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가장 바쁜 사람
윤석은 회사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다.
일을 특별히 열심히 해서 바쁜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윤석의 정말 바쁜 일과는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였다. 윤석은 시간이 되면 옆자리 부장이 담배를 피우러 갈 때마다 그를 따라나갔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윤석이었지만 부장의 말동무가 되어주겠다며 부장을 항상 따라나가는 것이었다. 부장도 그런 윤석이 그런 윤석을 멀리하지는 않았다.
윤석은 입에 발린 말을 많이 했다. 상대방도 윤석이 무슨 뜻에서 접근하는지 보일 정도로 매우 티 나는 행동들을 했지만 윤석 특유의 친화력 덕분에 그를 대놓고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만 그의 노골적인 행동들을 경계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윤석은 이른바 사내 정치를 잘하는 타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업무적으로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승진했다. 그를 오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윤석이 입을 잘 털어서 저 자리까지 올랐다고 수근 수군거렸지만 윤석 밑의 직원들은 윤석이 나름 능력이 있어서 그 자리에 오른 것으로 생각했다.
윤석은 팀 사이도 은근히 갈라서 평가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잘 보이는 사람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 그리고 없애야 하는 사람. 윤석은 새로운 직원이 올 때마다 머릿속으로 자신이 저 사람에게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윤석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없다고 자신의 측근들에게 말은 했지만 실제로는 모두 기억하고 있는 타입이었다.
윤석의 편에 서서 윤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런저런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도 있었다. 손오준 대리가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오준 역시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타입이었다. 일머리도 있고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 덕분에 윤석은 처음부터 오준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오준 역시 윤석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가 원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오준은 윤석이 회사의 실세인 강이사 라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오늘의 사건 역시 이런 상황 속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오준은 윤석에게 최근에 들어온 정대리가 윤석이 싫어하는 무리와 어울리고 있다는 것을 보고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정대리가 윤석을 비난하는 말을 했다는 사실까지도 말했다. 오준이 이렇게 자세한 상황을 알고 있는 이유는 그 역시 그 무리와 어울리며 술을 같이 마셨기 때문이었다. 오준은 윤석의 반대 라인의 사람들을 속으로는 싫어했지만 겉으로는 친하게 지내는 척하며 그들과 어울렸다. 정대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오준이 윤석 라인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오준을 '동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윤석을 비판하는 말이 나오고 다른 사람들이 동조한 것이었다. 오준은 그 자리에서 미소만 지을 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오늘 윤석에게 보고한 것이었다.
"그래요? 정대리 말고 이과장이랑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어요?"
윤석은 관심 없는 듯 무심하게 물었다.
"네. 근데 모두 그런 것은 아니고 곽대리나 송대리 등은 별 말 안 했습니다."
"걔네는 눈치가 좀 있네..."
윤석은 커피를 마시면서 대답했다.
자리로 돌아온 윤석은 생각했다. 사실 사석에서 상사를 까는 것은 이해를 못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 걸로 뭐라 한다면 자신의 입장만 이상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윤석은 이 상황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팀원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 역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주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자 윤석은 정대리를 슬쩍 불렀다.
정대리는 빨리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했지만 윤석은 나중에 해도 괜찮다며 그를 근처 카페로 데려갔다. 그리고 윤석은 정대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에게 욕을 했냐고 물었다. 정대리는 당황하며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윤석은 정대리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회사에서 하는 말들은 모두 나에게 들어오게 돼있어요. 모두 저를 싫어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제 편도 많아요. 혼자서 나를 욕하고 그럴 수는 있는데. 다른 사람들, 특히 회사 사람들과 있을 때는 아니죠. 사람들과 있을 때는 말을 조심하는 게 좋아요."
침묵을 깬 윤석은 차갑게 말했다.
정대리는 입을 다문 상태로 커피만 마셨다. 그냥 윤석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다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이과장이 거기서 내 이야기를 많이 하죠? 이과장은 옛날에 회사에서 큰 잘못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그걸 덮어줬고 그만큼 내가 아낀 사람인데.. 언젠가부터 나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듣더니 갑자기 나를 멀리하더라고요. 아니라고 했는데 아직도 그러는군요. 게다가 다른 직원들까지 꼬드겨서 이런다라..."
"아.. 아닙니다. 제가 차장님의 업무 방식에 대해서 약간 토를 달긴 했지만 욕은 안 했습니다. 오해가 생겼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정대리는 빨리 이 자리를 끝내고 싶어 마지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니에요. 뭐 그럴 수 있지. 그냥 문제 되는 게 있으면 저에게 직접 말하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혼자 생각하는 건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도 나에 대해 오해를 할 수 있어요."
윤석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정대리가 자신에게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아무튼 이과장이 자꾸 정치질을 하는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요. 순진한 정대리님이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계속 이런 문제가 반복되면 제가 이과장을 따로 불러 이야기해야겠어요. 제가 정치질 하는 건 정말 싫어하는데 꼭 이런 일이 생기네요."
"...."
정대리는 윤석의 말을 듣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이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오늘 일은 그냥 잊을게요. 원래 상사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내가 정대리를 아껴서 이런 말 하는 거예요. 알죠?"
".... 네 감사합니다."
정대리는 이과장이고 윤석이고 뭐고 이제 다 짜증났다. 어서 지금 순간이 빨리 지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윤석은 정대리를 먼저 돌려보내고 카페에 남아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이과장을 쫓아낼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작은 건이라고는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야?"
옆자리 부장의 전화였다.
"아 네. 팀원 면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언제 끝나? 담배나 피자!"
"이제 끝났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윤석은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묘안이 떠오른 표정이었다.
회사에서 가장 바쁜 윤석의 하루는 이제 시작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