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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May 07. 2021

Surprise Me!

일상과 반전

작가가 대중에게 보일 수 있는 가장 큰 존중은

예상되는 것을 만들기 보다 본인과 타인이 도달한

지적 발전의 단계가 무엇이든 간에

본인 스스로 올바르고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창조하는 일이다.


-괴테


An author can show no great respect for his public

than by never bringing it what it expects,

but what he himself thinks right and proper in

that stage of his own and other's culture in

which for the time he finds himself.


-Goethe


Die größte Achtung, die ein Autor für sein Publikum haben kann,

ist, dass er niemals bringt, was man erwartet,

sondern was er selbst auf der jedesmaligen Stufe eigener

und fremder Bildung für recht und nützlich hält.


-<Maximen und Reflexionen Nr. 418>

Johann Wolfgang von Goethe




Q. 무엇이든 여러분의 작품을 보여주세요


A.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독자들의 지성과 예상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는 것이야말로 작가로서 독자에게 가장 크게 보답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잠깐, 괴테 선생님도 작품에서 반전의 매력이 넘치던 분이었나? 나는 고전이 되어버린 그의 작품을 읽을 때 반전 보다는, 몇 번을 읽어도 따라가기 어렵고, 솔직히 재미도 덜하며 (일단 독일작가라는 점에서 노잼은 보장된... 재미는 역시 위트 넘치는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입 하하), 그저 숙제하듯 읽어 냈어야 하는 여러 고전처럼, 힘들게 따라가고 얻은 성취감이란, 그저, 그래, 나도 겨우 필독서 100권 중 몇 권을 정복했다 정도에 머무르는 수준이었다. -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모든 건, 일말의 의심할 바 없이, 제 문해력이 한참 수준 미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마치 소싯적 여행 좀 다녀봤다는 분들의 여행패턴이, 실은 나라별 깃발꽂기 경쟁에 불붙어 '나 거기 가봤다' 며 사진만 들이미는 것처럼,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일천한 경험들이었다. 그러 하기에 다른 분들은 몰라도, 나에게 고전이란 학생 때보다 어른이 되어 읽는 것이, 보다 의미 전달도 확실히 되고, 본문 이해를 넘어 내 삶에 투영하고 적용할 여지를 더 많이 남겨준다고 본다.


그래,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론을 맺는다든지, 만렙의 신공을 얻어 천의무봉의 필력으로 늘지도 모르겠다. 가능성을 점치기는 어렵지만,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처럼 위시 리스트의 하나인 건 분명하다. 아, 물론 그런 걸 다 떠나 정말 책 출간을 이뤘으면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욕망도 다분히 있다. 그런가 하면, 보다 속물적인 욕심으로, 지금까지 쓴 글들이 브런치나 다음의 메인에 등극하여, 조회수며 구독자, 좋아요, 댓글의 폭발적인 증가를 바라는 점 또한 숨기지 못할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나, 그 모든 걸 떠나서 그런 반전이나 예상을 뛰어넘는 결말을 낸다는 건, 꼭 문장 구성의 유기적인 흐름이나 풍성한 어휘를 갖추는 등의 작가로서의 기본기와 실력을 탄탄히 갖추는데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 이전에 성숙한 사람으로서, 나이에 걸맞는 연륜과 인품을 지니기만 한다면, 어느 누구든 평범한 일상 조차 반전이 펼쳐지는 상황으로 만들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고 반전을 위해 일부러 상황을 안 좋게 조성한다면, 그건 반전이 아니라 전문용어로 '삽질' 밖에 안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내다 보는 지혜와 혜안을 두루 갖춰, 보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릎을 탁 (또는 이마를 빡)치게 만드는 사람이 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본업이나 페르소나를 떠나, 누구에게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게 되지 않을까. 나이 들어 보니 지식 보다는 지혜의 영역에 속하는 이런 상황을 종종 목격한다. 특히나, 내가 점점 브런치에 빠져 들면서 얻은 유익 중 하나는, 브런치 작가들의 본문과 댓글에서 '아하!'를 외치게 만드는 '유레카 효과'를 자꾸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에 비례해, 자꾸 이마의 평수는 넓어져 가고, 무릎 연골은 시큰해 지며, 고개는 거북목을 넘어, 노호혼 인형처럼 작가님들의 글 앞에만 있으면 무한 쉐낏쉐낏 하는 일이 생기지만, 뭐 어떠랴, 일찍이 공자께선 朝聞道夕死可矣(조문도석사가의)라며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엔 죽어도 좋다라고까지 하셨는데.


노호혼 입니다, 귀엽죠? 물론,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제 고개는, 좌우가 아니라 앞뒤로 끄덕거립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서 삐쩍 마른 비평가 안톤 이고는, 자신의 펜대로 무너뜨린 식당이 재기하는 것을 보고 다시 확실히 밟아 주기 위해 도전장을 내밀듯 방문일자를 공지하고 찾아간다. 그 앞에 놓여진 음식은 너무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채소 요리, 라따뚜이 Ratatouille 였다. 라따뚜이를 내가는 전 요리사, 현 웨이터 링귀니도, 그걸 본 엄격한 비평가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상 벌벌 떨게 만드는 음식 평론가 앞에, 육즙 줄줄 흐르는 스테이크도 아니고, 향만 맡아도 쓰러질 진귀한 송로버섯 요리도, 탱글탱글한 모양만으로도 온갖 호들갑을 떨 캐비아도 아닌, 마트만 가면 흔하디 흔하게 보는 걸로 만든 가정식 일품요리를 먹으라고, 감히? 하지만, 한 입 떠 먹는 순간, 성인 안톤은 어머니의 품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어린이가 되며, 어머니의 따스한 정성이 깃든 구수하고도 사랑 넘치는 배경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가장 소박한 것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그 장면,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이후 그 음식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고 크게 놀란 이고는, 자신의 서재로 돌아와 아래와 같이 글을 남긴다. 두고두고 곱씹을 대사가 줄을 잇지만, 일부만 발췌해 본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직역 보다는 의역을 했습니다)


In many ways, the work of a critic is easy.
We risk very little, yet enjoy a position over those who offer up their work and their selves to our judgment.
We thrive on negative criticism, which is fun to write and to read.
But, the bitter truth we critics must face is that, in the grand scheme of things, the average piece of junk is probably more meaningful than our criticism designating it so. ...
To say that both the meal and its maker have challenged my preconceptions about fine cooking, is a gross understatement, they have rocked me to my core.
In the past I have made no secret of my disdain for Chef Gusteau's famous motto: "Anyone Can Cook".
But I realize only now do I truly understand what he meant.
Not everyone can become a great artist, but a great artist can come from anywhere.
...
I will be returning to Gusteau's soon, hungry for more.

여러 면에서 비평가의 일이란 쉽다.
우리의 수고는 거의 없지만,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저들의 음식을 맘껏 먹고 평가하는 위치에 있으니까.
부정적인 비판일수록 쓰기에도 읽기에도 재미있다.
하지만 비평가들이 직시해야 할 무시못할 진실은, 큰 그림에 있어,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대부분의 것들이, 어쩌면, 우리의 지적질보다 더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어제 먹은) 그 요리와 요리사 둘을 두고, 그전까지 내가 '좋은 요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에 도전했다는 정도로만 일축하는 건, 터무니 없는 과소평가다. 그건 도전을 넘어 내 근본을 뒤흔든 일대의 충격이었다.
일전에 나는 셰프 구스또의 유명한 모토 "누구나 요리할 수 있습니다"를 두고 대놓고 무시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사 그의 진심을 진실로 이해했음을 고백한다.
"누구나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위해한 예술가는 어디에서건 나올 수 있다."
...
나는 조만간 구스또 식당에 또 갈 것이다, 여전히 허기지기에.


만든 이의 노력과 성의에는 가차 없이 오직 자신의 평가만을 최고로 알던 비평가 Anton Ego - 참고로, 그의 이름 Anton은 라틴어로 칭찬 또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는 뜻이고, 그의 성 Ego는 심리학 용어로 '자아'란 뜻이니, 정말 캐릭터의 성격에 걸맞는 디즈니의 작명센스가 기가 막히다 - 그는 생쥐가 너무도 평범한 일상의 재료로 비범한 음식을 만들어 냈음에 탄복하며,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던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뒤집어 엎는다. 생쥐가 요리사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인정한 그는 자신의 기고로 음식 비평가로서의 업을 잃었지만, 비로소 너그럽고 온화한 얼굴로 인생을 즐기기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에 더 없이 행복해 보이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그는 무엇을 주문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외친다:


Surprise me!


내 삶에 놀라운 변화는 먼 데 있지 않다. 삶이 로또라면 그건 절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불행이다. 왜냐고? 일생일대, 번개맞기 보다 더 어려운 확률로, 단 한 번의 대박역전을 맞기만을 기다린다면, 99.99%의 시간이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하고 버겁고 심지어 속터지겠는가. (하긴, 가끔 로또 당첨 이후 인생 반전의 기회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신날 때가 있기에 로또의 긍정적인 면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다)


우리는 신혼부부를 보며 깨가 쏟아다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시골에서 깨농사를 지어본 분들은 안다. 깨는 한 번 털면 끝이다. 털린 깨는? 볶아야지. 그래서 깨 볶는다며 또 좋아하지 않는가. 하지만, 깨 볶는 작업도 잠깐의 시간이다. 냄새 좋다고 계속 열을 가하면 다 태워 아무데도 쓸모가 없게 된다. 결혼은 이벤트가 아니라 활이고, 인내도 필요하지만 즐거움 가득한 일상이다. 그건 발견의 차이이고, 관점의 전환이다. 그 일상을 즐거이 받아 들이고, 음미하며 향유하는 나만의 라따뚜이를 발견하고 나누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맞다, 항상 하는 얘기다, 나부터 잘 하자)



우리 이고가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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