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눈치 챙기기
첫째의 프리스쿨 졸업식이었다. 그런데 정말 웃기지도 않게, 그날이 졸업식이었다는 걸 하루가 다 지나갈 무렵에야 알게 됐다.
학교에서 보내온 포스터엔 ‘2025 END OF YEAR SHOWCASE’라고 적혀 있었고, 전날 받은 리마인드 이메일엔 ‘Attire: Sunday best(주일 예배에 입는 단정한 옷차림)’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래서 적혀 있는 대로 옷차림만 신경 써서 등원시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10시쯤.
첫째의 친구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We missed you today(heart)’
그와 함께 도착한 사진 한 장.
이런!
첫째와 친구가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고 있었고, 주변은 부모님들로 가득했다. ‘… 이거, 그냥 쇼케이스가 아니었잖아.’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이미 출근해 있었고,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한 날이어서 그나마 조금은 덜 미안했다. 마음 한쪽은 계속 불편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인걸.
다행히 전시장은 자유롭게 오픈되어 있어서, 아이들 픽업하면서 구경할 수 있었다. 지난 1년간 아이들이 만든 프로젝트들이 벽마다 가득했고, 졸업 3개월 전에 입학한 우리 아이의 이름도 여기저기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 충분히 스며들었구나.
늦지 않게 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래도 아이와 남편은 예정대로 하루를 잘 보냈고,
그날 프리스쿨 졸업식은 이렇게 진행됐다.
• 09:15 등원
• 09:30 예배 및 성경 발표
• 작품 전시 관람 및 다과
• 13:00 하원
• 16:30 Graduation Dinner
저녁엔 BBQ 식당에서 졸업 디너가 열렸다. 미국에서는 가족 단위 모임이 거의 놀이터 있는 곳에서 열린다(그동안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한국에서 키즈카페를 자주 갔던 거 생각하면 아이들이 있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한가 보다.
(아이 셋 키우는) 첫째의 친구 엄마가 놀잇감과 먹을거리를 잔뜩 들고 와줘서 아이들은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셋이나 있어서 눈치 백 단인 건지 아니면 이렇게라도 뭐가 있어야 아이들 보기가 더 쉬운 건지. 뭐가 됐든 애써서 가져와준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도 건넸다. 덕분에 아주 시원하고 맛난 아이스바도 하나씩 먹을 수 있었다.
그러곤 첫째는 친구들과 뛰어노느라 엄청 바빴다. 식당 놀이터 옆에 작은 숲 속이 있었는데 어찌나 다들 거길 들어가서는 나오질 않는지. 다치진 않을까 걱정되는 부모들은 잡으러 들어가기 일쑤였다. 우리 남편도 그중 한 명이었고 더군다나 둘째 꽁무니도 따라다니느라 쉴 틈이 없었다.
제일 여유로웠던 사람은 나. 친구 엄마들과 수다 떨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얼굴 익힌 엄마들은 여럿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playdate 하며 가까워진 두세 명과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에 추가로, 나의 입사제안 사건으로 급격하게 친해진 첫째의 담임 선생님과도 티키타카가 잘 맞아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한쪽에선 아빠들끼리 모여 술 한잔하고 있었다. 우리 남편만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한번 용기를 내 보라고 말하고 싶긴 했지만 생각만 하고 말았다. 회사에서 영어 때문에 애쓰고 있는 거 아는데, 쉬는 날까지 머리 쓰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준비되면, 언젠가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술 한잔 함께 하는 날이 오겠지.
결론적으로, 자식 덕분에 엄마가 더 즐거웠던 첫 졸업식이었다. 그리고, 다음엔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 눈치 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