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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r 13. 2024

줄넘기로 배우는 버티기 기술

아이가 줄넘기학원에 간 것은 3년 전 여름방학이었다. 오전에 줄넘기를 하고 돌아오는 방학 특강이 알찬 오전 보내기에 적절해 보였다. 줄넘기를 학원에 가서 배운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아이와 줄넘기를 해 보니 필요성이 느껴졌다.  

"엄마, 이거 어떻게 넘는 거야?"

"뭘 어떻게 해, 그냥 하는 거지. 이렇게 줄을 돌려 그게 내 앞에 오면 뛰어."

설명하는 나나, 설명 듣는 너나. 서로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작한 줄넘기는 운동량이 꽤 되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왔다. 선생님들도 재미있으시다고 했다. 그렇게 방학특강을 거쳐 계속 다니게 되었다. 운동신경이 있다거나 빠릿빠릿한 타입은 아니라 금세 늘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저 정해진 시간 동안 열심히 뛰다 오는 것에 만족했다.

줄넘기학원에는 놀랍게도 급수를 따는 시스템이 있었다. 매달 한 번씩 심사시험을 보는데 나름 빡빡한 기준을 통과해야 급수를 딸 수 있었다. 양발모아 뛰기 50회 이상, 2단 뛰기 10회 이상. 이런 식으로 다양한 종류의 줄넘기기술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사하는가, 이게 급수심사의 핵심이었다. 빠르게 급수를 딸 거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2단 뛰기를 하지 못해 1년이 넘도록 10급(가장 아래등급)에 머무른 것도 예상하지 않았다. 같은 나이의 아이 학원친구는 비슷한 기간을 하고 4급이었는데 말이다.




JTBC 앵커 강지영아나운서는 최근에 유퀴즈에 나와 입사초기 일이 없어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었다고 했다. 다른 동기들은 일을 하느라 바쁜데 혼자 덩그러니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얼마나 서글펐을까. 그녀는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최고의 mc 유재석의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또 보며 그가 하는 말은 물론 웃는 타이밍까지 다 받아 적으며 연구했다. 그런 시간이 몇 년이고 계속되자 이 직업은 나에게 맞지 않는가, 나는 소질이 없는가 의문이 들었지만 회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도망치지 않은 그녀는 다시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회사 내에서 최초로 주말뉴스를 단독으로 책임지는 간판 앵커에게 그런 서글픈 과거가 있었다니 놀라웠다. 겨우 첫 리포팅의 기회가 왔지만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 실수를 연발했고 그런 모습이 실망스러워 끝난 후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었다고 했다. 그 시절의 자신에게 전할 말이 있냐는 유재석의 말에 강지영 아나운서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강한 확신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버티면 돼. 버티면 분명 기회가 올 거야.”



버티다. 어려움을 참고 견디다.

아이의 더딘 진도를 견딘 내가 어려웠을까 매번 해도 안 되는 스스로를 견딘 아이가 어려웠을까. 아이 쪽이 훨씬 높은 난이도인 것은 누가 봐도 명확하다. 학원에 가서 줄넘기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엄마가 반갑기는 했겠지만 아이는 아이대로 긴장을 했고 나는 나대로 답답했다. 모르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이후에는 학원에 데리러 가게 되어도 올라가지 않고 나오는 문 앞에서 기다렸다. 외면할 수 있는 방편이 있었던 나와는 달리 아이는 매번 현장에서 나아가지 않는 실력을 확인사살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지지부지하던 세월을 지나던 어느 날. 매우 상기된 표정으로 학원 셔틀에서 내리던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참았던 말을 쏟아냈다.

“엄마엄마. 나 오늘 2단 뛰기 연속으로 했어!! “ 드디어 아이가 해낸 것이다. 아이도 나도 신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서로 알면서 모르는 척했던 1년 치의 기다림이었다. 기뻐서 치킨도 시켜 그날을 축하했다. 줄넘기도 계단식으로 실력이 향상되는 건지 2단 뛰기를 한번 성공하고 나자 연속으로 하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단 뛰기를 한 지 1년 여가 지난 지금은 연속으로 20-30개를 거뜬히 한다고 한다. 2단 뛰기 한 번도 제대로 못하는 나는 그게 가능한 일인지 놀랍기만 하다. 줄넘기를 왜 못하냐고 답답해하며 말로 설명하던 기억은 민망해진다. 한쪽 다리를 들고 한쪽 팔을 꼬고 줄넘기를 한다. 묘기 같아 보이는 신기한 기술들을 구사한다. 처음 습득한 기술은 뭉툭한 형태로 보여 과연 가능해질까, 싶은데 아이는 이제 의심하지 않는다. 노력하며 시간을 보내고 버티면 가능해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안다.

나름 세월의 흔적이 쌓인 아이의 줄넘기


버티면 된다. 아이를 보며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닫는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얼마나 멋진 경험이 되고 훌륭한 가르침이 되었는지 모른다. 지루하고 지난한 시간들을 버틴 아이가 대견하다. 아이를 통해 배운 나는 버틸 것이다. 지금은 못하더라도 버티고 버텨서 남아있으면 결국엔 잘하게 될 테니. 지금의 나에게 버티라고, 기회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며 말하는 미래의 나를 기대한다.



하고 싶은 걸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하는 것. 하고 싶은 걸 하는데 재능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못하는 자신을 꾹 참고 견딜 수 있다면, 내가 먼저 손을 놓지 않을 수 있다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엔 해낼 수 있다.
『오늘의 좋음을 내일로 미루지 않겠습니다. 』오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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