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스페인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간 막내딸이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들었습니다.
좀 구겨지긴 했으나 펼쳐보니 온통 하트 천지 그림입니다. 그걸 그린 남자애의 말에 따르면 자기는 무려 천 개의 하트를 그렸다고 합니다. 흠... 백 개 정도는 가능하지만, 천이라니... 스페인 사람들 허세 좀 있다는 건 경험상 알고 있지만, 어린이도 그럴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다른 게 아닌 사랑의 영역이니, 이 정도는 귀엽게 인정해 줍니다.
삐뚤빼뚤 그야말로 엉성한 글씨이긴 하나 Te quiero mucho 떼 끼에로 무쵸 (널 엄청 사랑해. 아, 물론 좋아해라는 말도 가능합니다)라고 썼습니다. 그 하트 속에 하트로 가득찬 아이 둘이 있고요. 누가 이렇게 찐한 사랑 고백을 한 걸까요?
알고 보니, 유치원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00이라는 아이가 전해준 거였습니다. 막내딸보다 키는 좀 작지만 활달한 성격, 외모로는 금발머리에 푸른 눈을 하고, 수업 끝나고 나면 같이 놀던 녀석인데, 언제부터 이런 마음을 품기 시작했던 걸까요?
사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랄 게 있겠어요, 그냥 우정의 표시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생기니 부모로선 그저 웃음이 나옵니다.
딸에게 전해주던 아이나, 그걸 받고 부모에게 보여주는 딸 아이나 대수롭지 않은 듯 전합니다. 그걸 본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오빠가 오히려 더 호들갑을 떨며 난리법석을 쳤지요.
종이는 왜 구겨진 걸까? 남자아이가 그냥 무심히 전해줬다고 하는데, 전해주기 전까지 갈팡질팡 한 건 아닐까? 그림을 전한 아이의 관심사는 이미 배고프다며 먹을 것으로 옮겨졌지만, 그걸 보는 가족은 저마다의 상상의 날개를 달고 그야말로 소설을 써내려 갑니다. 그야말로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 땀 한 땀 하트를 (어찌 보면 카카오톡의 어피치 얼굴 같은) 그리며 애썼을 걸 생각하면 안쓰러움과 귀여움, 고마움이 동시에 듭니다.
저 역시 아내에게 결혼 전 청혼할 때 얼마나 떨리던지 그야말로 다리가 헬스클럽의 벨트마사지기에 (aka 덜덜이) 휘둘린 거 마냥 호달달달 떨렸었죠. 계단마다 티 캔들을 켜놓고 멋진 피아노 연주 속에 꽃다발을 안기며 청혼하려던 계획과는 다르게, 너무 떨려서 손가락이 꼬이고, 피아노 페달을 어떻게 밟아가며 했는지 기억이 없어요. 기억이 난다 해도 이불킥 할 일밖에 없을 거 같아요. 그럼에도 무리수를 두고 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이해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입증이 필요할 뿐이지요.
El amor no necesita ser entendido,
simplemente necesita ser demostrado.
-Paulo Coelho
작가 파올루 코엘류는 사랑이란 복잡한 이해가 아닌,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보여주는 입증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코엘류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경험상 알고 있지요. 대학생 때 유행했던 모 통신사 광고 문구,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가 바로 그런 말이었을 겁니다. 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게 진정한 사랑일 테니까요.
한번 더 생각해 보더라도, 사랑하면 보여"줘라"는 식의 명령, 당위, 설득이 필요하지도 않을 겁니다. 이성이 판단하고 제어할 영역이 아닌, 일단은 뜨거운 감정에 이끌려 시작될 일일 테니까요. 그야말로 눈에서 불꽃이 튀고, 콩깍지가 씐다고 하잖아요. 그렇다고 여기서 지금 "그럼 날 사랑하면 명품으로 증명하세요!"라는 식의 황당한 얘기는 당연 아니고요.
막내가 받은 하트 종이는 냉장고에 두고두고 부착될 예정이에요. 볼 때마다 하트 하나에 옛 추억 하나씩을 떠올려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