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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06. 2022

10월 6일 박태근의 하루

조퇴

원래 몸이 안 좋았던 것인지 출근하기 싫어서 몸이 안 좋아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이곳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몸은 지나치게 무거웠고 목은 깊게 잠겼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혹시 코로나가 아닌가 싶어 걱정했지만 검사를 해보니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세수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하고 나니 목은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 하지만 이번엔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식은땀이 나는 것을 보니 몸 어딘가가 이상이 생기긴 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출근을 해야 했다. 내가 몸이 안 좋다는 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충분조건은 되지 않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가고 싶지도 않은 회사로 향했다. 

출근을 마치고 사무실에 앉아있는데도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은 특별히 바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여유롭게 일할 수 있었지만 몸이 아프니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직장 동료들은 내 얼굴 표정을 보고 어디 아픈 것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절대 이런 일을 신경 쓰지도 않는 과장까지 내 안부를 묻는 걸 보니 내가 정말 아파 보이긴 했나 보다.

점심때까지 어떻게 버텨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다. 더운 날도 아닌데 식은땀이 계속 났고 속은 더부룩했다. 화장실을 가도, 잠시 바람을 쐬러 가도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헛구역질이 나오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계속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과장은 병원을 다녀오라고 했다. 안 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점심을 건너뛰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주섬 주섬 지갑을 챙기고 있는데 부장이 와서 그냥 조퇴를 하라고 했다. 평소에 내가 뭘 하든 신경도 안 쓰던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나한테 말을 해주는 것도 신기했다. 그 와중에 과장은 병원 다녀오면 괜찮을 거라고 부장에게 말하고 있었다. 과장은 이런 일로 조퇴를 절대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기는 했다. 그는 어떻게든 일을 시키려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부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일도 없는데 아픈 사람 데리고 있어서 뭘 하냐는 입장이었다. 결국 직급의 싸움에서 부장의 주장이 승리했고 나는 부장의 호의 덕분에 조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빠져나올 때 부장은 나보고 오늘 병원 꼭 가고 내일도 아프면 연차 올려서 주말까지 푹 쉬라고 했다. 나도 부장의 말처럼 하고는 싶지만 나를 계속 째려보는 과장의 눈초리가 부담스러워 내일까지 쉬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일 것 같았다. 

사무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밖의 직장인들은 다들 오늘 먹을 점심거리를 고민하며 거리를 다니고 있었다. 이 시간에 회사를 나와 집으로 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회사 근처에 있는 병원에 먼저 가기로 했다. 근처에 적당한 내과가 있어 걸어가는데 몸이 한결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땀도 안 나고 더부룩한 느낌도 나지 않았다. 회사를 나온 지 이제 겨우 5분이 되었을 뿐인데 모든 병이 사라졌다. 나도 이러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기에 당황스러웠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니 잘 쉬라는 말만 했다. 약도 받을 것이 없었다. 아주 적은 진료비 정도만 나왔다. 병원을 나오는데 몸이 너무 가벼웠다. 정신은 또렷해졌고 마음도 안정을 되찾았다. 이젠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는 싶은데 회사 근처라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점심까지 챙겨 먹으니 이젠 힘이 넘치기 시작했다. 아침에 아팠던 사실 자체가 꿈이었던 것 같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꾀병을 부린 것 같아 회사에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는 잠깐의 감정이고 그냥 기분이 좋았다. 뜻밖의 휴가를 얻은 기분이었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했다. 

30분 정도 핸드폰을 하다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집을 나와 돌아다녔다. 평소에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가서 시간을 죽칠 생각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고 몸이 가벼워 걷는 맛이 났다. 저절로 콧노래까지 나왔다.

평화로운 카페에 도착해서 향 좋은 커피를 시켜 가을의 여유를 만끽했다. 카페의 창문이 열려있어서 선선한 바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가을 냄새와 카페 특유의 향이 어우러졌다. 카페 안에는 기분 좋은 재즈 음악까지 나왔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칙칙한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낼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작스러운 여유를 즐기니 너무 행복했다. 

그때 갑자기 과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너무 놀랐다. 나는 내가 카페에 있다는 것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여, 몸은 괜찮아?”


“네! 과장님…아 예 쉬고 있습니다.”


“그래? 목소리가 좋아진 것 같다. 지금 어디야?”


“아… 저.....”


내가 말하려고 하는데 길가의 차가 경적 소리를 시끄럽게 울리면서 지나갔다. 아니, 아저씨 왜 그러시는 거예요.


“어? 너 지금 밖이야?”


과장은 이런 것을 절대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 병원 갔다가 집에 가는 길입니다.”


“병원? 나간 지가 언젠데 아직도 병원 타령이야? 링거 맞았어?”


“아… 회사 근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집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이 인간은 회사 근처 병원 갔다고 하면 내가 링거 맞았는지 확인하고도 남을 정도로 지독한 사람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베스트였다. 


“그래, 뭐 꾀병이라던가, 어디서 농땡이 피운다거나 하는 거 아니지? 부장님이 특별히 편의 봐준 거니깐 에서 잘 쉬고 있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아.. 예. 그럼요. 병원에서 간단한 약 받았습니다. 쉬고 음식 같은 거 조심하면 된다고 합니다.”


“목소리는 벌써 좋아진 거 같은데? 거기 병원 좋은가 보다. 아무튼 쉬고 있어. 정말 괜찮아지면 회사 복귀해.”


“아… 하하…네. 과장님. 감사합니다.”


“농담이고. 어서 쉬세요.”


과장은 내 상태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복귀하라는 과장의 말은 가볍게 넘기기로 했다. 다행히 과장은 더 나를 추궁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이 정도에서 끝난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전화를 마치고 다시 카페에 들어갔지만 더 이상 카페에 앉아 있고 싶지 않아 졌다. 나는 마시던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쉬어도 집에서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부장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집에서 잘 쉬고 있냐는 메시지였다. 이 사람도 은근히 눈치를 주는 타입이었다. 나는 부장에게 최대한 아프지만 집에서 잘 쉬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듯한 메시지를 답변으로 보냈다. 그래도 과장과는 달리 부장은 전화도 안 하고 추궁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눈치를 보니 다시 몸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 어서 집에 가서 그냥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 그들이 원하는 데로 집에서 얌전히 푹 쉬고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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