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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25. 2022

10월 25일 설재오의 하루

핸드폰 게임 

재오는 일어나자마자 핸드폰부터 찾았다. 밤 사이 있는 뉴스를 보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좋아하는 커뮤니티, 혹은 메시지를 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게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재오가 하는 보통 하는 게임은 5개 정도가 되었다. 초창기 형태의 핸드폰 게임부터 시뮬레이션, 러닝 액션, 타워 디펜스, RPG까지…. 재오는 매일 이 다섯 개 정도의 게임을 했다. 

재오가 하는 게임은 상당히 오래된 게임들이었다. 재오는 새로 나온 게임은 거의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익숙한 것을 좋아했고, 자신이 하는 게임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재오가 하는 게임은 핸드폰 화면의 첫 페이지에 모두 몰려있었다. 사실 재오가 설치한 앱 자체가 거의 없었다. 재오의 핸드폰에는 그가 좋아하는 게임 5개 정도와 아주 필수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앱과 기본 앱이 전부였다. 그래서 재오는 핸드폰도 5년 이상씩 사용했다. 고사양이라 할만한 게임도 없었고 새로 핸드에 게임을 설치하는 것 자체도 그는 귀찮았다. 요새는 영혼까지 백업된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재오의 핸드폰은 너무 오래되어 게임을 조금만 하면 금세 뜨거워지고 배터리도 빨리 닳았다. 하지만 재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사무실과 집을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배터리가 없으면 충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지런하게 게임을 30분 정도 하고 난 후, 재오는 10분 만에 씻고 옷을 입었다. 아침으로는 간단한 견과류를 챙겼다. 지금 먹는 것은 아니고 사무실에 가면 먹을 예정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재오의 핸드폰은 충전기와 연결되어 아침 동안 필요한 전력을 얻고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재오는 핸드폰을 챙겨 집 밖으로 나갔다. 재오의 집에서 지하철역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렸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집에서 정류장까지의 거리가 꽤나 되어서 걸어가는 것이 더 빨리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역에 도착한 재오는 회사로 한 번에 가는 지하철을 기다렸다. 갈아탈 필요 없이 한 개의 노선만 1시간 넘게 타면 되는 루트였다. 열차가 들어오자 재오는 주위를 살폈다. 자신이 앉아서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재오는 서서 가야 했다. 1시간 내내 서서 가야 할 때도 있었고 운이 좋으면 30분 정도는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오늘은 서서 가는 줄 알았지만 재오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바로 일어나서 열차를 떠난 덕분에 재오는 1시간 내내 앉아서 갈 수 있게 되었다. 재오는 무척 기뻤다. 

자리에 앉은 재오는 핸드폰을 꺼내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탈 때 그는 주로 러닝 액션 게임을 했다.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달리고 장애물을 피하기만 문제없이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에 재오는 이 게임을 좋아했다. 재오는 오늘도 40분 넘게 이 게임만 했다. 

40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재오는 기지개를 켰다. 아직 회사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는 것을 확인한 재오는 단순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하나 더 했다. 이 게임 역시 별다른 고민 없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재오의 핸드폰은 어느새 40%의 배터리만 남게 되었다. 꽤나 뜨거워졌지만 재오는 신경 쓰지 않았다. 

회사가 위치한 지하철역에 도착하자 재오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걸어갔다.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는 걸어서 7분이었다.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보던 재오는 이 시간이 되어서야 저 멀리 시야를 돌리게 되었다. 재오는 순간적으로 눈이 뻑뻑해서 껌뻑거리며 눈물을 흘리려고 했다. 하지만 눈이 건조해서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재오는 핸드폰의 배터리부터 챙겼다. 케이블을 연결하니 핸드폰은 다시 힘을 받기 시작했다. 재오는 화장실을 다녀오고 자리에 앉아 오전에 자신이 해야 하는 일들을 챙겼다. 

점심시간이 되자 재오는 친한 동료들과 밥을 먹었다. 하지만 동료들과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손에서 핸드폰을 놓치지 않고 게임을 했다. 밥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밥을 먼저 다 먹고 다른 사람이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재오는 게임을 했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재오는 오후 근무 시간 내내 배가 아파 자주 화장실을 갔다. 화장실을 갈 때도 재오는 핸드폰을 가져갔다. 이미 볼 일은 다 봤지만 변기에 앉아 게임을 하느라 재오는 원래 자신이 있어야 하는 시간보다 더 길게 화장실에 있었다. 

마침내 퇴근 시간이 되자 재오는 핸드폰을 챙기고 집에 갔다. 집에 가는 길은 계속 서서 가야 했다. 재오는 한 손으로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만지면서 게임을 했다. 오후 시간에 핸드폰 충전을 깜빡한 탓에 배터리는 30%가 남았다. 재오가 계속해서 게임을 하니 늙은 재오의 핸드폰은 힘들어하면서 배터리를 빠르게 소비했다. 재오가 아직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30분 이상이 남았지만 어느새 핸드폰 배터리는 18%가 되었다. 그럼에도 재오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배터리가 5% 미만이 되었을 때야 재오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재오는 지금이 어디쯤인지 확인했다. 아직 집까지는 조금 더 가야 했다. 재오는 핸드폰을 안 하고 있으니 심심해서 죽을 것 같았다. 

재오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을 충전기에 꼽았다. 핸드폰이 충전되는 동안 재오는 밥을 먹기로 했다. 냉장고에 얼려둔 밥과 일주일째 먹고 있는 반찬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밥을 먹기 전, 재오는 핸드폰이 얼마나 충전되었는지를 확인했다. 배터리가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재오는 충전선을 빼고 핸드폰을 식탁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해서 게임을 했다. 

밥을 다 먹었을 무렵, 핸드폰은 다시 배터리가 부족하다고 재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재오는 핸드폰을 충전기에 꼽았다. 그릇을 치우고 재오는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재오는 집 안을 가볍게 치웠다. 어느 정도 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 재오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다시 만졌다. 재오는 잠들기 전에도 계속 게임만 했다. 친구들이 보내는 메시지가 몇 개 있었지만 재오는 확인도 안 했다. 슬슬 잠이 오자 재오는 핸드폰을 다시 충전기에 꼽고 불을 껐다. 재오는 눈을 감았다. 하루 종일 혹사당한 핸드폰은 그제야 기계의 숙면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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