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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24. 2024

아직도 줄이어폰 쓰는 사람이?

약속까지 시간이 넉넉하다. 날씨도 선선하고 하늘도 맑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탈 버스가 곧 도착 예정이란다. 버스에 올라타서 보고 싶던 영상을 켰다. 지인이 동기부여가 엄청나게 된다며 추천해 준 영상이다. 딸깍, 이어폰 케이스를 연다. 한 쪽씩 잘 끼우고 영상을 재생한다. 잘 끼웠는데 소리가 너무 작다. 아직도 무선이어폰에 적응이 덜 된 것 같다. 소리를 조금 키워본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라고 한다. 지금을 충실하게 보내면 미래는 당연히 좋아진다고 한다. 요즘 열심히 갓생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힘들어도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차였다. 그래야 원하는 미래를 맞이할 수 있겠지 싶었는데 아니었구나, 깨닫는다. 현재에 충실해야 행복도, 미래도 온다는 말에 마음 깊이 공감하는 와중에 자꾸만 음감이 멀다. 소리를 키워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몰입하려 노력하며 영상에 다시 빠져든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어 이어폰을 빼본다. 이럴 수가. 이어폰은 이미 꺼진 상태고 핸드폰 밖으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각 해보니 띠링, 하는 연결 알림음이 안 나왔던 것 같다. 민폐 승객이 되어버렸다. 주변 사람을 둘러본다. 눈살 찌푸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당연히 불편했을 터다. 으악, 죄송합니다.




매일매일 사용하는 이어폰이 아니다 보니 쓰려고 열면 빨간불이 깜빡인다. 그럴 때를 대비해 가방에는 늘 줄이어폰이 대기 중이다. 빠질 염려도 없고 왠지 마음이 편하다. 무선이어폰이 처음 나왔을 때는 신기하기도 하고 디자인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이어폰을 사용할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구매하지 않고 넘어갔다. 구매하진 않았다. 실은 사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지만 그야말로 욕심에 사는 것이라 사용 빈도가 현저히 떨어질 것 같았다. 내가 남편 이어폰을 궁금해하며 만지작거렸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느 날 남편이 이어폰을 사 왔다. 생각지 못한 깜짝선물에 뛸 듯이 기뻐하려 했는데 시원찮은 반응을 하고 말았다.

"앗, 나 이어폰 잘 사용 안 하는데, 괜찮은데. 고마워. 잘 쓸게."

남편은 출퇴근 시간에 늘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다. 무선이어폰을 사용하는데 지금까지 4-5번은 이어폰을 잃어버린 것 같다. 한 번은 잠이 들었는데 저도 모르게 빠져있었다고 했던 것 같고, 한 번은 버스에서 내리며 떨어졌는데 공교롭게도 하수구 구멍에 퐁당 했다고 한 것 같다. 그게 기억이 나서인지 나도 모르게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릴 때면 이어폰에 손을 갖다 댄다. 그것도 좀 불안해서 내릴 때 미리 빼서 케이스에 넣었다. 환승하거나 할 때는 좀 번거로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줄이어폰이 편했다. 어떤 배우가 늘 줄이어폰을 끼고 다녀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배우 덕에 줄이어폰이 다시 핫한 아이템이 되었다는 소식이 좀 반가웠다. 시간이 갈수록 줄이어폰을 꺼내기가 민망해졌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주섬주섬 꺼낸다. 보통은 약간 엉켜있어서 풀면서 주변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무선이어폰이다. 경로우대석에 앉아계신 분들까지.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용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주축이었던 듯한데 신문물이 빠르게 퍼진 듯하다. 뭐든지 각자의 기호와 성향에 따라 각자 다른 물건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어폰은 유독 느낌이 다르다. 남들은 버튼을 눌러 차창문을 내릴 때, 혼자 손잡이를 돌려가며 창문을 내리는 느낌이다. 다들 휴대전화로 전화할 때, 나 혼자 동전 들고 공중전화를 찾는 느낌이다.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혼잣말하고 중간중간에 웃기도 하는 사람을 마주친 적이 있다. 괜한 노파심에 조금 둘러 갔다. 지나가면서 보니 무선이어폰을 끼고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몇 번 같은 상황을 마주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나중에 VR 영상통화 같은 것이 보편화되면 사람들이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길을 다니게 될까?

카페에 앉아 책을 펼쳐 든다. 아이 학원을 기다리며 오는 이 카페의 최대 단점은 테이블간 거리다. 가게 자체가 크지 않아 테이블이 몇 개 없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굉장히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 정도면 거의 동석한 수준 같지만 학원과 가장 가깝고 좋아하는 커피메뉴도 있어 자주 오게된다. 오늘도 역시나 듣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자꾸만 내 귀에 와서 꽂힌다. 이번 독서 모임 책이라 집중해서 읽고 싶은 마음에 가방에서 이어폰을 찾는다. 이번에는 무선이어폰을 써볼까 했는데, 없다. 충전하려고 잭을 꽂아두고 나올 때 깜빡했다. 하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줄이어폰이 있다. 안도하며 든든한 내 편을 꺼내 든다. 음악을 트니 시끌시끌 수다 떠는 옆 테이블이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는다.

얼리어답터까지는 아니지만 새로운 것이 나오면 먼저 체험해 보고 싶고 늘 궁금한 쪽이었다. 점점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에 손을 뻗는 것 같아서 걱정되지만 필요할 때 같은 자리에서 날 바라봐주는 쪽에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나 핑계를 대본다. 오늘도 완벽한 나만의 세상으로 데려다준 것은 줄이어폰이다. 에어팟이 있음 뭐하나, 여전히 내 마음속 대세는 줄이어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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