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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24. 2022

10월 24일 박훈일의 하루

태업 

“와 씨발. 이걸 또 지냐?


훈일은 오늘도 새벽에 욕을 하면서 축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훈일이 응원하는 팀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흥분한 훈일은 축구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응원하는 팀을 조롱하는 글을 썼다. 그렇게 해야만 훈일의 직정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커뮤니티 글을 살피던 훈일은 ‘태업’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그래, 맞어. 태업이야. 망할 놈들. 감독 올 때마다 저러네. 선수들이 프로 의식도 없어!”


훈일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부진이 선수들의 정신 상태에 있다고 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감독을 욕하던 훈일은 오늘은 팀의 기강이 흔들렸다며 선수 한 명 한 명을 욕하고 있었다. 그나마 잘하는 선수가 있으면 그 선수만 칭찬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욕의 대상이었다. 주장이 기강을 못 잡는다, 쟤는 스타병이 걸려서 자기 수준도 모르고 저런다, 쟤는 팀에 오고 나서 잘하는 꼴을 못 봤다. 쟤는 지 기분 안 좋으면 저따위 자세로 플레이한다 등. 수많은 이유로 선수들을 욕했다. 단순히 욕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에서 쓰는 용어로 계속해서 선수들을 조롱했다. 예전에 훈일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팀을 욕하면 화났지만 이젠 본인이 나서서 팀을 디스했다.



[야, 박훈일. 너 자냐? 오늘 또 졌더라?]


평소에 축구 이야기를 많이 하는 친구 한 명이 훈일을 도발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ㅁㅊ, 니네 팀도 졌잖아?]


[응 나 다른 팀으로 갈아탐. 우승하는 팀만 응원한다 이제]


[ㅈㄹ]

[아, 태업이라고. 망할 놈들. 겨울에 다 팔아버려야 해]


훈일은 친구와 함께 다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디스했다. 훈일의 친구는 훈일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강한 팀만을 쫓아다니는 부류였다. 그에 비해 훈일은 중학교 시절부터 오직 한 팀만 응원하는 찐팬이었다.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여행의 절반을 축구 클럽 경기장 투어를 도는데 시간을 쏟았을 정도였다. 특히나 훈일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했다. 그만큼 훈일이 어렸을 때, 그 팀은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훈일은 몇 년 동안 욕만 하면서 축구를 봤다. 주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축구를 보냐고 했지만 훈일에게는 이것이 낙이었다. 잘하면 좋지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열심히 뛰는 것으로도 만족했다. 어린 시절부터 훈일에게 그 팀에서 뛰는 모든 선수들은 영웅이었다.

훈일은 지금 욕을 하면서 축구를 보고 있지만 아직도 팀에 대한 애정이 굉장했다. 유스 출신 선수들이 데뷔하면 자신이 이룬 것처럼 기뻐했고 주말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한 주 동안의 컨디션도 상승세였다. 만약 팀이 지면 한 주동안 우울해했다. 훈일에게 축구는 그의 삶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훈일은 일부러 팀을 더 욕하면서 자신의 안 좋은 감정을 바로 표출하고 툴툴 털어버리려고 했다. 

커뮤니티에서 한 시간 넘게 놀던 훈일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월요일 새벽이었기에 바로 잠에 들어야 회사에 제 컨디션으로 출근할 수 있었지만 훈일은 바로 잠들 기분이 아니었다. 빠르게 취하고 잠에 들 생각으로 훈일은 맥주캔 하나를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오늘따라 술도 잘 들어갔다. 훈일은 한 캔으로는 모자라 냉장고에서 한 캔을 더 가져왔다. 과자 한봉지도 뜯어서 안주로 삼았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 훈일이지만 그는 마치 내일 휴가인 사람처럼 잠도 안 자고 계속 술을 마셨다. 

어느새 세 캔째 마셨다. 훈일은 비몽사몽 해졌다. 대충 이빨을 닦고 그대로 누웠다. 훈일은 내일 출근하기 싫어졌다.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들처럼 자기도 태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태업을 해도 별 타격 없는 선수들과는 다르게 일반 직원이 태업을 하면 티가 바로 나고 회사에서는 징계 혹은 해고까지도 할 수 있었다. 훈일의 눈이 감겼다. 내일은 없을 것처럼 살고 싶은 훈일이었지만 아침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말을 잘 듣는 회사 직원이 되어 다시 회사를 열심히 다녀야 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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