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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r 20. 2024

봄나물 먹고 애가 도망갔다!

봄에는 봄나물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겨우내 잠자고 있던 싹을 틔우는 땅의 기운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 뭐든 할 수 있는 힘이라도 들어있을 것 같다. 냉이의 향긋함을 맡고 쑥의 쌉싸르함을 먹으면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봄나물이 제철음식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물을 엄청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런지 나물 해 먹는 게 번거롭다는 생각 때문인지 집에서 나물반찬은 잘 안 하게 된다. 해놓아도 먹을 사람이 나뿐인 것도 이유 중 하나인듯하다. 인터넷으로 장을 보려 구경하다가 봄나물 샘플러라는 것을 시켜보았다. 아이에게 봄이 시작되면 갖가지 봄나물을 맛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종류별로 맛볼 수 있다니 딱이지 싶었다. 도착한 샘플러는 예상을 벗어났다. 생각보다 양이 적어서 꾹꾹 눌러서 쓰던 화장품 샘플을 생각하며 시켰더니 양이 꽤 많다. 대충 한 온라인 장보기의 폐해다. 정확한 양이 그램으로 쓰여있지만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고 샘플 사진만 대충 보고 산다. 식초를 구입했을 뿐인데 1.5리터짜리 대용량 식초가 와서 놀랐던 경험이 떠오른다. 봄나물이 몸에 좋다니 이 김에 부지런히 해 먹어 보기로 한다. 그중 요리법이 익숙하고 가족들도 잘 먹는 냉이를 먼저 뜯는다. 냉이된장국을 끓이고 나물은 아이가 잘 안 먹길래 냉이를 데쳐 쫑쫑 썰고 밥에 간장, 참기름을 더해 비벼주니 잘 먹는다. 오케이, 냉이 클리어!

소고기를 넣어서 잘 먹은 걸지 모른다.

방풍나물은 쌉쌀해서 맛있던데 향이 강한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잘 먹을 것 같지 않아 고민이 된다. 고기 구울 때 시금치를 같이 구워주니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나서 같이 구워보기로 한다. 겉봉지에 이름이 쓰여있지 않아서 방풍나물 같은 아이를 씻어서 고기 구운 팬에 살짝 구웠다. 맛을 보니 방풍나물이 아니고 취나물이다. 이럴 수가, 얼마나 나물을 안 해 먹은 건지 티가 나는 순간이다. 나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조금 부끄럽다. 취나물 역시 쌉쌀한 맛이 나긴 하지만 고기와 같이 먹으니 나름 괜찮은지 몇 개 집어 먹는다. 아, 이제 방풍나물은 어떻게 먹어보지. 내일은 아이가 좋아하는 마라탕을 사서 방풍나물을 넣어봐야겠다. 너무 새로운 시도인가 싶고 나물로 먹으면 더 좋겠다 싶지만 나물만이 답은 아니니 마음을 넓게 가져본다. 기다려, 방풍나물!

내 멋대로 조리했지만 고기와 꽤 잘 어울렸다.


아직 냉장고에는 나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세발나물을 활용한 레시피를 찾아본다. 아무래도 전이 제일 만만한 것 같다. 세발나물은 갯벌에서 자라나 갯나물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레시피를 찾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전을 내놓으며 아이에게도 알려줘야겠다. 아이가 좋아하는 팽이버섯과 양파가 힘을 보태주길 바라며 재료들은 쫑쫑 썰어 한데 넣고 계란을 깨 넣는다. 노릇노릇 전이 구워지며 기름냄새가 주방에 넘실댄다. 간장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케첩도 내놓고 돈가스소스까지 같이 내어본다. 뭘 찍던 전을 먹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한다. 하나 먹는가 싶더니 젓가락질을 멈춘다. 재차 권했다니 마지못해 한 두 개 더 먹었나.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고려하고 세 종류의 소스까지 내놓았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먹지 않는 거지. 화가 나는 마음을 뒤로 감춰본다. 나라면 간장에 찍어먹어도 충분하지만 너를 생각해서, 케첩과 돈가스소스를 내놓은 것이었구나.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의 기준은 나였다는 생각을 한다.




육아는 끊임없이 나를 내려놓고 겸손하게 만드는 과정 같다. 내가 과연 육아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 내공은 자연스레 깊어지는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전의 과제도 다 하지 못한 채 또 새로운 과제를 받은 느낌이다. 결국엔 어느 쪽도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스스로도 원하는 모습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데 아이에게 내가 정해놓은 이상을 향해오라고 하는 것은 과욕일까. 아이는 나를 지나쳐가는 손님일 뿐이라고 귀하게 대접하라고, 지금 이미 충분히 훌륭하니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라는 말을 책에서 많이 보았다. 보았으면 실천하면 되는데 왜 자꾸 하나만 더하자, 기본은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뭘 보태고 있는 걸까. 화가 날 때마다 늘 적정선을 지키지 못한 채 극에서 극으로 달리기를 하고 만다.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고 의식주만 해결해 주면 되냐, 싶은 못난 마음이 솟구친다. 이럴 때마다 육아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미숙한 나를 거울에 비추는 것 같아 힘들고 자신이 없어진다.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육아라고 했던가. 불현듯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내 몸뿐이라 몸을 가꾼다는 모델 한혜진 씨 말이 떠오른다. 육아고 뭐고 아, 몰라몰라몰라. 내일부터 남은 봄나물로 현미밥에 비빔밥 해 먹고 다이어트를 시작해야겠다. 엄마가 진짜 다이어트 성공하기만 해 봐라, 할 말이 1절부터 10절이다, 너어~

평생 성공하지 못한 것이 다이어트인데 과연 이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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