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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17. 2024

여름의 맛, 참외 샐러드

참외에 올리브유를 뿌리고 후추를 뿌려 먹으라니, 처음엔 아주 독특한 레시피라고 생각했다. 과일에 후추가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조금 괴상하다고까지 생각했다. 작년 여름에 세일하는 참외를 잔뜩 사서 냉장고 과일칸 하나가 참외로 가득 차 있던 적이 있었다. 남편도 아이도 깎아 놓으면 다들 한 조각이나 먹을까, 나머지는 모두 내 차지였다. 아삭아삭 달고 시원했지만, 열심히 먹어도 줄지 않는 것 같아 지겨워졌다. 참외 샐러드가 생각나서 한 번 시도나 해볼까하고 괴상한 샐러드를 만들어 보았다. 어머나, 이게 무슨 맛이지. 기대가 없어서인지 아주 놀라웠다. 단짠단짠에 후추 풍미까지 올라와 참외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치즈까지 곁들여 먹는다길래 집에 있는 조그만 모짜렐라 치즈를 올렸더니 아이도 몇 입 먹는다. 올해도 참외가 나왔다. 이제는 참외를 보면 샐러드가 먼저 생각난다. 만드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올리브유, 알룰로스, 레몬즙을 섞어서 뿌린다. 후추를 충분히 뿌린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참외씨지만 이 샐러드에서는 씨를 제거하지 않는 것이 단맛이 충분해서 더 좋았다. 알룰로스는 칼로리가 적고 혈당을 올리지 않는다고 설탕 대체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감미료다. 단맛이 충분한 것 같아 알룰로스를 빼고 식초를 뿌려봤는데 새콤한 맛도 살짝 나서 질리지 않는 것 같아 좋았다. 짠맛도 좀 더 추가하려고 치즈를 넣는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이런저런 맛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쫀득한 모짜렐라치즈도 좋고 부드러운 리코타치즈와의 궁합도 아주 좋았다. 이러나저러나 아무래도 이 샐러드의 포인트는 후추가 아닐까 싶다. 어떤 조합을 하더라도 후추만은 충분히 양껏 뿌린다.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였는데 참외 샐러드의 핵심 멤버였다. 

올리브유, 레몬즙, 알룰로스를 적당히 뿌려본다.

십 년 만인가, 정말 오랜만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자기소개, 지원동기, 실패경험을 서술해 본 것조차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면접자로 들어왔던 실무자들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그 나이쯤 되면 긴장하는 일 같은 게 없는 줄 알았더니 그것은 말 그대로 경기도 오산이었다. 사회생활이 중단된 채 나이만 먹으니 오히려 더 떨리는 것 같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짜 늦은 거라던 박명수의 말은 틀림이 없다. 대신 지금이 지나면 더 늦어지니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시작하자. 

아이를 데려다주는 게 전부인 일상이니 면접장에 어울리는 옷 찾기가 힘들다. 바지를 찾았더니 매치해 입을 상의가 없고, 겨우 셔츠를 하나 생각해 냈더니 어울리는 신발이 없다. 그렇지만 면접 복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외 샐러드의 후추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양념이 들어가더라도 후추는 빼먹지 않고 넣는다. 전체 식재료의 맛을 끌어올려 주는 핵심적인 존재가 되자.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후추가 되는 길일까. 간절함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취업 준비할 때도 선배가 해줬던 말 중에 이해가 잘 안 되었던 것은 면접의 당락을 가르는 것은 간절함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능력보다도 면접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간절함이라고 하는데 취업 준비하는 사람 중에 간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졸업했고, 대규모 채용 시즌까지 한참 남았을 때 딱 하나 남아있던 면접에서 합격하고 나자, 선배의 말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면접관의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내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회사에 다닐 것인지 설명하고 싶었다. 그때처럼 나는 지금 아주 간절한 마음일지 생각해 본다. 아주 오랜만에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만났다. 가만 따져보면 아주 오랜만이 아니라 처음인 것 같다. 오히려 회사에 다니다가 한참을 쉬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경력이 단절되어 있던 시간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한 과정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늦게 시작하려니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되고 의지를 굳게 다지게 된다. 다시 시작하는 지금은 멀리 보기보다 바로 코 앞만 보고 달리고 싶다. 잠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브레이크 없이 달려보고 싶다. 오래도록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한 번쯤은 그래보고 싶다. 취업 준비할 때는 하고 싶은 일, 원하는 일을 찾기보다 가고 싶은 회사, 다니고 싶은 기업을 찾았던 것 같다. 이제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다. 회사를 다녔다가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고, 책을 읽고 쓰게 되고, 아이가 크고 돈이 궁하고, 건강이 안 좋았고, 인간관계에 고민이 많았고. 그동안 살아온 모든 날이 나의 지금을 만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는 미래를 위해 지금의 기회가 왜 간절한지 아주 확실해졌다. 이대로 면접 날까지 간절함 끌어올려!


중년의 위기는 중년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삶을 그 상태 그대로 사랑할지 아니면 원하는 대로 바꿀지 결정하는 바로 그 지점으로 당신을 데리고 온 것은 오로지 지금까지의 삶이다. 명상살인 3. 카르스덴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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