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트라우마
만월은 틀린 말이다.
달이 꽉 찬 듯 빛날 때에도 달의 반면은 어둠 속에 있다.
더 많이 가지려면 더 많은 죄를 저질러야 할 지도 모른다.
내가 충만할 때도 누군가는 울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사람은 비로소 아름답다.
-<힐링> 박범신
Q. 지금 당장 버려야 할 물건이 있다면
A. 할 수만 있다면, 감정을 물건으로 여겨서 버리고 싶다. 풍성한 감수성 덕에 같은 것을 보고도 남들 보다 더 진한 감동으로 느끼는 건 축복이다. 어렸을 적엔 딱히 내세울 것 없고, 남자 치곤 예민해서 그저 '넌 너무 감정적이야' 라는 말로 퉁쳐짐을 받았던 녀석이, 나이 먹으니 감성지수니 공감능력이니 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어 감사하다. 그 덕에 별도의 공감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된다. 각종 sns에 올라온 3분 남짓의 감동적인 편집 영상, <인간극장>이나 <동행> 등의 관찰 다큐, 오은영 박사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나 <금쪽 같은 내새끼> 등은 볼 때마다 자동 감정 이입이 되어 늘 휴지를 준비해야만 한다.
나에게 감정이란 '쉽게' 올라가는 게임 레벨이 아니라, 화선지에 먹물 스미듯 '빠르게' 전달되기 때문에, 공감을 잘 하는 것으로 보여 좋을 것 같지만, 실은, 뭘 해도 마음이 '쉽게' 힘들어져 '어렵게' 일을 치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예 그런 프로그램 자체를 안 보고 싶기도 했다. 보면 빤히 눈시울 붉어져 혼자 몇 번이고 팽팽거리며 코를 풀게 분명해서 힘을 빼고 싶지 않다며 지레 김칫국을 마시곤 했다.
무엇보다도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직장 폭언으로 비롯된, 제어를 벗어난 감정이었다. 그 전까진 열정으로 가득찼다. 일과 시간 중엔 종일이다 싶을 정도로 사무실 내 동료는 물론, 유럽내 열 두 국가의 파트너들과 동시다발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갖고 일을 추진하며 활력 속에 에너자이저로 살았다. 그랬던 나는 한 점 남김 없이 사라지고, 오늘은 또 무슨 쌍욕을 처먹을까, 무슨 개망신을 당할까에 두렵고 무서워 심장이 조여드는 것만 같았다.
평일의 연장선인 토요일을 보내고, 그러다 월요일을 앞둔 일요일 오후는 불안이 극도로 치달았다. 일요일 예배의 마침을 알리는 강대상 위에서 목사가 땡 하며 내리치는 종소리는 귀에 못을 박듯 잔인하게 내리 꽂혔다. 그 종소리는 즉시로 심박동수를 미친듯이 펌핑시켜서, 심장박동에 몸 전체가 쿵쿵쿵 뛰는 느낌이 들 정도였고, 나는 그 놈의 종을 박살이 나게 던져 버리고 싶은 정신 나간 생각이 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맞다, 그 당시의 나는 우울증, 트라우마, 대인기피증의 환자였다.
자격지심과 자책으로 마음이 문드러져서 그 어떤 말로도 나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풍부한 감수성 덕에 그래도 잿빛 구름이 껴안고 있을 비를 보며, 그 빗물이 마른 대지의 식물에 생명수가 될 것까지 확장하며 긍정적으로 내다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훼손되면, 찬란한 햇살을 볼 때, 남들 다 좋다는 스페인의 그 햇볕 아래에서 맘껏 일광욕을 즐기는 그 때에, 망가져 버린 내 삶은 극명하게 반대의 입장이 되어, 이글거리는 햇볕은 더 없이 무섭고 공포로 다가왔다.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이겠느냐 마는, 정말 그랬다. 사진 찍기에 더 없이 좋은 날씨일수록, 즐기지도 못하고 즐길 수도 없는, 상사의 폭언 화살에 온 몸이 꽂혀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매니저로 발탁되며 스카웃 제의를 받고 야무진 결심을 하고 왔지만, 내부 공사 중 4층에서 떨어진 창유리 마냥 다시 주워 붙일 수도 없게 깨져 버린 나는, 영영 재기불능의 불구가 된 것 같았다.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상처가 될 뿐이었다. 직장 생활이 원래 그런 건데 내 성격이 문제 있어서 그런 거 아니겠냐는 식의 넘겨짚는 말부터, 그런 일이 자기 가정엔 없어서 다행이라는 무심한 말까지. 자기 자신이나 가족에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소스라치게 놀랄 사람들이, 남의 일이니 아무 말이나 늘어놓는다.
상담전문가도, 심리상담자도 아닌 그저 내가 해외 생활 좀 해봐서 아는데, 내가 사람들 좀 만나봐서 아는데 하며, 척 병에 걸린 사람을 비롯해 남의 인생을 함부로 안주 삼는 그들을 보며,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보게 되었다. 어쩌면, 덕분에 냉혹한 현실에 비로소 눈을 뜬 것일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입은 건 타박상 정도가 아니라 연쇄 추돌사고 급인데, 영혼의 안식을 바라던 곳에서는 혼절한 자에게 자동심장충격기도 아닌 각종 교통법규와 다른 사고사례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한줄기 빛이 된 것은 너무도 역설적이게도 욕을 일삼던 상사가 정리하는 게 서로 좋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입사도 아닌 해고가 이렇게도 바라던 일이 될 수 있다니? 매일 머리에 얹고 있어 목뼈가 부서질 것 같았던 몇 광주리 치의 짐이 벗겨졌다. 이어 그간 인신공격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본인도 알고 있었구나. 그 날 나는 스페인 온 이래 처음으로 웃었다.
감정은 좋고 나쁨이 없다고 배웠다. 모든 감정은 타당하다고 했다. 감정은 내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이자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를 무너뜨리는 감정은 자각하고, 가만 내려놓고 싶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 이 감정을 몇 년이 지나도록 환절기면 찾아오는 감기 마냥 달고 살던 이걸 이제는 벗어 던진다.
인간의 탈을 쓴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인간다운 인간, 성숙한 아름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 나쁜 감정을 버리는 연습을 오늘도 한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쓰레기는 쓰레기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