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Dec 10. 2020

코로나 시대에 '힘내'라는 말

- 너와 나의 랜턴을 밝히며

일과 학업이 아닌 코로나가 일상이 되어 버린 올 한해.

'코로나 때문에'란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설명가능한 마스터 키가 되어버렸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여전히 파릇파릇한 동생과 오랜만에 긴 통화를 했다.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중남미, 아프리카 등 남들이 잘 안 가본 곳만 다니며, 그것도 낭만 넘치는 여행이 아닌 업무를 위해, 단-장기간 일하며 나름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던, 참으로 당차고 활기 넘치는 영혼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모두의 삶을 바꿔 놓았다. 귀국 후 취업의 문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으나 잘 안 풀리는 것이다. 스페인은 - 지금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4, 5년 전만 해도. 그러나 확언컨대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럽이란 곳이 워낙 변화에 둔감한 곳이니 - 거의 인맥을 통해 일단 아는 사람부터 채용한다. 서류 심사 후 면접을 보는게 거의 전부다. 인맥이 약하면 헤드헌터에게 믿고 맡긴다. 


취준활동 중인 그를 통해 들어본 한국은 가히 면접 맛집이었다. 일단 서류 전형과 면접 사이에는 필기 전형이 있다. 논술 내지는 업무역량시험을 본다는 데에 나는 그저 한숨뿐이다. 대입 때도 논술 전형 없이 수능성적만으로 들어간 터라 논술은 실전 없이 연습만이 전부였다.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면접 투어가 있다. 화상면접, 압박면접 (feat.아무말대잔치), 1:1, N:1 (압박면접의 다른 버젼들), AI 면접, 심지어 사업계획안 프리젠테이션 영상 제출까지 (무슨 드라마 미생인가?) '코로나 때문에' 대면접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막연한 수단이자 상품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아니길 바란다.) 


그 중 AI 면접이란 듣도보도 못한 인재 감별사는 이곳 마덕리 촌부에겐 넘사벽의 신문물이었다. 분명 차원 다른 기술의 산물임은 맞는데 왠지 면접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 같다는 씁쓸함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한국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채 아재가 되어버려서, 그래 단지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기분 탓이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휴먼?




나부터도 그렇지만, 개인이, 가정이, 사업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어느새 빠른 포기가 익숙해져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그 무엇을 해도 안 되거나 못 한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려울 때마다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힘내세요'라는 말조차 너무 많이 들어서 역으로 힘빠지고 공황에 허우적 거리기 조차 한다.


그래서 동생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1년 가까이 긴긴 시간 동안 그저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문자든 통화든 '힘내' 라는 말이 다여서. 기승전힘내 라는 뫼비우스의 띠에도 정작 그는 진심을 알기에 고맙다고 하지만 여전히 빈약한 말로 응원한다는 내가 싫어져서.


난 말야. 나 때는 말야. 하아... 누구는 꼰대 소리를 듣더라도 과거사를 나름 멋지게 펼쳐보던데,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 온실 속 화초가 이립而立 전 까지의 삶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그 때에도 분명 뭔가 하긴 했는데 돌아보면 가진게 없다. 마른 몸뚱이와 식솔 뿐이다.




어디를 건드리건 그저 갱도만 파내려가던 때가 있었다. 8년 전 맞이한 스페인의 첫해. 죽을만큼 힘든게 아니라 그냥 죽음과 우울 범벅으로 나는 실체 없이 이름만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내 생애 절대 두 번 오지 않았으면 할 정도로 극한의 경험을 마치고 간신히 생존신고를 알렸다. 한 번의 막장까지 간 그 갱도는 어느새 터널이 되었다. 


이제 그 터널에 하나를 더 발견했다. 내 머리에 있던 랜턴. 없었으면 애당초 갱도에 삽질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걸 갖고도 있는 줄 몰라 헤맬 때 기꺼이 같이 검댕이를 묻혀가며 본인과 내 랜턴을 밝혀준 분들이 있었다.
가족, 그리고 벗들.


나도 지금 그래야 할 거 같다. 지금 힘든 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도전해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문을 두드리며 도전하는 너는 진심 리스펙이다. 

너는 멋지다. 너는 아름답다. 너는 결국 된다. 난 무조건 네 편이니까. 내 힘 받고 너 힘내!


덧. 구름과 무지개 배경 사진 아래의 문구 'todo saldrá bien (또도 쌀드라 비엔)' 은 'everything will be fine  - 모든게 잘 될 거야' 란 뜻의 스페인어로 서로를 격려하고자 스페인에서 사용하는 해시태그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첫걸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