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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May 01. 2021

Are you OK? No Problem.

Don't Worry & I Love You - 말의 힘

아내와 오랜만에 김창옥 강사의 강의를 시청했습니다. 유머와 감성을 쉬임없이 건드리는 그 분 특유의 입담은 청중 뿐 아니라, 화면으로 보는 저희 부부 마저도 확 휘어 잡았습니다. 미국 엄마와 한국 엄마의 차이라며 접시를 깼을 때의 상황을 보여주었어요. (글 제일 아래 링크 걸었습니다)


영화속 미국 엄마: Are you OK? No problem. Don't worry, and I love you.
현실의 한국 엄마: 다 깨부러. 다 깨부러. 뭣헌다고 남겨부냐. 다 깨부러.


둘이서 어찌나 빵 터졌든지, 몇 번을 웃었습니다.

같은 네 마디의 말인데, 온도차가 너무나도 컸지요.

아내와 저는 부지런히 저 말을 따라했습니다:

아유 오케이? 노 프라블럼. 돈 워리. 앤 아이 러뷰.


이렇게 짧고도 쉬운 말만으로도 사랑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니.

그래, 무슨 일이 생기든 일단 저 말로 아이의 놀란 마음부터 달래주고, 사랑으로 안아주자 했습니다.


마침 저희의 진심어린 결심을 온 우주가 알았나 봅니다.

동영상을 본지 채 한 시간이 안 되어 바로 실습의 기회가 주어지더군요.


점심 먹으러 집에 온 막내가 뭘 하다 그랬는지, 그만 상 위의 국그릇을 떨어뜨려 깨고 말았지 뭐에요.

크게 깨지는 소리와 함께 맞은 편 오빠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자 유치원생 막내는 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본 순간 아내와 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을 했어요.

Are you OK?
No problem.
Don't worry.
And I love you.


그러면서 막내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이걸 다정다감하고도 스윗하게 해 줬어야 하는데, 저희 부부는 발성연습 하는 연습생 마냥 크고도 우렁차게 거기에 발음도 또박또박 해버린 탓에, 아이는 안 그래도 깨진 그릇에 놀랐는데, 위로한답시고 하는 엄마 아빠 조차 모션을 크게 하며 마이크 테스트 하듯 큰 소리를 내니, 그야말로 어찌할 바를 몰라 품 안에서 고개를 푹 파묻었어요. 그렇게 아이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그걸 보는 엄마와 아빠는 둘 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어떻게든 막느라 정말 너무나도 힘들었네요.


놀라운 건, 그렇게 성대모사 하듯 정말 괜찮다는 감정을 가득 담아 말해주고, 가슴 팍에 꽉 안아 주고 나니, 짧은 시간임에도, 아이는 놀래서 울던 눈물을 닦고 그새 싱글벙글해져 있었다는 점이에요. 김창옥 교수님의 커뮤니케이션 강의에서 오은영 박사님의 육아 프로그램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저 어렸을 때를 떠 올려보면, 부모님께서 저를 두고 뭐라 하신 적이 없었어요. 제가 딱히 사고를 칠 만큼 대단한 행보로 두각을 나타낸 적은 없었지요. 하지만, 당시 학생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시험과 성적이지 않았겠어요. 그럼에도 중간, 기말, 모의 고사 등 각종 시험으로 성적표를 가져 오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시험을 잘 보면: 시험 잘 봤구나. 그래, 잘 했다. 수고 많았어.
시험을 못 보면: 잘 못 봤구나, 그래, 수고 했어. 다음에 잘 보면 되지.


정말 싱거울 정도로 심플 그 자체였습니다. 두 분 중 어느 한 분 만의 말씀이 아니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입이라도 맞추신 것처럼 언제나 간단한 말씀으로 끝내셨습니다. 다시 말해, 잘 보면 - "그래, 잘 했다"로 끝, 못 보면 - "그래, 다음에 잘 해"로 역시 끝! 군더더기가 일체 없으셨습니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굳이 물어볼 일도 아니지만, 사실, 속에선 얼마나 애가 타고, 때론 속상하기까지 하셨을까요.


그렇게 거의 간섭청정지대나 다름 없는 학창시절을 보낸 저는 나름 북유럽 스칸대디와 같은 아빠가 되어 보겠다며, 주부아빠의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고 나섰음에도, 번번이 다혈질에 욱하는 부끄러운 아빠가 되는 걸 참 많이 봤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일어나서부터 눕기까지, 잔소리를 줄일 수가 없네요.


겨우 초등학생인 둘째만 봐도 저는 시험공부를 도와줄 때도, 시험을 보고 왔을 때도, 항상 마음 속에선 된장찌도 끓이고, 전골에 탕도 올렸다가, 푸더덕 거리는 팥죽이며 호박죽 마냥 늘상 화력이 식질 않습니다. 초등학생만 두고도 이 정도인데, 앞으로 중학교, 고등학교는 어떻게 제 자신을 control 하며 갈 수가 있을까요?


아유 오케이, 노 프라블럼, 돈 워리, 앤 아이 러뷰.

주문과도 같은 저 네 문장을 몇 번이고 읽고 새겨야겠습니다.

내친 김에 노트에 크게 쓰고 뜯어서 벽에 붙였습니다.


써 놓고 보니 이건 아이가 아닌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저 괜찮아요. 문제 없어요. 걱정 마세요. 사랑해요.


멍하니 쳐다 봅니다. 무표정 했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집니다.

그래요, 그렇게 오늘도 성실한 한량의 하루를 시작하고 이어갑니다.



*두 엄마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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