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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Mar 10. 2021

모방은 창조를, 연습은 완벽을!

아이의 종이접기에서 발견한 일상의 재발견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의 여러 취미 중 하나는 <종이접기>이다. 참고로,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선 전통적인 방식의 종이접기를 오리가미origami, 가위를 사용하는 공예는 키리가미kirigami 라고 부른다.


언제부터 종이접기에 관심을 가졌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다 종이접기 자격증까지 보유한 친한 동생 가족이 한국에 귀임하면서 온갖 색종이와 종이접기 책을 아낌없이 준 걸 계기로 둘째의 종이접기는 불이 붙었다. 이후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며 집콕 생활을 맞이하자 아이의 종이접기는 단순 취미를 넘어서 본격적인 덕업일치의 단계로 들어섰다. 종이접기 책을 한 권, 두 권 마스터 하기 시작하더니, 유튜브를 활용해서 온갖 걸 만드는 일에 푹 빠졌다.


유튜브 종이접기 대표채널, 네모 아저씨.

https://www.youtube.com/channel/UC6PxHGpLZT7K7GlDNyJonNw


종이접기로 손가락이 야물어 지기 시작하자 이후 레고는 물론이고 일반 블럭이며 과학상자까지 아이의 공작 세계는 점차 넓어졌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밖에 한 번 안 나가고 집에만 있어도 아이는 전혀 어려움도, 답답함도 없었다. 집돌이로 치면 나도 빠질 수 없는데, 녀석은 정말 방구석에만 있고서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 이런 아이가 나중에 실내 암벽 등반에 맛을 들여 거침없이 벽을 타고 다니고, 반나절 내내 자전거를 타고도 더 타고 싶어하는 것도 정말 신기하다. 아이들은 절대 한 면만을 보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걸 실감한다.


학교에서도 아이의 종이접기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집에선 형 동생과 놀고 싸우느라 시끄럽지만, 밖에서는 별 말 없이 조용하고 내성적으로 보여지던 아이 앞으로 반 아이들이 줄을 섰댄다. (나는 보지 못했으니 아이가 하는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이 자기 앞으로 종이를 가져와서 자기도 멋진 종이접기 장난감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까지 받을 정도로 둘째는 클래스의 라이징 스타가 되었다.


점심을 집에서 먹는 아이에게 식사 후 잠간의 여유 시간은 원래 아빠한테 렛슨 받은 피아노 연습 뿐이었는데, 어느새 종이접기가 경쟁자가 되었다. 친구들의 요청으로 블레이드(팽이)도 접고, 생일 맞은 친구 선물로 멋진 검도 만들고, 방학을 앞두고 선생님께 선물로 예쁜 상자도 만들어 드리며, 아이는 종이접기를 통해 혼자만의 만족을 얻던 취미를 넘어 친구들과 함께 노는 소통의 도구이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까지 얻는 계기로 자리잡았다.


그렇게 매일을 손가락으로 꼼지락 거리며 보내던 어느 날, 아이는 급흥분 하며 나에게 뛰어와 뭔가를 디밀었다. 나로선 따라하기 어려운 수준의 우주비행선이었다. 스텔스 폭격기 처럼 삼각형으로 생긴 모양에 2인용 좌석이 멋지게 돌출되어 있었다. 정말 멋지다 라는 말이 나오는 한편, 도대체 얼마나 이 우주비행선 종이접기 영상을 많이 보았길래 학교에서 그걸 외워서 다 접었나 하는 생각이 들려는 순간, 아이가 말한다.


아빠, 저 이거 혼자 생각해서 만든거에요


아니, 내가 지금 뭘 들은 것인가. 이걸. 안 보고. 만들었다고?

"어, 그래.(여전히 놀라있는 중) 아들, 와 정말 잘 했네. 아니 이 어려운 걸 어떻게 보지도 않고 만들었어?"

"몰라요, 그냥 생각나는대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나왔어요."

"그래? 정말 대단하구나." (궁디팡팡)

"아빠, 저 애들이 이거 보더니 저보고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뭐라고 하디?"

"El Rey del Origami, 종이접기 왕이래요!"

"그래, 맞네, 왕 맞네, 아들, 대단해, 자랑스러워."


한껏 치켜세워주고, 힘주어 칭찬하자 녀석은 기분 좋으면서도 스스로도 놀라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빠, 그런데요, 진짜 신기해요."

"뭐가 신기하니?"

"제가 어떻게 이걸 안 보고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러게 말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친구들한테 휴대폰 빌려달라 해서 본 건 아니고? ㅋㅋㅋ"

"아휴, 아빠, 아니에요. 제 생각엔 맨날 유튜브 보고 따라 하다가, 저도 모르게 손이 알아서 접은 거 같아요."

"그래, 매일 다양한 거 보면서 연습하다 보니 이런 완벽한 작품이 나왔네. 그런 걸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아니?"

"글쎄요. 뭐라고 해요? 참, 그 전까진 따라서만 한 건데, 이렇게 못 보던게 나오니까 기분 엄청 좋아요."


직업병 마냥 영어로 알려주려 하니 아이는 대번에 화제를 돌린다. 흥.


테스 형 말고 텔레스 형이 그랬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Imitation is the mother of creation.


아울러 새해 결심 마다 언제고 탑 3 안에 드는 영어 정복 (영어는 산도 아니고 웬수도 아닌데... 워낙 끝을 봐야하는 한국인의 기질이 잘 반영된 예일듯), 그 대장정 중 작심삼일로 치달을 때 제일 많이 인용되는 말.

Practice makes perfect. 연습하세요, 연습하면 다 됩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색종이며 종잇장들이 저 고사리 손을 거쳐갔을까. 그렇게 무수히 접히던 종이들이 아이에게 절로 깨우침을 주어 보는 아빠로선 흐뭇하다. (됐어! 앞으론 녀석이 실망하거나 포기하려고 하면, 종이접기를 생각하고 계속 연습해라! 라고 얘기해 줄 꺼리가 생겼어. 라는 므흣함을 녀석이 알까, 설마)


본의 아니게 음험한 아빠가 되건 말건 종이접기 왕으로 등극한 녀석은 오늘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언가를 접는다. 한량인 나도 종이접기로 모방과 연습의 수련을 거쳐야 할까. 종이접기 마스터인 동생에게 몇 수 접고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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