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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Mar 10. 2021

나는 느린게 아니라 다를 뿐이다

두 나무의 봄맞이를 보며

대도시 마드리드를 벗어나 서울 인구밀도의 1/7 밖에 안 되는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 자리를 잡은지 1년 반이 지나간다. 수도 보다 싼 물가, 거리마다 풍부한 문화유산들, 대학가로 인한 전반적인 교육 분위기 등 살면서 이 곳이 마음에 드는 요소를 하나 둘 발견하며 삶의 차분한 재미를 맛보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안방에서 바라보는 한적한 공원이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공원에 심겨진 나무들이다. 싱그런 자연을 일 년 내내 눈 앞에서 마주한다는 건 분명 콘크리트와 네모 반듯한 벽돌 틈에서만 자라온 도회지 사람인 내게 분명 축복이다.


높이로 보아 족히 십 수 년은 되었을 법 싶고, 두께로는 어른 셋 정도가 둘러쌀 정도로 적당히 무게감이 있는 아름드리 나무 두 그루가 바로 안방 창 옆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고개만 돌리면 무성한 가지에는 참새며 까치, 비둘기처럼 한국에서도 흔히 보는 새부터, 찌르레기와 앵무새까지 다양한 새들이 자신들의 휴게처 삼아, 와서 노닐다 가곤한다.


올해 폭설 때 다른 나무들은 군데 군데 부러졌음에도 품종도 모를 이 나무들은 마구 뻗은 가지가 그물이라도 된 것 마냥 얽히고 설켜 서로를 버티게 해 준 건지, 꺾인 것 하나 없이 멀끔하게 잘 견뎌냈다. 30센티로 쌓인 눈의 무게를 어찌 견딘 것인지 다시 생각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한창 봄을 맞이하는 요즘, 나무의 싹들이 더 생기 있게 다가온다.


헌데 어느 날 보니 그 싹눈은 창문 앞에 바로 나 있는 왼쪽의 나무에만 잔뜩 있다. 두 시 방향 오른편의 나무에선 연두빛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혹시 폭설과 같은 이상기온 때문에 그만 고목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염려들었다.


다행히 기우였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가지 끝에서부터 자그마한 싹들을 틔우기 시작했다. 얘는 얘대로, 쟤는 쟤대로 자신의 시간에 맞춰 가고 있을 따름이다. 순간순간 마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남과 비교하고, 남을 따라잡으려 하고, 남을 미워하느라 얼마나 나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던 것인가.


그저 햇살이 비추는대로 가지를 뻗쳐가고, 바람이 부는대로 흔들려 가며, 좀처럼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기후 속에서는 한 번 비를 맞이할 때마다 쭉쭉 진액으로 빨아들이는 나무. 그 웅숭깊음을 내 안에 담아본다.


애당초 비교할 것도, 따라잡아야 할 대상도, 미워해야 할 존재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러니 그 나무는 느린게 아니다. 더뎌서 쓸모없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를 뿐이다. 심긴 종이 다르고, 시간이 다르며, 장소도 다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러하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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