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Oct 03. 2022

10월 3일 임동운의 하루

여자 친구의 부모님

여자 친구는 원래 내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같은 학교긴 했으나 서로 알지는 못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를 나왔다. 그러다가 우연히 같은 대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친해졌다. 서로 같은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더 빨리 친해졌었다. 나는 사실 처음부터 여자 친구가 마음에 들었지만 여자 친구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가끔 따로 만나서 놀기도 했지만 더 가까워지지는 못했고 서로 연인을 소개해준 적도 있었다. 

친한 친구라고는 했지만 여자 친구가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따로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군대를 다녀와서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여자 친구는 한 대기업에 바로 취업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여자 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여자 친구의 회사에 지원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어떻게든 취업을 하고 싶었던 나는 나보다 먼저 취업한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자소서 작성이나 면접에 대한 팁을 물어보고 다녔다. 여자 친구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오랜만에 여자 친구를 보니 다시 마음이 떨렸다. 앳된 얼굴이었던 그녀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성숙한 외모로 바뀌었고 입는 스타일도 달라졌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내게는 특별하게 다가왔고 나는 여자 친구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자 친구의 면접 팁 전수가 끝난 이후에도 나는 그녀에게 계속 연락을 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런 내가 싫지 않은지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다니는 회사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합격을 한 날, 나는 그녀에게 고백했다. 그녀는 나를 받아들였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사내 커플이 된 우리는 우리의 연애 소식을 숨기면서 데이트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3년을 연애했고 나는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녀에게 청혼했다. 그녀가 다시 한번 나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30살이 되기 전에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보통 긴장을 하지 않는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 긴장되었다. 여자 친구 부모님이 밥을 사준다는 명목 아래 만나는 것이라 부담 없이 오면 된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여자 친구 부모님께 드릴 선물까지 사서 약속 장소로 갔다. 여자 친구는 식당 근처에 있는 카페에 먼저 들어가 있었다. 

여자 친구는 내가 입은 옷과 헤어스타일을 체크했다. 여자 친구는 미리 나에게 오늘 코디를 신경 쓰라고 했었다.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이런 것에 조금 깐깐한 편이라고 했다. 나는 여자 친구의 아버지께서 좋아하는 스타일로 최대한 맞춰서 왔다. 

여자 친구는 부모님은 무엇을 물어볼지에 대한 답안까지 나에게 제시했다. 오늘 자리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엉뚱한 질문을 하시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여자 친구가 준 답안을 숙지하고 목소리를 다듬었다. 그리고 우리는 부모님이 예약하신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의 메뉴는 중식이었다. 여자 친구의 아버지께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자주 오시는 곳이라고 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그에 걸맞은 가격대의 중식당이었다. 우리는 먼저 자리에 앉아서 부모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멀리서 여자 친구의 부모님이 걸어오셨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했다. 여자 친구의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악수를 청했고 어머니는 내 어깨를 두들겨 주셨다. 부모님이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따라 앉았다. 

여자 친구의 부모님은 나에게 계속 존댓말을 하셨다. 나는 괜찮으니 반말을 하셔도 된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처음 봤는데 그럴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게 더 부담이 되었다. 

식당의 음식은 매우 맛이 있었지만 너무 긴장되는 분위기라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쉴 새 없이 나에게 대해서 물어보셨다. 나는 음식을 입에 넣으려다가 내려놓고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물어보신 것에 대해서 답변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 그런데 우리 딸이랑 같은 초등학교 나왔다고 했죠? 우리 어릴 때 마주친 적은 없을까요?”


식사 자리 내내 침묵을 지키시면 나만 계속 바라보던 여자 친구의 어머니가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거셨다. 


“아, 네 어머님. 은진이랑은 같은 학교이기만 했지 같은 반이지는 않아서요. 아마 제 기억엔 따로 논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혹시나 음식이 입에 묻었을까 봐 입을 닦으면서 어머니께 대답했다.


“그래요? 어머님 성함이 조경미 맞죠?”


“네? 아…네 그걸 어떻게…?”


갑자기 어머니 이름이 나오자 나는 깜짝 놀랐다.


“사실 경미랑 제가 어릴 적 친구예요. 은진이 어릴 때 살던 동네에 내 어릴 적 친구가 몇 명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경미였어요. 우리… 동운… 씨? 죄송해요. 제가 정확히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요. 여하튼 옛날에 경미 집에 놀러 갔을 때 은진이만 한 사내아이 한 명을 봤었는데 그게 아마 동운 씨겠죠?”


전혀 몰랐다. 어머니와 여자 친구의 어머니가 동창이었을 줄은…. 이런 인연이 다 있을 수가 있나?


“얼마 전 동창회 때 경미 만났거든요. 서로 안부 묻다가 자식들이 결혼한다는 소식 알게 되고 서로 회사가 같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아들 이름이 동운 씨가 맞다고 하더라고요. 참 신기한 인연이죠?”


여자 친구의 어머니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와 진짜야? 엄마,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어?”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여자 친구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너희들 결혼하는데 문제가 될 것도 아니고, 그냥 오늘 이렇게 말해주려고 했지. 아무튼 동운 씨가 어릴 때 은진이도 같이 집에 놀러 갔었어요. 너무 어릴 때가 서로 기억이 안 나는구나.”


이제야 생각이 났다. 아주 어릴 때 엄마의 친구가 동네에 살아서 가끔 집에 놀러 왔고 그 집 딸이랑 나도 몇 번 마주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아이가 은진이었다니, 그 아이가 내 와이프가 될 사람이었다니.


“와 대박이다. 임동운. 우리 정말 인연이긴 한가 봐?”


여자 친구가 내 팔을 치면서 말했다. 


“그.. 그러게. 와 전혀 몰랐습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에이, 죄송은 무슨. 오늘 잘 마무리하고 나중에 우리 집에도 놀러 와요.”


여자 친구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인자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에이, 그랬어? 나중에 상견례하면 당신이랑 동운 씨 어머님이랑 동창회를 해야겠네.”


우리의 인연을 듣고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하고 계시던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말을 거들었다. 


“영광입니다. 두 분, 제 부모님이다 생각하고 앞으로 정말 잘 모시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여자 친구의 부모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우리 엄마와 여자 친구 어머님의 인연을 알게 되니 뭔가 조금 더 어색해져서 일부러 오바스럽게 행동한 것이었다.

아무튼 우리들의 인연 덕분에 식사 자리는 아까보다는 훨씬 더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나도 긴장이 조금 풀려서 보다 어색하지 않게 웃으면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

.

.


“정말 신기하다.”


식사 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의 차를 보던 여자 친구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몰랐어. 우리 그런 이야기 자체를 한 적이 없잖아?”


“어릴 때니깐. 자기랑 나랑 초등학교 때는 같은 반도 아니었으니 전혀 상상도 못 했지.”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송은진 씨.”


“저야 말로요. 임동운 씨. 와 근데 우리 자기 부모님 뵐 때도 이런 말이 나오겠네. 나는 누구랑 다르게 어머님 아는 척해야겠다.”


여자 친구는 해맑게 웃으면서 나에게 장난을 치듯이 말했다. 나는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인연이라니. 결혼까지 가는 걸 보니 우리는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여자 친구의 손을 잡았다. 기나긴 시간을 지나 서로를 알아보고 잡은 손이라고 생각하니 더욱더 그녀가 소중해졌다. 내가 잡은 손은 앞으로도 놓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손을 잡고 다음 데이트 장소로 향했다. 


이전 08화 10월 2일 조상준과 한나연의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