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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un 03. 2021

바보야 문제는 체력이야

글쓰기도 육아도 살아서 하는 일상의 모든 것은 체력전

팀라이트 이야기

서로의 성장과 선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스테르담 작가님의 공모 아래 브런치 작가들이 모인 <팀라이트>.

스페인에 있는 까닭에 팀라이트의 작가님들 중 어느 누구도 대면한 적이 없다. 그저 줌미팅과 단톡방의 나눔, 그리고 각자의 브런치에서 댓글로 듬성듬성 아는 게 전부다. 하지만, 주축인 스테르담 작가님의 너그러운 인품이며, 익히 그분의 글이나 강의를 통해 믿고 모인 작가님들 역시, 각자의 개성 속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분위기 덕에, 조심스럽지만 살아있는 모임으로 조금씩 틀을 갖추어 갔다. 모임은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한 대화와 동시에 대학 동아리 MT라도 온 듯한 수다가 오가며 서로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덕분에, 몸만 떨어져 있을 뿐 마음으로는 바로 옆에 있는 느낌을 매번 느꼈다.


그런 팀라이트의 작가들이 강연자가 되어, 발표하는 본인도 듣는 청중도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통찰력을 얻는 진중 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정기행사, 인사이트 나이트 <글이 모여 작품이 되다>를 지난주 토요일에 가졌다. 역시 여느 때처럼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스테르담 작가님의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 이현진 작가님의 <우당탕탕 펀딩일기>, 숲지기 마야 작가님의 <에디터의 마음을 사로잡는 출간 기획서 작성법>, 세 강연 모두 자신만의 도전과 경험에서 얻은 알짜배기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연사로 나선 작가님의 발표 자료마다 깃들인 정성이 보통이 아니었기에, 두 시간 꽉 찬 강연 내내 머리로는 이해하고 열심히 필기는 했어도, 그대로 따라가기에는 감당할 깜냥이 안 됨을 알았다. 이런 게 흔히 말하는 <내공>이었다.


본 강연뿐만 아니라 리허설 때부터 이미 감지한 바였지만, 그 누구도 갑자기 인생 한방의 로또 대역전극을 맞은 사람은 없었다. 누워서 휴대폰을 보다 졸아 얼굴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삶에 회의를 느끼고, 그러다 써 나가기 시작한 한 줄, 한 문장의 글이 모여 7권이나 되는 책을 써낸 직장인 작가도, 하나도 제대로 감당하기 버겁다 싶은 마당에 무려 5개나 프로페셔널한 현직으로 뛰는 프로N잡러 작가도, 글쓰기로 번아웃을 벗어난 후 브런치 공모전 응모에 이어 아예 직접 투고에 나서 출간 계약까지 이끌어낸 전략적 작가도. 내가 볼 때는 그야말로 성인이 다 되어 극기훈련을 치른 분들이었다.

세상에 던져진 자들 중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는 없다. 저마다의 고민과 걱정은 책 한 권을 줄줄 써 내려갈 정도이다. 어떻게 저걸 버틸 수 있지. 어떻게 그냥 견디는 수준을 넘어 유지하고 본인 삶의 일부로 만들 수 있지. 물론 이런 방법론적인 질문 이전에 '왜'라는 근본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지금 그분들의 일급비밀 노트가 제공된다 해도,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 그럴까.



'나'라는 인간

운동을 안 하다 못해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집돌이로 제법 살아왔다. 집에서 피아노 치며 책 보는 게 좋고, 친구를 만나도 집으로 초대하는 걸 좋아했다. 집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학교에서도 동아리방에 한 번 들어가면 다음 수업 전까지 그대로 앉아서 오가는 사람과 얘기 나누는 걸 좋아하던 나다. 그러면서도, 역마살 낀 듯 한 번 나가면 물도 안 마시고 부지런히 발품 팔아 다니며, 답사와 탐방에 열을 내는 모순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대신 그렇게 진을 쏟고 나면 몇 시간이고 잠으로 충전을 해야만 했다. 군 복무 2년을 제외하곤 항상 말랐다는 얘길 들으며 살아왔지만, 딱히 잔병치레를 치른 적도 없어 스스로 그냥 이 정도면 됐지 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단거리 달리기는 뒤쳐져도 장거리에선 학생 때도 카투사 복무 때도 top 3 안에 들었기 때문에 체력은 좀 떨어져도 정신력은 누구 못지않다 자부했었다.


자아에 대한 믿음이 깨진 건 슬로바키아에서 아이를 갖고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정신력의 승리를 외치기에는 체력이 역부족이었다. 그런 와중에 3년 후 둘째를 가졌다. 귀한 생명을 둘이나 얻은 기쁨은 있지만, 아이가 좀 커서 잊을만한 때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은, 미안하지만, 쉼 없이 돌을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 생각까지 가진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역시나 체력 부족이다. 운동해라, 운동 좀 해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얘기였어도, 게으른 나는 어떻게든 비적대다 보면 넘어가겠지 하며 그렇게 나를 가두어 갔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체력이 좀 부족해도 크게 티가 날 게 없었다. 아직은 30대 초반이라 그냥 나이가 방패막이를 해 준 셈이다. 하지만 스페인에 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일단 스카우트된 대기업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를 보내며 정신도 무너지고 육체도 같이 붕괴되었다. 별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당시 상사의 폭언과 인격모독에 시달렸어도 체력적으로 건장했다면, 그냥 맷집 다지기 정도로 넘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면 적어도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집으로 가져와 매일 눈물 쏟는 일도 없었을 것 같다. 


그렇고 그런 그저 간신히 버티는 정도로 10년의 직장인 가면을 벗고, 다시 영어 강사로 뛰고, 그러다 가이드를 하며 인생의 꽃을 본격적으로 피웠다. 그 사이 셋째는 무럭무럭 컸고, 수시로 책을 읽어 달라며 조르는데, 밥 먹고 읽는 책은 그야말로 눈이 자동으로 감기는 수면제였다. 육아와는 별도로 그 좋은 천직을 업으로 누리면서도 체력의 한계를 몇 번 맞이한 적이 있다. 




저질 체력 에피소드

처음엔 가이드 연수였다. 손님을 보살핀 것도 아니고, 가이드의 눈치를 살필 일도 일체 없었다. 그저 버스 타고 따라다니면서 동선 파악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마지막 날 심한 몸살을 앓았다.

 

두 번째는 정식 가이드가 되어 첫 팀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이었다. 분명 일정 기간 내내 기분 좋게 진행하고, 공항에서 인사하며 헤어질 때는 그새 정든 눈물까지 보였는데, 집에 도착하자 오한이 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죽은 듯이 잠만 잤다.


세 번째는 인솔자가 지속적으로 딴지를 걸며 압박을 주는 피곤한 사람이었다. 그 일행과도 헤어지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일정 내내 바로 옆에서 신경을 쓴 것이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마드리드행 기차를 타러 가다가 그만 허리에 갑작스러운 통증이 오면서 그대로 주저앉았고, 결국 앰뷸런스로 후송되어 응급실로 갔다.


네 번째는 몇 주 째 연이어 일정을 진행하던 중, 피로 누적으로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몸살과 오한 증상으로 목욕 도중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 다음 날에도 몸살은 계속되었는데, 신기하게도 거리 활보 중에도 마이크만 잡으면 몸의 떨림이 사라졌다.




바보야 문제는 체력이야

문제는 위의 자잘한 에피소드가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를 다닐 때 겪는 객지에서 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 달 전 4월 인사이트 나이트 <인문학 여행>의 스페인 가이드를 맡아 강연을 마쳤을 때도 비슷한 증상이 일어났다. 배탈에 몸살로 대낮에 무려 네 시간이나 뻗어 잤다. 그만큼 신경을 썼다는 것보다도, 한 시간도 안 되는 강의로 탈이 났다는, 기네스급 저질체력에 놀랬다. 결국, 나 자신에게 속이 터졌다.

헌데, 저질체력의 끝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아무 말도 않고, 그저 앉아서 쓰기만 하는 글쓰기에서도 일이 생겼다. 바로 이틀 전 김선 작가님과 같이 집필 중인 매거진 <태양의 나라 스페인과 멕시코>의 스페인 종교편을 써낼 때였다. 정보전달과 메시지를 잘 넣어 보고 싶은 마음에, 내용 구성에 대한 고민도 고민이었지만, 이 역시 체력이 뒷받침되면 집중력은 탄력을 받아서 진즉에 끝냈을지도 모른다. 일주일 간 끙끙 앓다가 몇 시간을 두고 겨우 써냈는데, 마치고 나니 무거운 숙제를 끝낸 기분에 탈진해서 뻗었다. 겨우 한 꼭지 썼을 뿐인데.


탈 난 에피소드만 줄줄이 적으니 풍류를 즐기며 노니는 한량이 아니라 노상 골골 대는 노숙자의 모습으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아닙니다. 하루 세끼 중 단 한 번도 아니 거르고 꼬박꼬박 챙겨주는 아내 덕에 잘 먹고 있습니다. 본 식사뿐 아니라 후식에 사이사이 간식까지 잘 건사합니다. 심지어 비타민에 마그네슘도 복용 중입니다. 모든 건 운동을 안 해서 생긴 체력 저하가 문제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체력

앞서 소개한 팀라이트의 세 작가님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려 봤다. 루틴한 삶이 있다. 특히, 하루키 작가의 경우, 매일 본인 체력을 위해 조깅을 하고, 마라톤에 도전한다. 갑자기 영감 받았다고 미친 듯 몰입하고, 끝나면 방전돼서 뻗는 게 아니었다. 우직하게 소 밭 갈듯, 정해진 시간, 정해진 패턴으로, 하얀 백지에 끊임없이 자기의 생각을 적어 내려가며 대작의 필력을 뒷받침할 체력을 놓치지 않는다. 일흔을 넘고도 여전히 왕성한 집필이며 강의를 마다하지 않는 그의 원동력은 체력에 있다.


출간 작가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더 귀를 쫑긋 세운 인사이트 나이트. 

문어발 글쓰기로 추후 출간될 책들의 pool을 마련하고, 계속 글을 퍼올리며 이미 브런치 발행 글만 1400여 개에 달하는 스테르담 작가님. 대기업 직장을 다니면서도 지금도 하루에 글 한 편 이상씩을 펴내고 있어 가히 글 자판기, 글 AI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글을 담아내는 그분을 내 롤모델로 삼는다면, 내게 지금 필요한 건, 필력도, 매일 한 편의 글도 아닌 체력이다. 글쓰기를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체력 말이다.

 

프로N잡러로 일하면서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도전과제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분석하고 알아가며 부딪혀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이현진 작가님. 젊은 나이임에도 이미 인생 N회차는 해봤을 것 같은 기획력과 지치지 않는 도전 의식 역시 -본인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체력에 기인하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그냥 젊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탐구하고 '모르면 이 참에 배우고 알면 되지' 하는 그 정신이 순수하고 아름답다. 


투고 한 건만을 두고도, 100여 개에 달하는 출판사의 정보 수집은 기본이고, 차별화된 기획서로 에디터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전략을 세운 마야 작가님. 내가 에디터라도, 편집장이더라도 그 정성이면 당연 승인이다.

이 분의 자료는, 보는 것만으로도 넘사벽이지만, 7장에 달하는 세밀한 일반 기획서며, 12장의 파워포인트형 기획서를 만드는 것도 결국엔 체력전이겠구나 라는 걸 실감했다. 팀라이트에서도 아이디어가 넘치고 각종 편집 tool 실력도 뛰어난 데다,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아 이미 마테일(마야+디테일)이라는 별명도 있지만, 전략적인 치밀함에 우리는 마갈량(마야+제갈량)이라는 별명도 새로 붙였다. 나는 강의 내내 강력한 전사 이미지가 떠올라서 아마야(아마조네스+마야)라고 불러드리고 싶다. 이 분 역시 내 롤모델로 삼는다면, 내게 필요한 건 첫째도, 둘째도 체력이다. 

 



지금 해야 할 것은

20년 전 카투사로 군 복무 당시 틈만 나면 하던 게 push-up이었다. 자세를 제대로 잡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도 지금처럼 워낙 엉성하고 허당 인터라. 하지만 분명한 건 매일 새벽 PT 시간뿐만 아니라, 일과 중에도 졸음이 몰려오거나 바쁜 일이 없으면, 있는 자리에서 바로 엎드려 이삼십 개씩 끊어서 팔굽혀 펴기를 했었다. 그때의 모습은 지금의 내가 봐도 부럽다. 다부지게 다져진 몸에서 나오는 미소도 자신감도 여유도 썩 괜찮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업이 언제 재개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미 일 년을 기다렸는데, 까짓 거 한 해 더 못 기다릴까 하는 객기도 부려본다. 만약 당장 다음 달, 아니 다음 주부터 라도 일을 다시 시작한다면, 과연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지난 사례를 보고 나니 더욱 확고한 결심이 선다. "그래, 쉬는 동안에도 잘 대비한 자가, 다시 일어날 때에도 멋지게 맞이할 자격이 있지." 


자신감 넘치던 그때로 가야겠다 :

김병장, 엎드려! Get down, SGT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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