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떠난 여름 여행의 마지막 도시, 레온에서 일어난 일인데 지금까지 전혀 떠오르는 게 없다.
나라는 인간, 빈틈이 많다는 건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부모님의 품에 있던 어린 시절부터 늘 칠칠치 못하게 늘상 쓰는 물건을 두고도 어디 있는지 몰라서 헤맸다. 잔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원래 아무 문제가 없는데, 주위에서 나를 몰아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그게 그렇게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끝났을 일일까.
나이 서른을 바라보고 슬로바키아로 출국하던 날, 공항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항공권을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이 멍청아! 하는 마음의 벼락소리가 있었지만, 동시에 이 때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나를 보호해줘야겠단 생각에 사로잡혔다. 원래 아무 문제 없는 놈인데, 나를 너무 몰아세워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렇게 몇 번이고 생각했다.
세상 둘도 없을 바보짓을 했지만, 그렇게라도 나를 안 하면 나는 정말 나잇값 못하는 세상 둘도 없는 루저Loser 이자 찌질이로 전락할 것만 같았다. 지금은 덜하지만 그 때까지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남탓도 있지만, 그 보다 몇 십배 더한 강도로 나 자신을 다그치곤 했다. 자책감과 죄책감으로 완전히 얽어맸던 것이다.
여하간 2007년 1월 그 추운 날, 얼간이 같은 짓에 충격을 받아,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확인할 것도 없이 분명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한심하단 소리를 들었도 쌌을 나다. 그뿐이랴. 자기 일처럼 챙겨가며 발권해준 여행사 동생한테, 나란 놈은 딱 빙충이의 화신이었다.
그래, 빙충이의 추억이다.
그래도 그렇지. 하루에도 수십번 이상을 들여다 보고, 1년 째 바꾼 적이 없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만 번도 넘게 들여다 보았을텐데. 난 정말 답 없는 인간인건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지워진 어플리케이션, 미안해
결혼했다고 해서 늘상 새던 바가지에 갑자기 강력본드가 붙여졌을리는 만무했다. 화급한 일을 앞두고 열쇠와 지갑, 거기에 가끔 휴대폰까지 어디다 두었는지 부산을 떠는 일이 늘자, 숫제 다 집에 두고, 사원증과 신분증, 휴대폰만 챙겨서 출근할 정도였다.
지금도 코 앞에 물건을 두고 어디 있는지 집안 곳곳을 찾아 헤매는 아빠를 보고 아이들은 아빠, 왜 그래요? 묻는다.
그러면 아내는 허둥지둥대는 남편을 보고 웃음을 참으며 익히 알고 있었다는 듯, 뭐 찾냐고 물어보고, 몇 초도 안 되어 바로 건내주면, 아이들이 '엄마 최고!' 라고 한다.
그때마다 아내는 '엄마가 이런거 라도 해야지, 안 그럼 아빠는 너무 완벽해서 안 된다'며 아이들 앞에서 구겨진 아빠의 체면을 펴준다. 고마운 아내다.
비서처럼 수행원처럼 모든 걸 챙겨주는 아내라 해도 내 휴대폰의 첫화면 아랫줄에 뭐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물건 소지자의 기억력은 이미 한참 전에 제거된지 오래다. 아마 앞으로도 사라진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기억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불현듯 기억이 난다 해도 다시 설치할 이유도 없다. 그렇게나 중요한 것 없어도 지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
만 번을 넘게 봤어도 기억을 못한다는 건 수많은 의미를 가진다 :
일단, 얼... 루... 멍... 빙... 찌... 그래, 이건 이미 충분히 언급했다.
두번째, 그건 그만큼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세번째, 뭐가 중헌지도 모르고 바쁘다고만 했다.
지워진 앱이 남긴 빈 칸은 앞으로도 그대로 둘 예정이다. 그걸 볼 때마다 다음을 상기하려고 말이다.
기억해라. 너는 만 번도 넘게 본 걸 기억 못한다는 걸.
누군가를 비판하려고 할 때.
누군가를 비난하려고 할 때.
누군가에게 흠결을 내고 싶을 때.
누군가의 탓으로 실패를 돌리려 할 때.
이유없이 분노의 화살을 퍼붓고 싶을 때.
오늘도 변함없이 아침 눈 뜰 때부터 시작해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휴대폰. 잠금 화면을 해제하고 사용하기 전에 짧은 에휴를 내뱉는다. 반강제로라도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 본다. 너의 빈 자리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