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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03. 2022

12월 3일 양재준의 하루

3년 만의 모임

“우리 올해는 봐야지?”


재준의 단톡방에는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 10명 정도가 모여있었다. 어른이 된 이후 그들은 서로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모였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만나자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재준이 먼저 만나자고 말해야 했다.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데도 친구들이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서 재준은 항상 그들에게 후보지를 정해서 알려줘야 했다. 재준도 이런 게 귀찮았지만 이렇게 하여도 하지 않으면 친구들이 만나려고 하지 않으니 할 수가 없었다. 

막상 만나면 재준과 친구들은 재밌게 놀았다. 서로 사는 이야기, 어릴 적 이야기, 주식 이야기, 애들 키우는 이야기 등을 주제로 그들은 술과 함께 못다 한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해서 만나는 시간은 고작 3시간 내외. 오랜 친구 사이에 만나는 시간치고는 짧았지만 재준은 그렇게라도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재준은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 코로나 시국이 되면서 모임이 줄어들었고 가뜩이나 소극적이던 친구들은 더욱 만남을 꺼려했다. 재준 역시 나서서 만나자고 할 수가 없었다. 아주 가끔 활성화되던 단톡방은 그런 대화마저 끊겼다. 아주 가끔 서로의 생일만 챙길 뿐,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모임이 많아지면서 재준은 올해는 꼭 친구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준은 친구들에게 올해 만나자고 이야기했다. 친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고 부정적이지도 않았다. 결국 이번에도 재준이 정해서 알려줘야 했다. 

그리고 오늘, 재준은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2019년 12월 이후 3년 만의 모임이었다. 10명의 친구들 중 고작 5명의 친구만 모이게 되었지만 재준은 이거라도 어디냐라고 생각했다. 그나마도 2명은 늦게 도착한다고 했기에 재준은 먼저 모인 2명의 친구와 대화하며 밥을 먹었다. 

대화의 주제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었다. 그 사이 각자 생긴 고민이라는 것이 추가되긴 한 정도였다. 재준은 그래도 좋았다. 오랜만에 만나도 마치 어제 만난 사이처럼 익숙하고 기분 좋은 모임이었다. 

2차 장소로 옮겨 술을 마시는데 나머지 2명도 도착했다. 그렇게 모인 친구들은 서로의 별명을 오랜만에 부르면서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시시한 농담이었지만 같은 고등학교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재미있게 웃을 수 있는 농담이었다. 재준과 친구들은 서로 웃으며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재준은 자신을 비롯한 친구들이 어느새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옆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데 넌 왜 이렇게 아저씨가 됐냐?’라고 말했고 그 친구는 재준에게 ‘얼씨구? 지는? 이 새끼는 항상 지는 아닌 척해요’라고 가볍게 응수했다. 순식간의 대화 주제는 아저씨가 되었고 다들 자신이 얼마나 아저씨에서 먼 사람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그들은 누가 봐도 아저씨스러운 대화를 이어갔다. 

다음 주제는 꼰대에 대한 것이었다. 전형적으로 ‘요즘 신입들은 왜 그래?’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대화였다. 재준은 자신은 정말 오픈 마인드인데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자신의 회사 신입에 대한 말을 했다. 재준의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회사에서 본 개념 없는 사람을 이야기했다.

전형적인 꼰대 아저씨들의 대화가 끝나고 재준과 친구들은 어릴 적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학교 다닐 때 담임 선생님부터 어린 시절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까지. 그런 이야기를 하며 40대 아저씨들은 10대 시절로 돌아갔다. 몸과 마음은 이미 늙었지만 항상 장난기가 넘치고 호기심이 많았던 그런 시절이었다.

2차가 끝나고 재준은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자고 했다. 다들 이제 힘들다고 했지만 재준은 1시간만 딱 더 놀자고 했고 마지못해 친구들은 재준과 노래방을 갔다. 노래방에서 친구들은 자신의 젊은 날의 초상을 노래했다. 10대, 20대 때 들었던 노래를 부르며 그들은 다시 한번 그 시절로 돌아갔다. 체력이 다 떨어져서 1절을 부르고도 지치는 저질 체력이었지만 그들은 오랜만에 마음껏 웃으며 놀 수 있었다. 


“즐거웠다. 다음에 또 보자!”


“야, 다음에 여기 올 거면 여기 곱창 맛있게 하는 데 있어. 거기 한 번 가보자.”


“재준이가 어디 가자고 할 때 진작에 말하지. 이 새끼는 꼭 이래요”


“지랄한다 다들. 그래 아저씨들. 만나서 즐거웠다.”


“그래. 재준아. 항상 고생 많다.”


“재준아. 고생했다. 다음에 송민석도 부르자. 애 새끼 하는 것도 없는데 항상 뺀다니깐. 돈도 제일 많이 버니깐 얘한테 좀 사라고 하자.”


“그래, 그래. 다들 고맙다.”


서로 친한 사이끼리만 할 수 있는 작별 인사를 하고 재준과 친구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재준은 잘 들어가라는 메시지를 단톡방에 남겼다. 마치 내일 모이자고 하면 모일 것 같이 돈독한 사이가 된 친구들은 다음에 꼭 보자는 메시지를 보냈고 참석 못 한 친구들도 다음에는 꼭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재준은 알고 있었다. 다들 이때뿐이라는 걸.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래도 다시 모이면 항상 즐겁게 놀 수 있는 게 친구들과의 모임이었기 때문이었다. 재준은 모처럼만의 기분 좋은 모임을 마치고 행복한 기분을 간직한 채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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