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月동
작성자_스타
개인적으로 지금 살고 있는 곳의 반대편인 서울의 북서쪽 끝 은평구까지 갈 일은 잘 없다. 그런 드문 날들 중 하루, 지나가면서 본 가로로 길쭉한 아파트가 시선을 끌었다. '유진맨숀'. 그저 오래된 아파트겠거니 하고 기억에서 잊은 어느 날, 그 아파트 아래 '홍제유연'이라는 공공미술 공간이 새로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진맨숀'은 1970년 군사 방어 목적을 겸해 지어졌다고 한다. 북한군이 내려온다면 청와대 등 서울 도심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에 이를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제야 성벽 같이 가로로 긴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탱크가 지나다닐 수 있게 필로티 구조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연유로 50년 동안 통제되었던 지하를 시민에게 개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흐르기 시작한 홍제천 물줄기와 함께 지역 역사를 담은 설치미술들이 이곳의 과거를 현재로 이어주고 있었다.
지하 공간 뿐 아니라 두 동을 잇는 구름다리도 재밌었다. 삭막한 도시 생활에 마당이 있는 집을 항상 꿈꿔왔었기 때문일까, 구름다리에 올라가자 비밀공간에 발을 들여놓은 듯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마다 텃밭과 꽃밭을 가꾸어놓은 모습이었다. 데크를 설치하고 의자를 내놓은 곳도 있었는데 날이 저물면 전구를 밝히고 파티를 하기에도 적합해 보였다.
두 동은 서로 높이가 맞지 않았는데, 아파트가 세워지고 수십 년 후인 1991년 새로운 도시계획에 따라 고가차도가 이곳을 지나게 됨에 따라 B동의 4,5층을 잘라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머지 층도 소음 등으로 사람이 거주하기는 불가능해졌다. 오랜 분쟁 끝에 주민들은 시에서 보상금을 받아 모두 이사 나가고 그곳에는 현재 공유 캠퍼스가 들어와 있는 모습이었다. '홍제유연'에 상영되고 있던 다큐멘터리에서는 이곳을 오래 지킨 주민과 상인들이 화려했던 시절을 쓸쓸히 돌아보고 있었다.
'홍제유연'에서 나와 홍제천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북악산 방면으로 오르막길을 오르자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우는 '개미마을'이 나왔다. 이곳에도 산에서 흘러나와 홍제천에 합류하는 천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위에 지어졌는지 아슬아슬한 기둥에 의지하고 있는 집부터 다리 아래에 얼기설기 지어진 집까지...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을 고단한 삶이 그려졌다.
그 와중에도 한 집은 바깥에 보이는 벽에 액자를 걸어놓고 몽환적인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다. 도시에서라면 층간 소음 때문에 엄두도 못내었을 음량이었다. 왠지 노총각 예술가가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상상이 갔다.
노후화된 아파트 마당에 텃밭과 꽃밭을 가꾸는 이들, 도시의 엄격함을 피해 산골마을로 올라온 이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도 삶을 가꾸는 이, 낭만을 지키는 이가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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