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피가 흘렀다, 엄지에서. 아이들이 먹을 짜장면에(링귀니 면+오뚜기 짜장 조합) 넣을 시원한 오이를 채칼에 서걱서걱 밀던 중이었다. 평소라면 아무 탈 없을 일이었다. 그 날따라 마음이 급했다. 급한 마음에 썬 오이는 길쭉하게 나오지도 않았다. 힘주어 잡은 오이를 빨리 썰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팍팍팍팍. 일단 소리는 경쾌했지만, 때 벗기듯 문지른 오이는 잘록하게 끊어져 있었다.
그러다 그만 나도 모르게 오른손 엄지가 푹 하고 채칼 사이에 들어갔다. 순간 놀래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촤아아, 얼른 찬물을 틀어 피를 흘려보냈다. 쓰라림이 올라오기 전, 부왁 소리에 맞춰 키친타월 한 장을 뜯어내 재빨리 손가락을 감쌌다. 잠시 후, 피가 멎은 듯싶어 휴지를 걷어내고 바셀린을 발랐다. 연고가 닿기 무섭게 다시 피가 스멀스멀 베어나려 했지만, 불투명한 페트롤리움은 '익스펙토 페르로눔!'의 주문이라도 통한 듯, 피의 쿠데타를 그대로 덮었다.
이 모든 건 이달 초 아들 친구 생일 파티에서 처음 만난 자리였음에도, 워낙 유쾌한 시간을 보낸 까닭에 대번에 친구처럼 된 부부를 다시 만나면서였다. 겨우 두 번 만났는데도 이미 익숙한 듯, 그러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의 얘기를 듣고 나눴다. '나'라는 인간은 코로나로 세상 무너지는 것보다 사람 못 만나는 걸 더욱 힘들어할 사람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대화와 수다의 경계에서 시간은 어느새 신데렐라의 마법이 끝날 시간을 넘겨버렸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임을 아쉬워하면서도, 유치원에서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며 부랴부랴 뛰어갔다.
우사인 볼트도 아니고 축지법을 부리지 않고서야, 도보 30분 거리를 픽업 시간 2분 남겨두고 학교에 도착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처음으로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갔다. 세 아이들 모두 집에서 점심을 먹기 때문에, 학교로 가서 집으로 데려가야 한다. 오전 등교, 점심 전과 후, 오후 하교 이렇게 하루에 네 번을 왕복하며 유치원 다니는 막내와 초등 4학년 둘째를 챙기는데,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려 하루에 125분이다. 두 시간을 넘긴다. 일주일 닷새 등교면 벌써 10시간이고, 한 달이면 최소 40시간이다. 명랑하고도 사랑 넘치는 아파트 광고의 한 장면처럼 룰루랄라 하며 올 때도 있지만, 투덜거리거나 징징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학교와 집은 사실 도보 10분밖에 안 걸리지만, 막내와 둘째 사이에 기다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오가며 보낸다. 때로는 그 시간은 글감 소재를 얻거나 글쓰기의 생각을 발효숙성시키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병원이나 은행 대기처럼 혼자만 있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 겨우 일 년 남짓 하는 기간을 보내는 나도 이렇게 아까워하는데, 이미 십 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대충 계산해도 150일이다!) 아내는 오죽했을까, 하는 깨달음을 얻긴 했지만, 깨달았다고 해서 아까운 시간이 유튜브 광고수입처럼 적립되는 건 아니다.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다.
막내를 찾자마자 아내와 먼저 집으로 보내고, 나 역시 15분 후 둘째 나오기가 무섭게 집으로 데려갔다. 집에 도착하면 오후 1시 반이다. 오후 2시면 이번 주 토요일 저녁 7시 인사이트 나이트 리허설 줌미팅이 있다. 내 점심 준비해서 먹고, 아이들 점심 준비까지 주어진 시간 단 30분. 아내는 바로 짜장면을 준비하며 파스타 끓일 물을 올렸고, 나는 라면을 끓였다. 5분 안에 끓여내고, 다시 5분 안에 먹는 라면은, 평소에는 하나도 안 바쁘다가, 이상하게 바쁠 땐 한꺼번에 산사태 마냥 와르륵 쏟아지는 상황에서, 기가 막힌 구호품이다.
해물탕면을 해치우며 파스타 면을 삶는 동안, 곧바로 아내를 위해 안성탕면을 올린다. 번개같이 짜장 소스 준비를 마친 아내는, 햇볕 좋은 때 빨래를 널러 벌써 베란다로 나갔다. 척척 마친 아내는 다시 부엌으로 오자마자 면과 소스를 섞어 스페인 풍 짜장면을 맛깔스럽게 차려낸다. 살짝 짭조름한 듯싶어 아내가 완성한 것에, 내가 장식도 할 겸 아이들에게 생색도 낼 겸오이를 올려본답시고, 인사이트 나이트 미팅 시간 6분을 앞두고 채를 썬다.
그러다 그렇게 사고를 쳤다. 어휴...
아이가 셋이라 안 그래도 굳이 시트콤을 볼 필요가 없는 일상인데, 이 날 아빠는 깜짝 출연했다.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한바탕 치른 후 미팅에 들어가 보니, 다들 모여 계셨고 출석체크를 맡은 아빠는 2분 지각을 했다. 발표자 분들의 리허설을 듣는 동안, 연신 고개 끄덕거려가며, 역시나 팀라이트 작가님들은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분들의 걸출한 능력은 태생이 남다는 게 아니라 다들 남 모르는 노력에 있었다. 세상은 공짜로 되는 게 없다. 그분들의 멋진 결실 또한 그간의 노력에 비례한다는 걸 알게 되어 감사했다. 초짜 작가인 나도 부지런히 쓰련다 마음먹으며, 말씀 중간중간 필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작 엄지 하나 아픈 걸로 잘 안 써지니, 공연히 펜만 허공에 돌려댄다.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살짝 찢어진 것뿐인데도 의외로 살이 잘 안 붙는다. 게다가 여기 반창고들은 죄다 멸균거즈에만 신경을 쏟았는지 접착력은 꽝이다. 그냥 바셀린만 바른 채 맨손으로 있는 게 차라리 나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평소 안중에도 없던 엄지의 활약이 시작됐다.
휴대폰 문자는 책상에 두고 검지로 보낸다.
펜 잡는 게 어려우니 지렁이가 노트를 기어 다닌다.
자판 치며 글 쓰는데, 오른손 엄지가 사이띄개 전담이었을 줄이야.
피아노 치는데 엄지의 터치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피 질질 건반이 되니, 호러물이 따로 없다.
무엇보다도 왼손으로 코 풀어 보신 분? 아니, 내 손인데 왜 내 맘대로 안 되지? 하며, 몇 번을 풀어도 나 좋다며 머무는 코 때문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피식거리는 웃음이 덤으로 따라온다. (궁금하면 오백원, 아니, 이따가 화장실 가서 해 보세요, 아하하하)
고작 엄지 하나 아픈 걸로 브런치 글 발행도 안 하고 잤다. 선배처럼 따르는 스테르담 작가님 가라사대, 작가는 '쓰기의 어려움보다 안 쓰는 괴로움을 더 견딜 수 없는 사람'이라 했다. 손가락이 아파 글을 못 쓰니 녹음이라도 하든지, 휴대폰 메모앱의 음성 인식 단어 자동완성을 이용해 몇 문장이라도 옮겨 놓아야 하는데, 채칼에 베인 엄지는 그 모든 걸 내려놓게 만들었다. 마땅히 뭐 하나 생산물을 내놓은 것 없이 잠들려니 자는 게 어렵다 못해, 억울한 마음마저 든다. 그나마 이런 나를 보고 스스로 '그래, 난 작가의 기질이 있는 거야.'라며 어불성설 촌스런 위안이라도 삼았다는 점이 이 날 오후의 유일한 소득이랄까. 어휴..
영어 표현 중 all thumbs at 은 뭔가에 서투른 걸 말한다. 예를 들어, I'm all thumbs at cooking.하면 <난요리엔 젬병> 이란 뜻이다. 생각해 보라. 다양한 크기로 자르고, 다듬고, 휘젓고, 뒤적이며 요리를 해야 하는데, 모두 엄지뿐이라면 얼마나 형편없는 결과물이 나오겠는가. 그래, 모두가 똑같으면 그건 좋은 게 아니다. 하지만,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건 중요하다.
실제로는 116년이나 걸린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당시, 영국의 석궁 병사들을 사로잡은 프랑스 병사들이 석궁을 다시는 못 쏘게 영국군의 검지와 중지를 잘랐던 일 때문에, 지금도 영국에선 손등을 보이며 V자를 하는 건 욕이 된다는 잔혹한 역사의 장면까지 애써 들춰보지 않더라도, 검지와 중지가 중요하다는 점이야 두말할 나위 없지만, 엄지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채칼과 오이 덕에 다시 보는 엄지의 위엄이다.
쓰다 보니 왠지 나도 엄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평소에는 티도 안 나지만, 없으면 보고 싶고, 허전해서 찾게 되는 사람 말이다. 보통 때는 찾지 않지만, 지장 찍을 때는 나를 대표해 주는 엄지 말이다. 첫 손가락에 꼽는다는 말처럼, 탁월한 실력을 가진 엄지 같은 사람 말이다. 하긴, 구독과 좋아요가 대세인 지금이야 말로 엄지의 전성시대 아닐까. 더디지만 분명 나을 엄지, 새 살이 오르면, 막힘없이스페이스눌러가며띄어쓰기해보리라.
덧 1. 하지만 구태여 그 글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엄지는 무탈한 바, <성실한 스페인 한량> 본 계정의 글에 일단, 좋아요와 구독, 거기에 공유까지 성원해 주시면, 여러분의 한량없는 은혜가 지구 반대편의 땅 스페인의 한량에게 임하여, 각골난망과 결초보은의 자세로 더욱 글쓰기에 정진하겠습니다.
덧 2. 이번 글 발행 번호가 108 이라니, 일상의 재발견을 담은 짧은 글 하나에 백팔번뇌가 깃들었음을 브런치도 알았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