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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엄마들 사이에 뜨는 한국인 선생님

영아반 선생님으로 보낸 한 달, 그리고 작은 다짐

by 우주소방관

새 프리스쿨에서 영아반 선생님으로 일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잠깐의 방학을 앞두고, 다음 달 말부터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예정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달이었지만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참 많이 좋아해 주었고, 나 역시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하루 네 시간, 짧은 돌봄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우리 반에는 다섯에서 여섯 명 정도의 영아들이 함께 지내고 있다.

그중 가장 마음이 가는 아이는, 이제 생후 8개월쯤 된 ‘피터’(가명)라는 아가다.

피터는 내가 첫 출근한 날, 처음으로 프리스쿨에 등원한 아이이기도 하다.


그날 아침, 피터의 엄마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떨리네요~”라는 말을 남기고 조심스레 아이를 맡기고 돌아섰다.


그런데, 아이를 건네받은 선생님이... 처음 보는, 낯선 동양 아줌마였던 거다.

(아줌마라고 부르고 싶진 않지만… 이미 두 아이의 엄마니까, 뭐. 사실상 아줌마지.)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사람, 누구지?’

‘내 아이를 맡겨도 되는 걸까?’

‘동양인인데… 괜찮을까?’

수많은 생각이 겹쳐진 복잡한 눈빛이었다.


이 동네에서 동양인은 흔하지 않다.

유학생 시절에도 자주 겪었던 시선이라, 그날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렇게 이틀, 삼일이 지나면서 놀랍게도 그 낯섦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처음의 경계심은 서서히 사라지고, 눈빛에는 따뜻함과 신뢰가 깃들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 변화가 눈빛을 통해 그대로 전해지다니.


그 변화는, 아마 그녀가 ‘피터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였던 것 같다.

피터는 본래 성격이 밝고 웃음이 많은 아이여서,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든 사랑을 받았을 아이였다.

나는 운이 좋았던 거다.

그의 첫 선생님이 나였다는 게.


어느 날 퇴근을 하려던 참에, 원장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오늘 피터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피터가 선생님을 정말 좋아한대요.”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이 아이의 마음이라는 사실이 너무 벅찼다.


그날 이후, 자연스럽게 책임감이 따라왔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바람도 하나 생겼다.

“ 그 프리스쿨에 코리안 선생님 계시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한대.”

이런 얘기가 이 동네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이 돈다면, 얼마나 기쁠까.


우리 프리스쿨의 원장님이 모두에게 인정받는 분이시듯,

나도 겉으로 보이진 않더라도 ‘마음으로 인정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던 지난 한 달이 있기에,

지금 이 마음만 오래도록 굳건히 지켜낸다면,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 스스로에게 조용히 응원해 본다.

잘하고 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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