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디 한 잔으로 시작된 우리의 첫 아침 루틴
한국에서 이민을 준비할 때, 미국 초등학생들은 아침 7시 반 전에 등교한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 시간에 일어나만 줘도 고마울 텐데, 등교라니’ 싶었다. 게다가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알람 소리를 들을 수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첫째 아이의 킨더 입학이 세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진짜 발등에 불 떨어질 때가 되었다. 그동안 늘어놓았던 핑계들은 다 날려 보내고, 제대로 시작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먼저 하루 일과표부터 그려보기로 했다. 첫째의 등교 시간을 기준으로 앞뒤 시간을 체크해 보는 식으로.
06:00 기상
+ 스무디 한 잔
+ 독서 한 권
07:10 출발
07:20 학교 도착 및 등교
14:30 하교 및 귀가
15:00 샤워 후 자유시간
17:00 저녁식사
19:00 취침
처음엔 오전 6시 기상, 오후 7시 취침이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침 준비 시간도 고려해야 하고, 하루 11–12시간은 자야 코피를 흘리지 않는 첫째의 체질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건 아니었다. 필요한 건 오직 노력뿐.
게다가 둘째도 이제는 낮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아마 저녁 먹을 때쯤부터 졸려서 사경을 헤맬 것이다. 그 타이밍에 딱! 눕히면 똭! 딥슬립. 빠른 육퇴다.
둘째는 눈 뜨자마자 “배고파!”를 외치며 밥을 찾지만, 첫째는 (엄마를 닮아) 아침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 아침엔 특히 더 느릿느릿하다. 한두 숟가락 먹으면 다행일 정도. 간에 기별이나 갔으려나 싶은 상태로 학교에 보내자니, 점심으로 나올 패스트푸드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안 그래도 엄청 좋아해서 최대한 조절 중인데, 배고픔에 터지게 먹을까 봐 걱정이다.
또래보다 왜소한 체격인데, 영양까지 부족하면 어쩌나 싶어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한국에서 가져온 책이 떠올랐다. 바로 건강 스무디 레시피북.
채소, 과일, 견과류 등 건강한 재료로 만든 스무디를 아침 대용으로 마시면 시간도 절약하고 영양도 챙길 수 있겠다 싶었다. 문제는 내가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벌떡 일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계획을 세운 다음 날부터 바로 실전에 돌입했다.
(전교 1등 친구의 명언이었다).
첫날밤, 해도 지지 않았는데 잠자리에 드는 걸 이상해하던 아이들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나도 생각해 보니 햇빛이 너무 강하게 들어오는 것 같았다. 다음 날부터는 검정 천을 창문에 달았다. 암막 커튼은 아니라 아쉽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괜찮다. 훨씬 어두워졌다.
이 스케줄로 지낸 지 한 달이 되었고, 요즘은 오전 5시 30분이면 두 아이 모두 스르륵 눈을 뜬다. 전에는 한참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더니, 요즘은 제법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나와 앉는다. 스무디를 한 손에 들고 책을 펼치는 모습이 아침의 작은 루틴처럼 자리 잡았다.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혼자 읽거나 자고 있는 아빠를 깨워 읽어달라고 하기도 한다.
건강한 맛을 선호하지 않는 첫째는 여전히 모닝 스무디 한 잔도 다 마시지 않지만, 다양한 레시피를 시도하다 보니 잘 마시는 조합 몇 개는 찾아냈다. (둘째는 워낙 건강식을 좋아해서 매번 원샷!)
아이들 스무디도 챙기고, 도시락도 만들고, 나와 아이들 등원 준비까지 하려니 아침 시간은 말 그대로 전쟁통이다. 부디 두 달 뒤엔 좀 더 능숙해져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