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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Nov 20. 2023

할 수 없이 동치미를 담근 이유

띠로로롱 띠로로롱

“ 네 어머님~”

“ 그래, 잘 지내고 있니? 이번 주말에 뭐 하니? 일 없으면 날이 추워져 영하로 내려간다는데 무 뽑으러 올래?”

'날이 추워져 영하로 내려가는 주말 날씨'가 힌트다. 이번 주말 말고 다음 주말에 가는 것은 오답이다. 결혼 10년 차가 되니 정해져 있는 답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 이번엔 무를 심으셨어요?? 주말에 갈게요~”

시부모님은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텃밭을 작년부터 가꾸고 계신다. 경쟁률이 셌지만 아는 분이 있어 특별히 분양받으신 것 같다고 하신다. 손주들이 농장 체험도 하고 가족들은 유기농 야채도 먹고 얼마나 좋겠냐며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시작하셨다. '어머님, 유기농 야채는, 땅이 이전 3년간......' 할 말이 없지 않았지만 조곤조곤 혹은 따박따박 어떤 단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내공이 있는 며느리는 아니다.



경험이 없어 처음에는 이것저것 욕심껏 심으셨다고 했다. 상추, 오이, 방울토마토, 딸기, 애호박, 가지, 감자 등을 심으셨고 자주 들여다보시며 많은 애정을 쏟으셨다. 수확을 할 때마다 시부모님의 마음은 뿌듯함으로 가득 찼고(아마도) 어머님의 두 아들네 냉장고는 온갖 야채로 가득 찼다. 그중 존재감이 가장 강한 것은 상추였다. 출석률 100%랄까.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디폴트값이랄까. 시댁에 갈 때마다 장바구니 한가득 담겨있는 상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추는 겁나는 성장속도를 가진 녀석이었다.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스스로를 혹은 자손들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황금상추면 참 좋았을 것이다) 다행히 흙에서 자란 상추는 마트에 파는 수경재배 상추와 달리 냉장고 속에서도 한참 동안 싱싱함을 유지했다. 고기 구워 먹을 때 쌈도 싸 먹고 상추겉절이도 해 먹었다. 나중에는 상추나물(상추를 삶는다니, 상상해 보지 못한 레시피였지만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았다.)까지 해 먹어 봤지만 냉장고에 상추가 입고되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점점 냉장고에 시든 상추가 쌓여갔다. 혹시 무인도에 떨어지거나 전쟁 중에 먹을 것이 없을 때 상추모종 하나를 구할 수 있다면 아마 야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지구가 멸망할 때 한 줌의 흙과 상추모종 하나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것 같다.


장군, 우리에게는 아직 뽑아야 할 열 두 고랑이 남아있사옵니다.


이번 연도에는 무가 상추의 바통처리를 받았나 보다. 주말에 가서 본 시댁 자그마한 텃밭에는 무가 잔뜩 자라 있었다.(내 눈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논처럼 무가 끝없이 심어진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저번에 열무 같은 무를 몇 개 주셨었기에 손가락 몇 개정도 크기의 열무겠거니 짐작하고 뽑은 무는 나의 예상을 무참히 깼다. 일반 무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내 주먹보다 큰 튼실한 녀석들이었다. 심지어 어떤 녀석은 내 주먹 두 개를 이어 붙인 것보다 크기도 했다. 무를 뽑다 허리를 들어본다. 밭에 조르륵 보기 좋게 심어져 있는 무는 아직 한참 남아있었다. 비싸고 맛있는 청무라고 하신다. 가족들이 열심히 뽑아놓은 무들은 꽤 높이 쌓였고 필요 없는 큰 잎들은 떼버리고 무만 남기기로 했다. 사양하고 사양해서 가져왔지만 집에 와서 보니 꽤 아니, 아주 많았다. 이를 어째.



동치미 레시피를 뒤진다. 동치미 황금레시피. 동치미 알토란 레시피. 동치미 간단하게 담는 법. 각자의 필살기가 하나씩 들어간 레시피가 끝없이 펼쳐진다. 찹쌀풀을 쑤고 과일을 갈고. 혹은 사이다를 넣고 뉴스가로 무를 절이고. ‘간단한 걸 찾자, 간단한 거.’ 할 수 있을만한 것들로만 채워진 레시피를 고른다. 딱 봐도 꽤 오랜 시간 무를 썰어야 할 것 같아 부엌바닥에 각을 잡고 앉아본다. 무도 통째로 담는 법, 반달모양으로 담는 법, 손가락 크기로 담는 법. 선택해야 할 것이 참 많다. 열심히 썰고 썰어 김치냉장고의 통 하나를 가득 채웠다. 소금을 팍팍 쳐서 무를 절인다. 1-2시간 후 무가 휘어지면 잘 절여진 거라던데 내 무는 뚝 부러지지만 못 먹어도 고다. 그다음은 물을 잔뜩 붓고 사과와 배와 양파 간 것은 투하한다. 다시팩에 담은 편 썰은 마늘과 생강도 툭 던져 넣는다. 쪽파와 홍고추, 어제 사둔 고추장아찌도 한 팩 넣는다. 그리고 실온에서 이틀정도 숙성해서 간을 다시 맞추고 탄산수나 사이다를 넣으라고 한다. 간단하지 않았지만 해치웠다는 개운함에 입술 끝을 억지로 끌어올려본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가끔 내가 베푸는 호의가 타인에게도 진정한 호의일지 생각해 본다. 오늘 내가 많이 부쳤다며 저녁 반찬 하라며 나눠준 파전이 혹시 그 가족의 입맛에는 안 맞는 것은 아닐지, 피자를 시켜 먹으려던 저녁 계획을 방해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호의도 배려도 분명 받는 쪽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주는 호의가 상대에게는 아니라면 마음이라도 전해질 수 있을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도 타인을 100%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면 '진정한' 배려란 가능한 것일까. '진정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참되고 올바르다. 상대를 위해 내가 베풀 수 있는 '참되고 올바른' 행동은 과연 무엇일까. 최대한 상대의 입장과 사정을 고려해 보자.  반대의 입장에서도 내가 반길 수 있는 말과 행동과 물건을 주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면 상대는 자신에게 준 것들의 옳고 그름, 선호비선호를 따지기 전에 상대를 생각하며 준 마음 만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진정하다의 사전적 의미까지 찾아가며 참된 배려와 올바른 호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이유는 마음을 주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래, 애초에 내가 주고 싶은 것은 그것일 것이고 내가 받고 싶은 것도 그것일 것이다, 마음.

그럴듯 해보였는데 며칠 뒤 먹어보니 망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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