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언니를 만난 것은 10여 년 전 어느 식당에서였다. 그날 언니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 후로도 한동안 언니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언니의 존재가 뚜렷해진 것은 결혼 후였다. 나보다 나이도 많았고 결혼도 한참 전에 해서인지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친구들 중에 결혼을 빨리한 편인 나에게는 유일한 길잡이가 되었다. 언니의 아이는 그때 다섯 살 정도 되었는데 만날 때마다 그 아이의 귀여움은 늘 한도초과였다. 넘치는 귀여움으로 결혼 초 현실과 부딪히며 얼어있던 마음을 녹이곤 했다. 언니는 굉장히 세심한 편이어서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내 표정만 보고도 마음을 알아차렸다. 늘 먼저 다가와 주었고 하나라도 더 주려 했고 당연하다는 듯 내 편이 되어주었다. 알고 보니 언니는 나와 대학 동창이었고 연고도 없이 이사 오게 된 곳은 언니가 어렸을 적에 살던 동네였다. 사회에 나와 만나게 된 대학동창 중 가장 반가웠고 낯설기만 했던 동네도 언니 얘기를 들으며 금세 적응해 갔다. 더 잘 통한다는 생각에 뭐든 공통점이 있는 것이 좋았다. 언니에게 심적으로 깊이 기대고 있었지만 살가운 성격은 아니라 자주 표현하지는 못했다. 언니와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헤어지면서 혹시라도 언젠가 멀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더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도 부담스러울까 조심스럽기도 했다.
언니는 몇 해 전 좀 아팠다. 모든 현대인의 병이 그렇지만 원인을 딱히 찾을 수 없었고 스트레스가 아닐까 가늠할 뿐이었다. 내가 준 것은 별로 없는데 받은 도움은 너무 커서 혹시나 원인이 된 스트레스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딱히 치료방법이 있는 병이 아니라고 해서 놀라 많이 걱정했지만 다행히 증상은 더 이상 심해지지 않았고 조금씩 나아졌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정기검진을 받으며 지켜보면 된다고 한 후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더 신경 쓰며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다행인 것은 언니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그때 이후로 조금씩 변해갔다.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려고 한다던지 예전과 같은 갈등상황에 놓여도 아프기 전처럼 제일 먼저 스스로를 제쳐두지 않았다. 예전과는 다르게 대응하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기뻤고 응원했다. 힘들게 배운 교훈이라 마음은 아팠지만 앞으로의 삶에 긍정적 전환점이 되어준 것 같아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언니와 함께 있으면 난 현명하고 유쾌한 사람이 된다. 언니가 그렇게 만들어 준다. 별거 아닌 혼자만의 생각일 뿐인데 언니에게 말하면 세상에서 가장 명쾌한 해결책이 된다. 자기 합리화일 뿐인 변명임에도 언니는 색다른 해석이라며 호응해 주고 힘을 실어준다. 언니 옆에 있으면 스파이더맨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평범한 소년이 스파이더맨 옷을 입고 슈퍼히어로가 되어 세상을 누비는 것처럼 보잘것없는 내가 세상을 구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날, 언니가 부부싸움을 심하게 한 건지 홧김에 이혼이란 단어를 꺼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부부사이가 깨질 까봐 걱정되었다기보다 이혼 후에 종적을 감춰 내 곁에 언니가 없을까 봐 그것이 걱정이었다. 나에게 언니는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동생만 있던 나는 어렸을 때 언니나 오빠가 있었으면 했다. 사촌언니, 오빠를 졸졸 따라다녔지만 뭔가 부족했다. 진짜 언니,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엄마에게 진지하게 자주 말했었다. 엄마가 어찌해 주실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도 말이다. 그랬으니 가짜 언니를 만나고 나에게도 언니가 생겼다는 생각에 어찌나 기뻤던지 모른다. 내 결혼생활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언니라는 생각에 속상하고 화나고 답답할 때면 제일 먼저 언니를 찾는다. 소화제처럼 시원하게 고민을 해결해 주고 핫팩처럼 따끈하게 위로해 준다. 이기적인걸 알면서도 이대로 쭉 내 손 닿는 곳에 있으면 좋겠다. 나도 언니에게 미약하게나마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언니가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게 하고 싶다. 힘이 되고 기대기도 하는 동생이 되고 싶다. 뭐든 나보다 한 발자국 앞서하려 해서 미안하고 고맙다. 오래도록 즐겁게 함께하려면 내가 더 노력해야겠다. 늘 징징대는 부족한 동생이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봐야겠다. 언니라고 부를 수 없어 가짜언니라고 이름을 붙였다. 전혀 부정적인 명칭이 아니다. 언니를 원했던 소망을 담았고 부를 수는 없어도 언니라는 명칭을 붙이고 싶었다. 벌써 어느새 나보다 앞서가고 있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아야지.
"형님~~~ 잠깐만요~ 그거 제가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