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 17.
"그냥 마감만 해 주시면 돼요. 들어가서 살 수 있게만 해주세요."
이 집에 더 오래 살 줄 알았지만, 인생은 늘 뜻밖의 일이 발생하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들어간다. 갑작스러운 이사 결정에도 다행히 집 계약은 순조로웠다. 집을 보여주고 또 보러 다니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지난 이사를 떠올리면 이번엔 운이 좋았음에 감사한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이사보다 더 골치 아픈 숙제가 남았다. 바로 '인테리어'다.
어쩌다 보니 이사할 때마다 공사를 하게 되어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이쯤 되면 경험이 쌓일 만도 한데, 꽤 오랜 시간을 두고 하는 일이라 그런지 내공은 쌓이지 않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다. 다만 여러 번의 인테리어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인테리어가 참 아깝다는 것이다. 비싼 돈을 들여 집을 고쳐봤자, 집을 팔 때 그 가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물론 사는 동안에는 쾌적하게 살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그렇게 즐겁게 사는 동안은 마치 감가상각이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집을 파는 시점이 되면 인테리어의 잔존가치는 ‘0’으로 수직 낙하해 버린다. 차라리 그 비용을 가구에 썼다면 남기라도 했을 텐데 말이다. 인테리어야말로 우리 집에서 가장 고가의 사치품이자 영원히 소유가 불가능한 소모품이다.
그래서 이번 인테리어의 화두는 '무엇을 더 뺄 것인가'이다. 견적서를 보고 치솟은 자재비와 인건비에 경악했다. 게다가 인테리어에 대한 관점도 바뀌어버려서 이번에는 철저히 기본만 하겠다는 생각에 ‘들어가 살 수만 있게 해 달라’고 말해 인테리어 사장님을 당황시킨 것이다. 문제는 이사 갈 곳이 손대지 않을 곳이 없는 아주아주 오래된 아파트라는 점이다. 기본 공사만으로도 견적서의 숫자가 만만치 않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인건비 항목을 볼 때면 기술이라도 배워 내 몸으로 한 사람 몫이라도 때우고 싶은 심정이다.
뺄 수 있는 건 모조리 빼보려는 이번 인테리어가 날 얼마나 괴롭힐지 걱정이지만 내심 기대되기도 한다. 과연 어디까지 덜어낼 수 있을지, 도전 과제를 받은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난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오늘도 견적서를 들고 씨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