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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형 한국인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미국 프리스쿨에서 미술심리치료사를 꿈꾸다

by 우주소방관

나는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미술심리치료를 전공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리고 서툴렀다. 세상도, 사람도 잘 몰랐고 장학금이 절실했다. 그래서 성적만 바라보며 살았다.


결국 좋은 결과는 얻었지만, 마음속엔 늘 쓸쓸함과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조심스러워진다. 지도교수님과의 관계도 그랬다.

그분은 단호하고 철저한 분이었지만, 나는 그때 너무 어리고 세상을 잘 몰랐다. 장학금을 받아야 했기에 성적에만 매달렸고, 관계나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인턴 수업으로 함께 한국에 갔을 때, 나는 그저 분위기를 따라가기에 바빴다. 안전보다 추억을 우선했던 내 모습이 그분 눈엔 경솔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 시간은 내 인생에 최고의 결과물을 줬지만, 동시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어린 학생이었고, 그 기억은 여전히 나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오늘 학교 워크샵을 들으며 오랜만에 그 시절이 떠올랐다. ‘작업치료사‘의 강연이 끝난 뒤, 원장님이 전 교직원과 함께 장애아동을 위한 반 개설에 대해 의견을 나누셨다.


어느샌가 이 이야기만 유독 또렷하게 들렸다. 당장 진행하실 사안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학교 일에서 꽤나 비중이 클 일처럼 느껴졌다.

그 말이 끝나자 머릿속이 잠시 조용해졌고, 그 아이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림처럼 고요했지만 마음 한가운데가 뜨거워졌다.


그때 알았다.

이 학교는 단지 내가 일하는 곳이 아니라, 나의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는 걸. 현실 속에서 안정을 택해왔지만, 오늘만큼은 마음 한쪽이 용기를 내고 있었다.


두려움보다 중요한 게 생기면 사람은 움직이게 된다고 했던가. 그게 지금의 나 같다.


어쩌면 나는 나를 다시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 끝엔 새로운 길이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다시 미술치료 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꿈이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예전엔 ‘해야 하는 공부’였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내가 고민 끝에 선택한 대학원은 Pennsylvania Western University의 미술치료 석사 과정이다. 이 과정은 100% 온라인으로 진행되지만, 실제 임상 실습은 내가 살고 있는 오스틴에서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학교는 미술치료 교육 인증 기관인 ACATE의 정식 인증을 받은 프로그램이라 졸업 후에는 Art Therapist로서의 첫 자격(ATR-P)을 취득할 수 있다.


여러모로 이 과정은 나에게 있어 의미가 깊다.


Financial Aid (학비 지원)까지 챙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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