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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Feb 21. 2024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그냥 가신다고요?

이토록 강력하고 매력적인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광고가 있을까.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당장 비행기표를 끊어 미술관에 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작가가 말한 작품들을 직접 보고 싶다. 미술관 구석구석 닿았던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 보고 싶다. 경비원으로 취직했지만 사실은 거대한 서사가 흐르는 메트로폴리탄 광고대작을 위해 잠입취재한 작가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평소와 다른 낯선 시선인데 관람객도 아니고 경비원이라 더욱 신선하다. 미술관이니 작품들 존재는 당연히 알지만 같은 곳에 작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앞모습은 아주 단아한 드레스를 입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등이 훤했던 어느 여배우의 반전 있는 드레스를 보고 있는 듯하다.

p.151 전 세계에서 모인 수십 명의 살아 숨 쉬는 사람이 한 공간에 있는 데 하나같이 벽에 걸린 무색의 움직임 없는 인물 사진들을 보느라 옆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지음
언젠가 다시 갈 날을 꿈꿔본다


p.266 우리는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바뀌는 사이 그들의 복잡한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볼 수가 없다. 어쩌면 예술 작품은 삶의 예술적이지 않은 측면을 묘사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단조로움, 불안함, 그리고 차례로 밀어닥치는 빌어먹을 일들에 파묻혀 큰 그림을 볼 능력을 잃어버리는 측면 말이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내 전시관에 걸린 완성된 그림들이 아직도 진행 중인 세상과 동떨어진 저 너머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술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미술관은 좋아하는 편이라 여행 가서 방문했던 미술관에서의 뚜렷한 기억들이 몇 개 있다. 전시는 후루룩 보는 편인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넋 놓고 바라보게 된 수련 연작이 있던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교양 수업 교재까지 챙겨가 친구들과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작품 찾아다녔던 영국 내셔널갤러리, 좋아하는 마티스 그림이 가장 많은 곳이라길래 결혼식 후 탈이 나 기운 하나 없던 새신랑 남편 끌고 가서 구경한 니스의 마티스 박물관. 있었으면 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기억 빼고 여럿 있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미술관 밖 계단에서 찍은 사진뿐이다. 그때 한참 가십걸에 빠져있었는지 세레나와 블레어가 나와 같은 계단에 앉았었다는 사실 따위에 고취되어 있었나 보다. 미술관 안에서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알렉산더맥퀸의 특별전은 기억난다. 미술관에서 패션디자이너의 전시가 열리는 것이 신기했고 전시 보려는 사람들의 줄도 꽤 길어서 어떤 전시인지 궁금했다.(궁금한 이유가 이제야 책을 읽으며 풀렸다.) 생생한 기억을 떠올리며 마치 그곳에서 살다온냥 추억하며 책을 읽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착각할 자유는 건망증 속에 파묻혀 찾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다른 지역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가 뉴욕에서 학회가 있다고 하여 계획하게 된 여행이었다. 매번 핸드폰 속 작은 화면에서 글자로만 이야기하다 얼굴 보며 수다 떠니 어찌나 반갑고 신나던지 분수 앞 계단에 앉아 한참을 떠들었다. 무엇이든 명쾌하고 확실하고 똑똑했던 친구와 여행 내내 웃고 떠드느라 바빴다. 어렸을 적이라 돈은 별로 없었고 체력과 시간은 가득 있어서 뉴욕에서 밤새 버스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비행기를 주로 타고 가던데 우리는 자정에 출발하는 심야버스를 타니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던 버팔로에 아침에 도착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데 배는 고파 가까이 문 연 중국집에 가서 별로 맛없는 식사를 하면서도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깔깔거렸고 우비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온몸이 흠뻑 젖어 좀비 같은 꼴로 구경했던 유람선에서의 시간도 그저 즐겁기만 했던 여행이었다. 같은 과도 아니었는데 학교 앞 하숙집에서 멀건 얼굴로 아침 먹다 친해진 친구였다. 유학 중에 만난 외국인과 결혼해 외국에 정착해서 여행 이후로는 보지 못하고 카톡으로만 종종 연락했었다. 아이 태어났다고 보내준 선물은 제일 좋아하는 옷 중에 하나라 아이 어릴 적 사진에 자주 등장한다.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연락이 끊겨 지금은 소식을 알지 못한다. 좀 더 살뜰하게 챙겼어야 했는데 늘 미안하고 아쉬움이 가득한 인연이다. 그 시절의 내 친구도, 내 에너지도 사무치게 그립다.

덕분에 인터넷 어딘가 박혀있던 여행사진을 찾았다. 보고싶은 친구 얼굴 한참 볼 수 있어 좋았다.


책을 읽으며 미술관 가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뉴욕여행일정을 짜본다. 뉴욕에 가 있는 내내 오픈런을 해서 오전 일정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가득 채우는 거다. 혹은 일정을 마치고 미술관으로 가서 나가라는 안내가 있을 때까지 머물다 나오는 것이다. 하루는 가족들과 다 같이 가고 하루는 호텔에서 남편은 쉬는 동안 딸아이와 둘이 다녀오고 하루는 남편과 딸아이는 브런치를 먹으라고 하고 나는 혼자 미술관으로 가고. 뉴욕에 있는 매일매일을 그렇게 보내보고 싶다. 생각 만으로 이미 설렘 초과다. 버킷리스트로 삼으면 언젠가 그런 날 보낼 수 있겠지? 그때 가면 작가가 상세하게 적어놓은 미술관 동선 따라다녀보고 싶다. 경비하고 계시는 분들께 괜히 말도 걸어보게 영어공부도 해가야겠다. 친구의 전 직장에 온 듯 익숙할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메트미술관 안을 구석구석 걸어 다니며 옆에서 조곤조곤 소개받은 듯한 책이다. 이역만리에 떨어진 미술관을 이렇게나 가깝게 느끼게 하다니, 작가는 정말 멋진 글을 썼다. 책을 읽는 누구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가고 싶어질 것이다. 미술관에서 고맙다고 사례라도 해야 할 것 같다.


p.191 그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만약 인생에 배신당한 듯한 엄청난 슬픈 일을 겪고 세상 모든 일에 낙심하여 전도유망한 직업을 던져버리고 미술관 비정규직 경비로 취직했다면 어떻게 지냈을까. 무너진 나의 세상과는 동떨어져 잘만 굴러가는 세상을 한탄하고 한가로이 미술관에서 걸작을 구경하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시기하며 지내지 않았을까.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안에 수많은 경비원이 있었을 텐데 책을 써서 전 세계로 번역되는 베스트셀러를 쓴 사람은 브링리 뿐이었네. 태도와 관점의 문제일까. 어떤 상황에 있던지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때로는 따뜻하게 가끔은 냉소적으로 바라보지만 그것들을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경험이지만 그것을 나누고 공유해서 타인에게 세상의 지평을 넓혀주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가기 전에 꼭 읽고 갔으면 좋겠다. 필독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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