면 언제든지 가겠다고 했다. 정민은 웃으면서 계속 부장의 비위를 맞췄다. 


정민에게 요새 회사 생활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이상한 명령이라도 위에서 내려온 것이면 적당히 잘 처리하고 정말 이상한 것이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줘버려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사람 탓을 하면 됐다. 그렇게 10년 정도 살다 보니 정민은 지금의 정민이 더욱 익숙해졌고 그로 인해 얻는 것도 많아졌다. 정민은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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