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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Sep 25. 2024

지휘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오케스트라 공연을 다녀왔다. 아이와 함께 클래식 공연을 즐기고 싶었다.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리는 동안 집에서는 클래식 라디오를 틀었다. 아이가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함께 보낸 사연이 방송되고 난 뒤였다. 매번 소개되지는 않아도 종종 사연을 보내고 함께 집중하며 듣는다. 아직 음악은 곁다리일지 몰라도 익숙해지기를 기대했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아이들을 위한 재밌는 공연을 찾았다. 찾아보니 길게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공연 시간도 짧고 중간중간 해설해 주는 공연이 많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나오기도 한다. 이제 많이 커서 한 시간 정도는 지루함을 찾으며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인터미션을 기준으로 둘 중 한쪽 공연은 졸기가 일쑤다. 이제 시작이니 함께 공연 보러 다니는 것에 만족한다. 공연을 본 후에 아이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생각해 본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조금 더 흥미롭게 공연을 볼 수 있을지, 나중에 다시 공연장에 오게 될 때 싫지 않으려면 어떤 기억을 남겨주면 좋을지 고민한다. 곡과 작곡가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오케스트라와 공연장에 숨겨진 디테일을 알려주려 노력한다. 그러려면 나부터 많이 알아야 하니 공연 전에 프로그램 북을 사서 예습한다. 아이도 나도 보고 들은 모든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경험과 순간들이 반복되고 쌓여서 나중에는 공연에 푹 빠져 즐길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한다.

이번 공연은 지휘자가 나와서 오늘 연주할 곡과 작곡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는 공연이었다. 프로그램 북에 나온 지휘자의 프로필을 보니 00 대학교 작곡과 지휘 전공이다. 작곡과 세부 전공에 지휘 전공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지휘 전공은 어떤 실기를 보고 입학하고, 어떤 과목을 배울까 연이어 궁금증이 솟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지휘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위한 클래식 공연.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 지휘대에서 온몸을 써가며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지휘자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주인공처럼 연주 준비가 모두 된 뒤에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관객들은 지휘봉이 올라가기까지 숨죽이며 지휘봉 끝에 시선을 모은다. 모든 곡이 연주되고 난 뒤 지휘자가 퇴장할 때까지 단원들은 자리를 지킨다. 가만 보면 곡을 연주하는 것은 단원들인데 지휘자가 더 많은 공을 차지하는 것 같다. 막상 연주 중에는 단원들은 지휘자를 보기보다 악보를 보느라 여념이 없는데 말이다. 물론 중간중간 앞을 보지만 내내 지휘자를 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지휘자는 연주하는 내내 고개 숙이고 연주에 매진하는 단원들을 향해 쉬지 않고 지휘봉을 흔든다. 지휘자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지휘자가 꼭 필요한 걸까? 처음과 끝에만 등장해도 되는 것은 아닐까? 여러 사람이 같은 박자로 연주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메트로놈을 켜놓고 연주하면 어떨까? 미래에는 AI가 지휘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 아는 지식이 별로 없는 덕에 상상의 나래는 끝도 없이 펼쳐진다. 지휘자에 따라 곡 해석이 달라지고 단원들의 연주 실력도 달라진다고 들었다. 스포츠팀의 감독을 떠올린다. 경기를 뛰는 것은 선수들이지만 전술을 짜고 선수들 각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구나 생각한다. 곡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악기와 단원들이 가진 개별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그러려면 먼저 연주할 곡을 세세히 알아야 하고 연주하는 단원과 악기 역시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 같다.




최근에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 '파도치는 인생에서 다시 길을 찾는 법'에서는 인생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목적은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데 꼭 필요하다.
목적을 모르는 채로 살아가면 그냥 나이만 들뿐이다. 하지만 의식적인 선택과 함께 나이가 들면 인생에서 길을 잃더라도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으므로 성숙하고 지혜로워진다.

인생의 목적이라니. 과연 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었는지 되짚어본다. 책을 읽으며 아무리 열심히 떠올려 봐도 머릿속은 흐릿하다. 생각나지 않는다. 당연하다, 인생의 목적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서 삶의 목적은 방향이라고 한다. 나의 인생은 지금 어떤 방향을 향해 있을까. 매일 아침 일어나면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쫙 펼쳐져 있다. 하루가 잘 굴어가려면 엄마로, 아내로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한다고 티 나지는 않지만 안 하면 눈에 띄는 매일의 과업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 이따금 딸로, 며느리로 수행해야 하는 덩치 큰 과제들도 있다. 눈앞에 처한 상황에 늘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을 뿐 내 삶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인가.

각자의 소리를 내며 열심히 악보대로 연주하지만 모두를 아우르는 지휘자가 없다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곡은 어떨까? 그동안 난 지휘자 없이 인생을 연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냥 펼쳐져 있는 인생이라는 악보를 매우 열을 올리며 각자의 연주에 매진해 있었다. 모두 합쳐져 어떤 음악이 되고 있는지는 관심 없다는 듯 바이올린은 바이올린대로, 플루트는 플루트대로, 클라리넷은 클라리넷대로 주어진 악보만 바라보며 제 멋대로 연주하고 있었다. 나의 의도와 상관이 있든 없든 무수하게 많은 사건이 인생에 펼쳐진다. 내가 원하지 않았다고 한들 이리저리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지휘할 수 있다. 모두가 잘 어우러지고 조화롭게 지휘해야 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악보를 어떻게 연주하면 좋을까. 오로지 나만이 정할 수 있다. 곡이 모두 연주되고 난 뒤 땀에 흠뻑 젖어 열정적으로 지휘했던 지휘자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지듯이 내 인생이 나의 의도대로 잘 연주되고 나면 나 역시 박수받을 것이다. 앵콜곡을 연주할 수 없다고 브라보를 외치지 못하게 막을 필요는 없다. 관객들이 환호하지 않으면 내가 외치면 된다. 브라보, 브라보. 그러려면 일단 악보를 들여다보며 열심히 궁리부터 해야겠다. 어떻게 해야 인생의 목적이라는 방향을 향해 한데 어우러져 갈 것인지 연구해야겠다. 지휘가 끝나고 흡족한 표정으로 스스로 열렬히 손뼉 치는 지휘자를 상상하니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뭐 어떤가. 브라보, 브라보, 마이라이프. 누가 뭐래도 공연장이 떠나가라 외쳐야겠다.


이번 곡 연주를 맡은 지휘자 다정한 여유는
인생대학 목적학과 지휘전공입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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