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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May 28. 2021

사랑은 귀찮음을 넘는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Q.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A. 나는 만났다가 혼자 돌아가는 게 싫다.

하지만 나보다 그 사람이 혼자 돌아가게 하는 게 더 싫어서 같이 간다. 


나는 카프레제 샐러드와 페투치네 까르보나라가 당긴다.

하지만 내 짝꿍은 고춧가루 듬뿍 얹고 펄펄 끓이는 부대찌개가 당긴단다.


나는 익숙했던 공간을 떠나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새로이 펼쳐질 그곳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면 주저 않고 함께 함을 선택한다.


나는 편하게 지내고 싶다.

하지만 한 생명이 우리에게 찾아왔으니 편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잠시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잊을만하면 들어와 십 년이 넘어도 여전히 육아 중이다.


나는 얼큰한 짬뽕과 바삭한 탕수육이 먹고 싶다.

하지만 한국이 아닌 동구의 어느 나라에서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다이어트도 아닌데 강제로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고 참아야만 한다.


나도 우아하고 기품 있게 살고 싶다.

하지만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24시간 상시 대기 상태에서 산다는 건 애당초에 포기해야 한다.

산발한 머리, 자꾸 붓는 얼굴과 몸, 그래도 아이들의 웃음은 그 모든 힘듦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토피로 고생하는 녀석을 보면 시시때때로 보습 로션과 약을 안 발라 줄 수가 없다.


나는 눕고 싶다. 

하지만 방에서 아이가 코가 막혀 콜록대면, 일어나 코 세척을 하자며, 아이가 편히 잘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는 자고 싶다.

하지만 뒤늦게 세탁기에서 빨래가 끝나면, 일어나 세탁물을 꺼내 일일이 털어가며 널어야 한다.


나는 쉬고 싶다.

하지만 막내가 와서 놀아 달라고 조르면, 기꺼이 같이 소꿉놀이를 한다.


나도 적당히 지내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 가운데 있으니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루라도 건너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속이 좋지 않아 샐러드로만 먹고 싶다.

하지만 둘째 등교하며 불고기 먹고 싶다는 말에, 어느새 발길은 정육점을 향하고, 집에 돌아와 양념을 재운다.


나는 점심때 많이 먹어서 저녁을 굳이 먹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배 고프다는 아이들 생각에, 고민하며 분주히 준비해 정성으로 차려낸다.


나도 나만의 시간을 조용히 가져 보고 싶다.

하지만 책을 들고 와 읽어 달라며 들이미는 사랑스러운 아이의 요청의 거절할 수 없다.


나도 자기 계발의 시간을 써 보고 싶다.

하지만 독서며 공부를 하려면 이미 몸은 천근만근, 피곤과 피로가 양 어깨에 얹혀 있다.


나도 잠 한 숨 실컷 자보고 싶다.

하지만 새벽에 불쑥 찾아와 눕는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 주고, 칭얼거림을 달래주면 어떻게 잔 건지 모르겠다.


나도 하루를 의미 있게 채우며 쌓고 싶다.

하지만 시간은 내게 아직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한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지나간다.




생각하는 사랑이란

만사 귀찮음을 넘어서는 힘이다. 피곤해도 감당하는 능력이다.


내가 아무리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내가 해야 될 것을 먼저 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하기 싫은 게 있어도, 역시 내가 해야 될 것이라면, 해야 한다.


오늘도 모든 귀찮음을 이겨내는 아내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사랑은 감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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