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참 심해 1, 2학년 학부모총회를 모두 줌으로 진행했다.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는 반내향인은 줌 총회가 반가웠다. 1학년 때는 총회에 참석해야 하는 건지 몰라서 참석여부를 묻는 설문에 큰 고민 없이 불참으로 회신했다가 당일에 부랴부랴 들어갔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반대표는 어떻게 선출이 되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2학년 총회는 뚜렷하게 기억난다. 놀라운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총회날짜를 잘못 기억해 약속에서 돌아오는 길바닥에서 이어폰을 끼고 화면을 끈 채 총회에 참석해 겨우 소리만 듣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소개 후에 담임 선생님은 반대표를 자원해 주실 어머니를 찾았다. 2학년까지는 반장이 없어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자리가 아니었지만 어디나 대표자리는 자원하시는 분이 한 분쯤은 계시기에 조용히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한참이 지나도 그분이 나타나지 않는 게 아닌가. 잠시 후, 담임 선생님이 호명을 하시기 시작했다. "사자어머니, 반대표 좀 맡아주시겠어요?" 허걱, 이렇게 일대일로 짚어가며 물어보신다고? 나를 호명하시면 어쩌지, 반대표가 필요하긴 할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해도 되는 건가? 짧은 순간 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호명당한 어머니 한 분은 아이가 어려서, 또 다른 분은 일을 하셔서, 또 다른 분은 올해 유독 바쁘셔서 반대표를 거절하고 계셨다. 한 분씩 호명을 하는 것도, 어머니들이 거절하는 것도 당황스러워 어리둥절하는 사이 내 차례가 오고 있었다. 어떤 답을 해야 하나 걱정에 가던 길도 멈춘 채 안절부절못했다. 거의 내 차례가 온 것 같았는데 어떤 어머니가 반대표를 맡아주셔서 총회는 무사히 막을 내렸다. 교통지도를 하는 녹색어머니대표, 하굣길지도를 하는 폴리스대표가 남아있었지만 의외로 두 역할은 금방 동이 났다.
다음 학년은 반장을 뽑기 시작했기 때문에 반장어머니가 반대표를 하는 암묵적 룰이 있었다. 1, 2학년 내내 발표 한 번 안 하던 아이는 갑자기 무슨 마음이었는지 반장선거에 나갔고 덜커덕 당선이 되어 왔다. 자동으로 반대표는 내 차지가 되었다. 공약도 혼자 정하고 발표준비도 스스로 해간 것이라 참으로 기특했지만 반내향인에서 온전한 내향인으로 전향 중이던 나에게 반대표는 꽤나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가고 거리 두기가 해제되던 시기라 총회는 대면으로 이루어졌다. 총회에 앞서 온 전자설문에서 반대표 엄마라는 책임감에 눌려 오지랖을 부려버렸다. 녹색대표, 폴리스 대표를 자원하시는 분이 안 계시면 제가 맡겠다고 한 것이다. 자원하시는 분이 계셨던 2학년 시절의 기억이 전부인 왕초보 엄마는 같은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 넘겨짚었다. 나의 바람은 보기 좋게 산산조각 났고 전혀 예상치 못하게 반대표와 녹색대표와 폴리스대표를 모두 맡는 1년이 시작되었다. 다행인지 특별히 하는 일은 별로 없었고 학교나 학부모회의 연락을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어머니들의 적극적 협조로 어려움 없이 경험치를 쌓을 수 있었지만 1년 내내 맡은 바 책임, 이라는 글자가 마음속에 콕 박혀있어 편치 않는 시간이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학교의 잦은 전달사항으로 단톡방을 딸랑딸랑 울리게 하는 것도 조금 어려웠다. 아이의 임기는 6개월로 끝났는데 엄마의 임기는 1년이었다는 사실을 1학기가 끝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개학이 다가오니 이번엔 누구 머리 위에 왕관이 씌워질지 걱정이다. 누구도 자원하지 않는 고요 속에 눈치가 오가는 상황이 오면 또 손을 들 것 같다. 봉사하는 좋은 마음으로 가볍게 임하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어떤 일에도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대표를 맡았던 기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면서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을 모른 척하는 것도 어렵다. 닥치기 전에 너무 미리 걱정하는 것은 별로지만 개학하기 전에 생각은 확실히 해서 이번에는 여러 자리를 모두 맡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다. 왜 자꾸 원하지 않는다면서 자원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실은 감투를 좋아하는 성격이었을까??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었든 아니든 새 학기 첫날은 긴장되는 날이었다. 자리도 번호도 정해지지 않아 아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반친구들을 둘러본다. 어떤 친구들일까 궁금한 것도 잠시 앞문이 드르륵 열린다.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한 곳에 모이고 짧은 순간 긴장은 최고치가 된다. 어떤 선생님이 반을 맡으실지, 새로 어떤 친구들은 사귀게 될지 새 학기는 아무래도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대표엄마를 자청하는 것은 학창 시절을 투영한 기복신앙 같은 것 아닐까. 일명 기복봉사. 학교에 봉사하며 대표 활동을 하면 아이가 새 학기에, 새로운 반에 좀 더 적응을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라는 마음. 불안하고 긴장되는 마음이 조금 덜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뚜렷이 하는 일은 없어도 괜히 부담스러운 자리를 선뜻하겠다고 나서는 엄마의 마음인 것이다. 내 아이와 새 학기를 맞는 모든 아이들의 무사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빌어본다. 올 한 해도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들과 행복하고 행운 가득한 학교생활 할 수 있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