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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05. 2022

10월 5일 정기범의 하루

칭찬

기범은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다. 그는 의례적인 표현으로 칭찬을 하지도 않았지만 누군가를 칭찬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기범이 냉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범은 그런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기범은 현재 과장이자 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부서를 이끄는 사람이라 기범은 부하 직원들을 끊임없이 칭찬하고 채찍질을 해야 했다. 하지만 기범은 부하 직원을 단 한 번도 칭찬한 적이 없었다. 일을 잘 못하면 심하게 질책했지만 일을 잘했을 때는 어떠한 표현도 하지 않았다. 부하 직원들은 그런 기범의 태도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런 기범을 싫어했다. 물론 기범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정기범 과장은 업무를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방향성을 잘 잡아줍니다. 그러나 일을 잘했을 때 부서 사람들을 칭찬하는 경우를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끊임없이 다음 업무만 제시하지 동기 부여를 전혀 해주지 못합니다.”


기범의 상사인 송광호 부장은 얼마 전에 한 업무 평가 내용을 그대로 기범에게 읽어줬다. 부하 직원들이 평가한 상사의 태도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범은 잠자코 광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정과장. 이제 팀장 된 지 2년 되었잖아요? 어때 할만해요?”


기범의 평가를 읽던 광호는 안경을 올려 세우며 기범에게 물었다. 광호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기범에게 호의적인 표정은 아니었다.


“네. 성과도 내고 있고 괜찮게 하고 있습니다.”


기범이 기계적인 답변을 하자 광호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기범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부하직원들은? 어때요?”


광호가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는 뉘앙스로 기범에게 물었다.


“네. 잘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기범은 빠르게 답변했다.


“아니, 하아…. 그중에서 누가 쓸만한 거 같아요?”


광고는 혀로 입맛을 다시면서 기범에게 물었다. 여전히 기범의 답변이 마음에 안 든다는 뉘앙스였다.


“뭐…. 다들.”


기범은 약간 자신감 없는 말투로 말했다.


“저기 정과장님. 거 좀 시원하게 말합시다. 누가 일을 잘한다. 누가 이런 걸 잘한다. 이래서 좋다. 그래서 시너지 효과가 난다. 설마 정과장이 그런 걸 모르지는 않을 것 같고. 내가 계속 물어보는 이유도 모르는 건 아니죠?”


광호가 짜증이 난다는 말투로 기범을 몰아붙였다.


“아닙니다.”


기범은 여전히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정과장님은 어떤 분이죠?라는 질문이 제게 온다면요. 저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 굉장히 꼼꼼하고 큰 그림 잘 그릴 줄 알고, 회사와 얼라인도 잘 되어있으면서, 조직원들도 효율적으로 배치해서 성과를 반드시 내는 사람. 이렇게 저는 말할 거예요. 그리고 저는 평소에도 정과장님이 잘하는 거 있으면 칭찬도 하고 있고요. 내 말이 틀려요?”


광호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답답하다는 듯이 기범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부장님이 절 잘 봐주고 계신 것 알고 있습니다.”


“아이고…정과장의 단점이 이거지. 무슨 기계랑 일하는 것 같아요. 뭔 농담도 안 하고 쓸데없이 사람이 진지해. 아니, 뭐 이게 업무상 단점이다라고 할 수는 없는데요. 지금 정과장님의 직책을 생각하면 큰 단점이에요. 조직원들 일 효율적으로 주고 성과내면 뭐해요? 애들이 동기 부여가 안 된다는데? 좀 잘했으면 칭찬도 해주고, 뭐 사주고, 챙겨주고 해야 정과장을 따르지. 맨날 몰아붙이고 일하면 누가 정과장을 좋아할까요? 일만 잘한다고 해서 좋은 직원은 아닙니다. 으흠…. 거 좀 물어봅시다. 왜 사람들 칭찬은 안 하는 거예요?”


빠르게 자신의 답답함을 토로한 광호는 마지막에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기범에게 물었다.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건, 원래 당연한 것 아닌가요? 일을 잘할 수 있으니깐 채용했고 그 일을 맡긴 건데 그 일을 해냈다고 해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칭찬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닌가요? 지나가다가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줍는다면 칭찬할 수는 있겠지만 회사에서 업무로 칭찬할 일이 있을까 합니다.”


기범의 말에 광호는 ‘뭐 이런 놈이 다 있어?’라는 표정으로 기범을 쳐다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니, 뭐 칭찬을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뭐 정과장이 쓰레기 줍는다고 해서 칭찬하는 사람인가? 여하튼 칭찬이 대단한 것은 아니잖아요. ‘잘했다.’ , ‘다음에 또 잘해보자.’ 뭐 이 정도라도 하라는 거예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은 알죠? 그래야 ‘팀장님한테 인정받았으니 다음에 더 잘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광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기범에게 말했다.


“제가 뭐 직원들 안 챙겨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 것을 안 한다고 해서 삐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네요. 회사에서 일 잘하는 게 중요한 거지. 그걸 꼭 말해야 하는 건 잘 모르겠네요.”


기범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광호에게 말했다.


“칭찬을 잘하는 것도 업무를 잘하는 겁니다. 정과장은 일반 사원이 아니라 팀장이에요. 회사에서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고. 이제 조직을 관리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위치예요. 이런 이상한 피드백 올라오게 하지 않고 직원들 잘 다독이고 성과 더 내게 하는 것이 팀장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저는 정과장님이 그 일을 못하고 있어서 혼내고 있는 거고요. 업무 평가 피드백들 정리해서 위에 보고해야 하는데 이런 내용 올라가면 저나 정과장이나 쪽팔리는 일이에요. 정과장님은 정과장이 말하는 당연한 것을 못 하고 있어요.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기를 바랄게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충분히 이해했을 거라 믿고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죠. 들어가서 일 보세요.”


광호는 정색하고 기범을 몰아붙였다. 광호는 설득이 도저히 안 되니 그냥 권위로 기범을 눌러버리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생각했다. 광호는 기범이 더 이상 변명을 하지 못 하게 말을 마치고는 기범이 아닌 컴퓨터 모니터로 시선을 이동했다. 빨리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기범은 광호에게 인사하고 광호의 방에서 나갔다.


기범은 자신이 쓸데없는 것으로 혼났다고 생각했지만 광호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기범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부하 직원들에게 회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회의실로 들어간 기범은 직원들에게 업무 보고를 받았다. 기범이 마음에 드는 것도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있었다. 사실은 기범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더 많았다. 기범은 평소처럼 업무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정리하고 각자에게 말해주려고 했다. 그러다 기범은 방금 광호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기범은 다시 머릿속을 정리하며 업무 내용 중 마음에 들었던 것에 집중했다. 기범의 머릿속은 복잡해져 갔다. 어떤 말이 그의 입가에 맴돌았지만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기범은 겨우 입을 떼었다.


“현준님. 어제 일 잘했어요. 잘했는데…. 아니, 꼼꼼하게 잘 챙겨줘서 고마워요.”


기범은 힘겹게 현준을 향해서 칭찬의 말을 했다. 기범은 현준을 보고 있지는 않았다. 현준은 기범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 예. 가… 감사합니다.”


현준은 어색하게 기범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현준은 ‘또 뭘로 혼내려고 갑자기 저러지?’라며 기범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현님. 회사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주아님 잘 도와줘서 고마워요. 특히…. 아, 아니다. 일단 고마워요. 호현님도, 그리고 주아님도.”


기범은 노트북 모니터 화면을 주시한 체 호현과 주아를 칭찬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저 더 열심히 할게요! 주아님, 제가 앞으로 더 잘하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화이팅!”


의욕이 넘치는 신입 사원 호현이 일어나서 기범에게 큰 액션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녀는 주먹을 쥐고 다른 직원들과도 눈을 마주치고 목례했다. 주아는 그런 호현을 진정시키면서 기범을 쳐다봤다. 그녀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기범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못 할 정도였다.


기범의 어색한 칭찬은 회의실에 모인 다른 직원들의 이름이 모두 언급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중에는 업무 평가에 기범이 칭찬에 인색하다는 표현을 적은 현수도 있었다. 현수는 자기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 칭찬을 하는 기범이 더 무서웠다.


칭찬을 마친 기범은 업무에 대한 다음 피드백을 전달하려다가 그만뒀다. 나름 칭찬까지 한 자리에서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중에 각자 불러서 따로 피드백을 전달하기로 마음먹고 회의를 마쳤다.


기범부터 현수까지 모두 어색한 발걸음으로 회의실을 나왔다. 기범은 여전히 칭찬을 해야 하는 이유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이것 때문에 다음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잘하지 못했다는 것에 짜증이 났다. 하지만 기범은 광호가 시킨 일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기범은 크게 한숨을 쉬며 자리로 돌아갔다. 다른 직원들은 기범의 한숨이 더욱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긴장한 체 각자의 자리에 앉았고 기범 역시 자신의 의자에 허리를 기댔다. 기범의 책상 주위에는 유례없이 무겁고 어색한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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