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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01. 2022

12월 1일 한성재의 하루

내년 계획

성재는 직원이 8명밖에 되지 않는 회사를 3년째 다니고 있었다. 원래도 작은 회사였지만 한 때는 20명에 가까운 직원이 있을 정도로 성장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인원을 계속 줄이고 있었다. 성재는 이직을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용기와 시간이 없어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성재 씨, 잠깐 내 방으로 와줄 수 있어요?”


아침에 출근을 하니 대표가 성재를 불렀다. 성재는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대표실로 갔다. 성재네 회사는 고정 비용 감축을 이유로 지금 있는 곳으로 6개월 전 이전했지만 대표는 자신의 방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조그만 사무실임에도 불구하고 가벽을 설치해 자신의 방을 만들어놨다.


“응 성재 씨. 혹시 내년 사업 계획은 생각해봤어?”


성재는 속으로 ‘또 시작이다’라고 생각했다. 대표가 성재에게 사업 방향성에 대해서 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글쎄요. 기존에 하던 업체랑 계약도 했고…. 정부 지원 사업도 상반기에 된 것은 없으니 이제 알아보고 지원해야죠.”


성재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대표는 성재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이, 그건 나도 생각하는 거고. 나는 성재 씨가 품고 있는 계획을 듣고 싶다는 거야. 우리가 언제까지 광고대행이나 하며 살 수는 없잖아? 요새 뜨는 아이템이나 이런 것들. 이런 것 생각한 것 없어? 회사에서 어느 정도 지원해줄게!”


성재는 대표의 말이 진실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6개월 전에도 성재가 괜히 NFT 이야기를 했다가 갑자기 회사 전체의 사업 방향이 NFT로 바뀐 적이 있었다. 대표는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거래처들한테 자신들이 내년에는 NFT 사업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는 사이 직원들은 그럴싸한 NFT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회사의 인력 구성과 자금으로는 도저히 실행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는 계속 밀어붙였다. 그렇게 가짜 사업계획서가 만들어지고 대표는 외부 영업을 다녔다. 대표의 말에 속는 사람도 있었고 그의 말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바로 간파한 사람도 있었다. 대표는 자신의 말을 믿는 사람들만 모아서 다음 스텝을 밟으려고 했다. 그러나 실행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업계획서만 만들었을 뿐, 실제로 그 아이템을 위해 회사에서 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대표는 NFT 사업에 대해 은근슬쩍 입을 꾹 닫았다. 대표의 말에 속은 몇몇 곳에서 계속해서 사업이 어찌 되고 있는지 물어보는 문의가 있었지만 성재를 비롯한 직원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패턴은 비단 NFT 관련 일 뿐만이 아니었다. 


“왜 말이 없어? 그래, 나도 알아. 대표인 내가 고민해야지. 그런데 나도 어려워.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런 말 안 해. 성재 씨를 내가 믿고 있으니깐 그러는 거야. 성재 씨. 이제 입사한 지 얼마 됐지?”


“한… 이제 3년 정도 됩니다.”


“그래, 맞아. 내가 여기보다 더 좋은 곳에 다니는 성재 씨 데려오면서 뭐라고 그랬어? 내가 성재 씨 이 회사 C레벨로 생각하고 데려왔다고 했었지? 아직 우리 회사 규모가 그 정도는 아니라 내가 그 약속 못 지키고 있어서 미안해. 그런데 성재 씨도 반성해야 해. 물론 성재 씨가 일을 못 한다는 게 아니야. 그런데 C레벨이라는 게 뭐야? 임원이야. 임원이면 직원 같이 일하면 안 돼요. 그 뭐야? NFT? NFC, NTT? 여하튼 그거 할 때도 말이야. 나 혼자만 외부 영업 다니고. 그랬어. 근데 그게 안 된 이유가 뭐야? 성재 씨가 내부에서 직원들 이끌고 영업 외에 실제 일이 되게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나는 그런 생각이 있어요. 물론 어려운 건 알아요.”


성재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는 대표가 또 개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다 이해해요. 그런데 성재 씨가 조금 더 적극적이면 어떨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죠? 그러니깐 이번에 성재 씨가 가져오는 아이템! 내가 정말 밀어줄게. 내가 이 회사에서 믿을 건 성재 씨뿐이에요. 그만큼 신뢰한다는 거야. 이번엔 같이 좀 잘 만들어봅시다? 알았죠? 요새 우리 같은 작은 회사들은 먹고살기 힘들어요. 경제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우리들은 더 어려워요. 성재 씨도 알고 있죠? 내가 매달 얼마나 월급 만들어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지? 나는 요새도 월급 때만 되면 악몽 꾼다니깐? 그래서 내가 월급을 밀린 적이 있느냐? 그것도 아니에요. 회사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다니는지 알고 있어요. 알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모를 거야. 대표가 얼마나 힘들 일인지…. 말이 길어졌는데 여하튼 성재 씨 저 좀 도와주세요. 우리 같이 만들어 봅시다. 우리 이번 주 금요일에 점심 같이 먹으면서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그때까지 준비해와요. 뭐 제안서를 만들어오라는 것도 아니야. 나는 그런 보고를 위한 보고는 싫어하는 거 알죠? 그러니깐 그냥 머릿속으로 정리만 해와요. 알았죠?”


쉴 새 없는 대표의 잔소리가 끝나자 성재는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휴우… 그래요. 이번에 잘 되면 약속한 자리 꼭 줄게. 00 회사에서 온 그 메일 내용 말이야. 그거 무슨 말이야?”


“저 전에 보고 드린 내용인데….”


“미안해요. 내가 바빠서. 하루에 메일만 수백 통이 온다. 내가 까먹을 수 있으니깐 계속 리마인드 해주세요. 여하튼 그거 다시 한번 나한테 말해줘요.”


성재는 대표에게 지금 하고 있는 업무와 무슨 이슈가 있는지를 다시 보고 했다. 대표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성재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었지만 성재는 잠자코 대표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일이 잘못될 경우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성재는 그렇다고 대표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대표의 방을 나온 성재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밤 사이 온 메일을 체크했다. 수십 통의 메일이 와있었다. 대부분은 광고 메일이었고 중요한 메일은 그중 몇 개가 되지 않았다. 성재는 오늘 해야 할 업무를 정리하고 다른 직원들에게 회의를 하자고 했다. 그때, 대표가 방에서 나왔다.


“어. 그래. 성재 씨. 아까 그건 내가 말한 데로 하고. 나 오늘은 계속 외부 미팅 있어서 나가야 하는데 다들 나한테 보고 할거 있어요?”


대표는 외투를 챙기며 직원들에게 물었다. 


“아, 대표님. 이거 한번 컨펌해주시겠어요?”


디자인을 맡고 있는 이영이 대표에게 자신의 작업물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 그거 그냥 메신저로 보내주세요. 내가 이동할 때 확인할게. 또 다른 것 있어요?”


대표는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쳐다봤다. 다들 대표에게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지만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미팅 때는 못 받을 수 있으니 카톡 해요. 그럼 나 갈게요. 다들 일 끝나면 알아서 퇴근하고. 성재 씨는 나랑 약속한 거 잘 생각해봐요. 그럼 다들 파이팅해요!”


자신이 할 말을 모두 끝낸 대표는 바로 사라졌다. 직원들은 대표가 사라지자 다들 불만 섞인 한숨과 혼잣말을 하며 다시 자신들의 컴퓨터를 쳐다봤다. 성재도 마찬가지였다. 성재의 머릿속에는 3가지가 떠올랐다.


‘씨발’


‘개새끼’


‘퇴사하고 싶다.’



그렇게 12월 1일의 회사에서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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