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현실
오늘
현아는 오늘 하루 종일 책을 읽기로 했다.
주말 동안 따로 할 일이 없기도 했고 그렇다고 새로운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말이니 괜찮은 카페에 갈까 고민을 했지만 오늘은 그냥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기로 했다.
간단히 아침을 먹은 현아는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를 내렸다.
집 안의 향과 온도, 분위기 모든 것이 현아가 원하는 데로 맞춰졌다.
현아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책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바로 그 책상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제목은 [이상의 현실]이었고 저자는 ‘김승아’였다.
현아는 한참 책 제목을 바라보더니 바로 다음 페이지에 남겨있는 메모를 읽었다.
손글씨로 이런 메시지가 쓰여있었다.
“현아에게… 네가 있어서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어, 고마워”
이 책은 현아의 오랜 친구였던 승아가 쓴 책이었다.
승아는 잠시 예전 일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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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현아는 이 책을 승아에게 직접 받았다. 그날 현아는 승아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책을 받은 지 거의 1년이 되었지만 현아는 승아의 책을 전혀 보지 않았다.
“현아야, 승아 책 봤어? 진짜 잘 썼더라”
라는 친구들의 메시지에 현아는 본인도 승아의 책을 잘 봤다고 대답을 했지만 현아는 승아의 책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아는 승아의 책을 애써 외면했다.
지난주, 현아는 인터넷을 보다가 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김승아 작가의 [이상의 현실], 박준현 감독이 영화화한다”
승아의 책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러 매체에도 소개되었다. 승아의 책을 인생작으로 삼는 사람들도 나타났고 신인의 소설이지만 꽤나 깊은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제작사들이 탐을 냈다.
그러다 마이더스의 손이라 불리는 박준현 감독 측이 판권을 샀다는 뉴스까지 나온 것이다. 박준현 감독은 내놓는 영화마다 작품성과 대중성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는 감독이었다.
현아는 승아의 소식을 듣자마자 승아에게 “축하한다”라는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망설였다.
한참을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결국 현아는 승아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다. 아니, 보내지 않았다.
현아는 승아의 성공을 질투하고 있었다. 분명 그런 감정이었다.
하지만 현아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친구의 성공을 질투하는 자신이라니.. 그런 모습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현아는 그날 작업실에서 미칠 듯이 글을 썼다. 기존에 준비하던 작품이 아닌 전혀 준비되지 않은 글을 썼다.
정제되어있지 않았고 모순이 많았고 개연성도 없는 그런 글이었다. 하지만 현아는 그런 글이라도 써야 자신의 마음이 풀릴 것만 같았다.
그러다 현아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승아의 메시지였다.
“현아야, 오랜만이야. 나 지금 예전에 우리 자주 가던 식당 있잖아? 얼마 전 지나가는데 네 생각이 나더라. 우리 오랜만에 거기 갈까?”
짧은 메시지였지만 그 안에는 많은 말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현아는 한참을 망설이다 메시지를 보냈다.
“미안… 요새 좀 몸이 안 좋아. 다음에 보자 내가 연락할게 ^^”
현아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핸드폰을 뒤집어놨다. 현아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친구를 시기하고 축하를 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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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현아는 승아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신기하게도 둘은 마치 쌍둥이처럼 모든 것이 닮아있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까지 모든 것이 닮았다.
초중고 모두 같은 학교를 나오며 현아와 승아는 아쉽게도 같은 대학교를 가지는 못 했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학교라 같은 생활권 내에서 거의 매일 만났다.
현아와 승아 모두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아와 승아는 서로의 소설을 읽어봐 주고 고칠 것을 이야기해주며 서로의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도왔다.
학교 근처에는 현아와 승아가 자주 가던 식당이 있었다.
허름한 식당, 소주 한잔과 값싼 안주와 미역국을 주던 곳이었다.
주인의 인심이 좋아 학생들 사이에서는 꽤나 인기가 있었다.
“우리 둘 다 같은 해에 등단하면 신기하겠다, 그렇지?”
술잔일 기울이며 승아가 말했다.
“우리 둘 다 등단하는 날이 되면, 여기 말고 진짜 비싼 데 가서 맛있는 거 먹자”
그러면 현아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둘은 마치 자신들의 아지트 같은 식당에서 술 한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항상 격려했다. 그들의 20대에서 가장 중요한 소중한 추억이었다.
현아는 승아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면서도 그녀가 가진 재능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현아에 비해 승아의 아이디어가 더 좋을 때가 많았고 평범한 소재도 굉장히 흥미롭게 풀어가는 것이 승아의 능력이었다.
그래서 현아는 어쩌면 승아가 자신보다 먼저 등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누가 재능이 있는지가 중요한가? 이건 경쟁도 아닌데…’
현아는 계속해서 이런 마음을 되새기며 자신만의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이 지났지만 둘 다 등단을 하지는 못 했다.
수없이 많은 작품을 썼고 기억도 안 날만큼 많은 곳에 원고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둘은 그때마다 아지트에 와서 다음에는 정말 좋은 곳을 가자고 서로를 위로해주며 술잔을 기울였다.
현아는 매번 집에서 취업을 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현아가 아예 취업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조그만 광고 회사에서 일하며 낮에는 카피라이트를 쓰고 밤에는 소설을 쓰며 그녀는 소설가의 꿈을 놓지 않았다.
승아 역시 취업을 하라는 소리를 안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취업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썼다. 아예 일을 안 한 것은 아니고 알바 몇 개를 병행하기는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승아는 잠시 머리를 식히고 오고 싶다며 배낭여행을 떠났다.
승아의 배낭여행은 꽤나 길었다.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승아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많은 것을 경험했고 그곳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얻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귀국을 한 승아는 현아와 자신들의 아지트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안 되면 진짜 포기하려고…그래서 이번에 정말 제대로 써보려고 해… 내 은퇴작이 될지 모르잖아?”
그 이후 승아는 모든 연락이 끊겼다.
그로부터 1년 후, 승아는 등단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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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을 한 현아는 맥주를 마시기로 한다.
좋아하는 유튜브 방송을 보면 맥주를 마시던 현아는 문득, 승아가 생각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책장에 꽂혀있는 승아의 책이 보였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승아와의 추억을 생각하던 현아는 자신이 먹고 있던 맥주가 완전히 비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주조차 남지 않았다. 현아는 편의점을 잠깐 갈까 했지만 나갈 기력도 없었다.
취기가 오른 현아는 그렇게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잠시 후 목이 말라 잠에서 깬 현아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잠시 오지 않자 현아는 핸드폰을 집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현아는 승아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승아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는데
문득 자신이 대답하지 않았던 승아의 메시지가 보였다.
승아가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를 읽지도 않고 한참을 보냈던 것이다.
현아는 승아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못 봐서 아쉽다. 다음에 꼭 좋은 곳에서 보자. 네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
현아는 승아의 메시지를 보자 순간 눈물이 나왔다. 여전히 승아가 자신을 응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승아를 만날 용기도 없었고 승아를 질투하고만 있었던 자신이 너무 싫었기 때문에 현아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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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늘
현아는 모처럼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그래서 축하의 인사 하나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자신을 버리고
친구로서, 그리고 독자로써 승아의 책을 마주하기로 한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던 현아는 한 문장을 보고 잠시 책을 내려놨다.
크게 한 숨을 쉬며 현아는 천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책을 내려놓고 현아는 승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현아야, 잘 지냈어?”
“승아야, 갑자기 미안한데 오늘 저녁에 그 식당에서 볼까?”
“언제든 괜찮아!”
현아와 승아는 오늘 밤에 만나는 사람들 같지 않게 한참을 전화로 수다로 떨었다.
이윽고 약속 시간을 정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현아는 시계를 보더니 약속 시간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았음을 알고 다시 책을 집었다.
현아는 작가의 말에 먼저 눈길이 갔다.
한 문장을 읽자 현아는 다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있었다.
시작하며
“어릴 적부터 제 친구인 현아는 제 첫 번째 팬이자 독자였습니다. 제 첫 번째 팬인 현아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소현아의 첫 번째 팬 김승아-
현아는 책장을 넘기며 이제 승아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