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외도에서는
[부부 싸움 일기]
그런 날이 있다. 누군가 그리워지는 날. 일, 책임, 역할 뿐인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날. 밑도 끝도 없이 올라오는 존재에 대한 불안함, 응석을 부리고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은 날. 세상 많은 바람이 일상을 흔들고 비틀비틀 신호를 보낼 때 ‘외도'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몸의 욕구에 충실했던 연애 시절에는 몸으로 하는 대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서로 잘 알고 잘 통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애시절 서로를 향해 마주 보던 유혹의 호르몬은 매일매일 부딪쳐 살아내야 하는 일상의 삶으로 바뀌고 만다. 결혼, 육아, 직장, 가사 등 과다한 업무는 자신을 챙길 시간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부부관계 횟수가 줄고, 점점 섹스리스 부부가 되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가족끼리 무슨 ‘붕가붕가’냐며 가당치도 않다는 손사래를 치며 웃고 넘어간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많은 부부들이 각자의 성적 욕구를 각자 알아서 감당하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한 듯 보인다. 오래된 부부들은 의무방어전으로 불편해지는 것보다는 각방을 쓰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러다 문득문득 자녀를 키우고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형식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일까 묻게 된다. 언제까지 아이를 핑계 대고 말 것인지, 그렇다면 아이가 다 크고 독립하면 부부는 헤어져야 하지 않나? 점점 그 질문에 허심탄회하게, 정직하게 답해야 할 순간이 온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일상에 찌들어 자신이 만든 견고한 성 안에 갇혀 있던 어느 날, 바람은 불고 늘 향하던 집이 아닌 외도로 달려간다. 희뿌연 안개가 자욱하다. 마음은 벌써 그곳을 향해 있다. 자신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가 뒤섞인 채 무작정 길을 나선다. 외로움은 그리움과 동의어인 것처럼 한 몸이다. 외롭다. 누군가 그립다.
외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존재만으로도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또 줄 수도 있다. 가볍게 여겨졌던 성적 매력을 되찾기도 한다. 행복한 기억이 재생되면서 몸과 마음이 젊어지고 활기차다. 거기에서는 역할이나 일이 우선되지 않는다. 순간의 욕망에 충실한 강렬한 욕망의 탈주곡이 연주된다.
반대로 외도는 세상과의 단절을 대가로 요구한다. 변화하지 않는다. 성장하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 남이 하면 불륜 ’이라는 생각에 빠져 자신의 경험을 미화하고, 남의 경험을 비하하는 우를 범한다. 결혼 후 외도는 함께 일궈왔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뿌리 채 흔들어대기도 한다. 결혼으로 파생된 역할의 권태로움으로 외도를 찾지만, 쾌락과 기쁨은 잠시뿐, 새롭다고 믿었던 것도 헌 것이 되고 만다. 다시 권태다. 외도에는 가족이라는 안전장치가 없다.
다시 외도를 떠난다. 결혼으로 갖게 된 작은 세상, 가족과 바꿀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어느 것도 없다. 일탈이 믿음을 배신할 수는 없다. 그 결정은 자신에게 외치는 소리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고.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사랑은 집착이라고. 그것은 죽음이라고. 자신의 물음에 스스로 답하고 있다. 그 누구에게도 죄책감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바람 부는 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외도를 꿈꾸지 않는다. 사랑받고 싶다는 느낌, 그것은 자기 자신과 멀리 떨어져 누구도 돌보지 않던 자신의 내면을 보듬고 쓰다듬는 일이다. 식물에게 물을 주듯 자신에게 사랑을 주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내면을 대신 사랑해 주지 않는다.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라고 , 그건 자기 사랑의 확인이자, 자신에게 내려진 숙제와도 같다. 자신과 친밀해지라는 내면의 목소리이자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