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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Feb 03. 2022

민주적인 좀비 (5)

교수님은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교수님의 농담 덕분에 강의실의 분위기는 부드럽게 풀렸다. 청춘을 적당히 즐기라고 했던 교수님의 강의는 청춘을 즐기기만 해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아주 소수의 학생들만이 격정적으로 필기하며 교수님을 따라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저 무료한 눈으로 수업을 바라봤다. 진정한 의미의 대학강의였다. 사람들은 교수님의 강의가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그치만 그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몰랐다. 분위기는 무료했고, 따분해졌다. 조금 전에 교수님이 내게 한 농담을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혼자 그 농담을 곱씹으면서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 때 귀를 찢을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강의실의 왼쪽 구석에서 한 남자가 점차 천장을 향해 떠오르고 있었다. 남자 옆에 있던 여자는 하얗게 질린 채 입을 틀어막았다. 어떤 전조도, 예고도 없었다. 그 남자의 눈은 흰자로 가득해졌다. 몸의 어떤 부분은 구겨지고 어떤 부분은 부풀어올랐다. 팔과 다리는 관절이 사라진 것처럼 축 늘어졌다. 강의실에서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에 따라 그의 몸이 흔들렸다. 선풍기에 따라 하늘하늘거리면서 그의 발이 강의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스쳤다. 순간적으로 강의실에는 정적이 돌았다.


잠깐의 정적이 끝나자 패닉이 찾아왔다. 고함소리, 책상과 의자를 발로 차면서 도망가는 소리, 쌍욕소리가 터져나왔다. 괴성과 함께 사람들은 날뛰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속도로 짐을 챙겼고, 누군가는 모든 걸 내팽겨치면서 달려나갔다. 몸이 좋은 몇몇 학생들은 날카로운 샤프나 펜을 좀비를 향해 던졌다. 하지만 좀비가 아무 반응이 없자 그들 역시 입을 벌리고 어버버하며 뒷걸음질쳤다. 좀비가 다른 사람에게 병을 전염시킨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모두 좀비로부터 멀어지려고 했다.


물론 우리는 좀비들에게 익숙했다. 버스 정류장이나 길거리에서 둥둥 떠있는 좀비들을 한 두번 본 게 아니고, 그 좀비들을 볼 때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좀비를 보고 스쳐 지나가는 것과 좀비가 내 바로 옆에서 생기는 건 달랐다. 일그러진 사람의 얼굴보다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과정이 더 두려운 이치였다. 그건 본능이었다.  난 겨우겨우 핸드폰만을 손에 쥔 채 모든 걸 내팽겨치고 뒷문으로 달려나가서 문을 잠갔다. 안에 아직 사람이 있었지만 그런 걸 생각할 틈이 없었다. 정작 부유병에 걸린 저 남자는 어떤 소란에도 반응이 없이 규칙적으로 떠다니고 있었다. 그의 종아리에는 누가 던진지 모를 볼펜이 박혀 있었다. 두 줄기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5분 정도 지나자 구조대 2명이 도착했다. 둘 뿐이었지만, 그들은 능숙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강의실 안에 빠르게 펜스를 쳐서 환자를 다른 사람들과 분리했고, 구조대 중 1명은 환자의 핸드폰과 지갑에서 가족과 주변인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전화기에서는 고함소리와 흐느낌이 희미하게 들렸다. 1명이 어려운 통화를 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건물 입구를 막아 혹시라도 모를 전염을 통제했다. 아마 1시간 정도 뒤에 소독차가 와서 소독을 받아야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공지도 바로 이뤄졌다.


구조대가 빠르게 상황을 처리하자 사람들은 자신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회복했다. 안전을 찾자 사람들은 이익을 주장했다. 격리가 끝났음에도 100명이 넘는 학생들은 2명의 구조대가 자신의 짐을 일일히 싸서 가져다 주길 원했다. 헐레벌떡 뛰어온 행정실 직원에게 환자의 발생은 대학교의 책임이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조금 전 공포에 입을 다물지 못한 그들은 이제 분노를 말하느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교수님은 자신이 하던 수업 중간에 좀비가 생겼다는 사실이 치욕스럽다는 듯이 행정실 직원을 들들 볶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딸 뻘인 직원에게 왜 저런 사람이 입학하는걸 내버려뒀냐며 양복 자켓을 집어 던졌다. 대학원생이기도 하고 행정실 직원이기도 한 그녀는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참기 위해서 눈을 최대한 빠르게 깜박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슬렉스를 꽉 움켜 쥐고 있었다.


202호 강의실에서 소란이 벌어지자 건물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나와 2층을 바라봤다. 누군가는 영상을 찍었고, 누군가는 전화를 걸었다.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몇몇은 202호 앞으로 얼쩡거렸다. 그들은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의 살벌한 눈빛을 받고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이 건물에서 부유병 환자가 생긴 것은 처음이었던 탓일지 사람들의 관심은 강했다. 밖에 나가면 이 학교에서도 10명 정도의 환자를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약간의 두려움과 흥미진진함이 섞인 눈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누가 좀비가 되었는지를 궁금하는 눈들이 가득했다. 속이 갑자기 울렁거렸다. 난 이유는 모르겠지만 구역질이 나려고 했다. 난 모든 짐을 내팽겨치고 그냥 건물에서 나갔다. 사람들이 모두 2층을 보느라 건물을 빠져나가는 나를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다. 펜스 밑으로 살짝 기어나오니까 바람이 불었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학교 흡연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흡연을 하는 사람이 부유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유튜브 동영상이 조회수 천 만을 찍은 이후로 젊은 사람 중에 흡연을 하는 사람이 사라졌다. 담배회사에서는 그 채널에 소송을 걸었지만 이미 퍼진 영상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질병관리청에서도 담배를 끊으면 결과적으로 좋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그 유튜브 동영상을 별로 제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대학교의 흡연장을 편하게 쓸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고마웠다. 담배를 피자 아까 전의 광경이 생각났다. 다시 구역질이 났다. 속을 개워내고 싶었지만, 오늘 하루종일 먹은게 없는 탓인지 헛구역질만 나왔다. 켁켁거렸다.


조금 진정하고, 부유병이 오기 전 세상을 생각해보려고 했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부유병이 오기 전에 세상이 어땠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땐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부유병이 없었을 때의 세상은 살 만한 했던 게 분명하다. 좀비가 되면 어떨까. 아무런 이유가 없이 좀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좀비가 되면 둥둥 떠다니면서 썩어가야 한다는 사실, 사람들의 수치스러운 눈빛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 그 모든 게 끔찍했다. 뭘해도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를 위해서 노력하는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부유병이 없어지지 않는한, 난 행복해질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이러나 저러나 좀비가 되면서 삶을 마감할 거 같은데. 사람들은 이런 시기에도 힘을 내야 한다고 했지만, 애기들이 좀비 없는 세상을 살아본 적도 없는 이런 시기에 무슨 힘을 내야된다는 건지..


그치만 마음 한 켠에서는 부유병이 끝나면 기적적으로 상황이 전부 좋아질 거라는 희망도 있었다. 좀비치료제가 나오면 내 취업도 풀리고, 아빠도 10년만에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매일같이 진상을 만나느라 신경질적으로 변한 엄마가 직장을 옮기고, 매년 돈이 없어서 못하는 부엌 벽지를 새로 도배하는 일도 부유병만 끝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좀비만 사라진다면, 내 인생은 잘 풀릴 것이었다. 이 놈의 좀비 때문에 되는게 없었다. 부유병이 없어지면 뭐부터 해야 할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부유병 사태가 끝나고 모든게 원래대로 돌아간다면, 지현이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었던 지현이와 대화가 하고 싶었다.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연립주택 뒤에 있는 좁은 육교 앞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그녀의 눈에 초점이 들어오는 걸 다시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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