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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Oct 25. 2021

휴대폰에서 사진을 지웠다, 전부

쓰던 휴대폰을 세 번 정도 떨어뜨렸다. 처음엔 괜찮았지만, 두번째엔 금이 갔고, 세번째엔 화면 아래에선 마그마가 흐르고 있었다. 아내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새 휴대폰을 구입했다. 마음은 갤럭시 노트를 구입해서 큰 화면에 캘리그래피도 써 보고 싶지만, 여건상 이번에도 불가피하게 대륙의 실수를 선택해야 했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난 휴대폰에 케이스를 전혀 쓰지 않는다. 

쓰면 틈새에 먼지 끼고, 케이스에 손 때 묻고, 휴대폰 자체의 멋을 가리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과 느낌 때문에서다. 안 그래도 두터운 휴대폰이 더 두툼해져서 바지 주머니 또는 양복 안주머니에 들어가면 꺼내기 힘들어지는 게 싫어서다. 매끈한 기기 본래의 감촉을 잃어버린다는 아쉬움도 있다. 


15년도 훨씬 전 영어 강사로 한창 일하던 당시엔 카드타입의 휴대폰이 있었는데, 얼마나 얇았는지 드레스 셔츠 주머니에 넣어도 될 정도였다. 스마트폰이 안 나왔더라면 여전히 바 bar 타입의 휴대폰을 선호하겠지만, 스마트폰이 나온 뒤부터는 달라졌다. 특히 스타일러스 펜이 있던, 지금은 사라진 L사의 보급형 폰은 아마추어 디자이너와 작가의 꿈을 꾸게 해 준 도구이자 장난감이었다. (이후 S사의 플래그십인 노트 시리즈는 언제나 버킷 리스트에만 올렸다.) 그 덕에 이전과는 달리 큰 화면을 선호하고, 자연스레 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 건 감안했다.


그럼에도 지금이나 그때나 마른 체형인 나로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일부가 닿는 무언가가 무겁다는 건 형벌과도 같은 느낌이라 가급적 대부분의 물건은 가벼운 걸 추구한다.


내 몸은 쓸데없다 싶을 정도로 감각들이 예민하다. 발이 작은 편인데도 어렸을 때 내성 발톱의 영향으로 약간 헐렁하게 신는 편이고, 운동화는 물론 구두도 가벼운 걸 선호한다. 가방은 어지간 해선 잘 안 멘다. 폭행 강도를 만나 백팩의 윗 손잡이가 뜯어질 정도로 힘겨루기를 한 적도 있지만, 애당초 무거워지는 게 싫어서 어지간하면 쟈켓과 바지의 주머니로 해결하려고 한다. 옷도 조금만 무거우면 바로 어깨가 뻐근해지는 걸 느낄 정도라서 가벼워야 좋다. 무게감이 느껴져도 괜찮은 건 딱 두 아이템뿐이다: 만년필과 휴대폰.


가이드를 하다 보니 이전과는 다르게 책상과 노트북 앞에 있을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휴대폰 하나가 모든 걸 해결하는 직업 중엔 가이드 만한 게 없을 것이다. 정말 분신이 따로 없는데, 그런 휴대폰을 케이스 한 번 씌우지 않고 써 왔다. 휴대폰을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애정해서 다른 걸로 감추고 싶지 않은 거라고 이유를 댄다면, 말이냐 막걸리냐 하려나.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공기계가 아닌 2년 약정제도를 이용해 봤다. 구글 덕에 슥슥 잘 옮겨지고 이전 휴대폰과 셋팅도 동일하게 했다. 그런데 사진들, 메모리카드와 본체에 남겨 있던 이 사진들을 어찌해야 하나. 실은 구글 포토에 이미 다 들어가 있으니 옮기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자료 옮기는 툴이 정말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5천 장이 넘는 사진과 영상들을 한 번에 옮길 방법은 없었다. 하려면 일일이 표시하고 옮겨 놓고 지우는 식으로 두 휴대폰을 두고 부지런히 손가락들이 움직여야 했다. 이미 다 완료가 된 것과 다름이 없는데도, 왜 주저하고 있던 걸까.


겉으로는 변화를 외치고, 혁신을 꾀한다고 하지만 속에선 여전히 바뀌는 게 두렵기 때문인 게 아닐까. 다른 누구의 판단도 아닌 나의 눈으로 내 속내를 보려 하니 터억 하고 꺼내놓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아내의 단순 명쾌한 말 한마디에 항복하고 말았다: 구글 포토 놔두고 왜 당신의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요. 듣는 순간엔 뜨끔해서 속으로 구시렁 댄 건 비밀도 아니지만, 인식의 전환은 의외로 빠른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런 나에게 아내의 조언은 처음엔 쓰디쓰지만, 나중엔 몸 안의 기운을 북돋워 주는 귀한 보약과도 같다.


피곤해하며 마지못해 옮기던 사진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먼지 털어내듯 탈탈 털었다.  휴지통에서 조차 완전 삭제를 하고 나니 영 찝찝함이 남았다. 있다고 잘 활용할 것도 아니면서, 버리기를 주저하는 나. 어차피 모든 사진과 영상들의 복사본은 구글에 남겨져 있는데도, 기우에 지나지 않는 걱정을 혼자 붙들고 끙끙대고 있었다.


그러다 마음을 굳혔고, 지웠다, 제거했다, 삭제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웠다.


개운함 보다는 질척거리는 듯한 미안함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구글 포토에 들어가 보니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 원래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처럼 휴대폰은 새 것의 상태로 멀쩡했다. 사진을 찍는다고 바로 올리지도 않았다. 결국 사진을 삭제했다는 사실 외엔 달라진 건 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공연한 두려움과 무서움, 한 줌의 걱정거리도 안 될 것을 과대망상 환자 마냥 부풀려 걱정하던 모든 것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사라졌다. 다시 시작할 타이밍이 찾아왔다. 


혹여나 있을 연락 사고를 대비해 휴대폰을 새로 샀다.

현장에서의 기민한 대응을 위해 만년필이 아닌 볼펜을 샀다.

입으면 기분 좋아지고 자신감이 절로 생기는 드레스 셔츠도 샀다.

있던 거 잃어버리며 몇 번이고 잃어버린 나를 찾으려고 시계도 샀다.


이 모든 것은 지우는 것에서 시작했다. 

헐렁하게 신었던 신을 이제는 질끈 묶는다.

가방도 상황별 변수를 모두 고려해 챙겨 넣는다.

준비는 끝났다. 새로운 시작이다. 가슴 벅찰 현장을 맞이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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