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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Feb 21. 2022

민주적인 좀비 (8)

우리는 다들 강남하면 높고 세련된 건물이 있고, 사원증을 목에 걸고서 출퇴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실제로 그런 회사들도 있다. 경비원이 지켜주고, 명품까지는 아니어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브랜드의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통유리 건물이 존재한다. 그런 건물들은 당당하게 강남역 사거리의 코너를 지키고 있다. 그치만 코너에서 한 칸만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풍경이 보인다. 강남의 골목 안에는 빌딩이 아닌 상가도 있다. 3,4층으로 이뤄진 곳들은 학교,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낡은 하얀색 타일로 이뤄져 있다. 보안은 세스코 스티커가 전부고, 건물 곳곳에서는 꿉꿉한 냄새가 나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그런 건물이어도 임대료는 어마어마하고, 그 건물의 소유자는 부자겠지만, 그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그런 건물의 복도에 앉아서 쇠창살로 막혀있는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대표가 도착하지 않아서 대표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었다.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있는 등받이 없는 의자는 범인들이 절도죄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취조받을 때 쓰는 의자같았다. 난 면접을 처음 온 탓에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고, 그냥 밖에를 보고 있었다. 교무실에 처음 온 초등학생처럼 나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핸드폰도 보지 않고 앉아있었다.


25분 정도가 지났다. 사무실 직원은 민망한 듯 커피라도 한 잔 드시겠냐고 물어봤지만, 난 괜찮다고 했다. 혹시 커피를 마시다가 블라우스에 튀기라도 하면, 이미지가 안 좋게 보일 거 같았다. 직원은 곧 대표님이 오실거라고 말하며 다시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도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문 바로 앞에 있는 그 직원의 자리는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곳이었다. 밖에서도, 대표실에서도 그 사람이 뭘하고 있는지가 훤히 드러났다. 사무실이 너무 좁아서 다른 곳에 자리를 둘 곳도 없어보였다. 잠시만, 그러면 지금 새로 뽑는 사람은 어디서 근무를 하지? 사무실을 이전하나? 난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직원에게 물었다.


"저기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입사를 하는 사람 자리는 어디인가요?"

"네?"

"사무실이 아담한 거 같은데, 신입사원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나오나 싶어서요."

"아...음…..그러게요. 조금 작긴 하죠. 그래도 자리를 만들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죄송해요. 제가 지금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문서가 있어서요."


그 직원은 난감한 듯이 모니터 앞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타자를 치는 소리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바쁜 건 거짓말인 게 뻔했다. 애초에 바빴으면 나를 부르지도 않았겠지. 적어도 대표가 출근을 했거나. 이 회사는 확실히 이상했다. 애초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직원이 오늘이 면접날인 것도 몰랐다는 것도 쌔했고, 수요일 11시에 대표가 오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그건 면접이 있는지 여부랑 별개로 엉망진창이었다. 합격을 하더라도 이 회사에 다니는게 맞는지 고민이 들었다. 면접문자를 받았을 때에는 무언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와서 보니 내 생각보다 무언가가 꼬여 있었다. 이건 좀 아니었다. 아무리 내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내 생각과 다른건 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면접도 보지 않고 도망간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울함을 견딜 수 없을 거 같았다. 솔직한 마음으로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40분이 흐르고 나서야 대표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대표가 내리자 술냄새가 복도에 확 퍼졌다. 아주 작은 복도라서 소주냄새가 진하게 났다. 양복에 소주를 들이부어야 날 수 있을 거 같은 냄새였다. 대표는 귀찮아보이는 느낌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은 대표가 들어오자 화들짝하며 일어났다. 대표는 직원의 바로 앞으로 가서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내가 앉아있는 곳에서는 대표의 표정과 목소리를 알 수 없었지만, 직원이 잔뜩 언 표정으로 대표에게 뭐라뭐라 변명하는 걸 봐서는 좋은 이야기를 들은게 아니라는 점은 확실했다. 대표는 귀찮은 듯이 손을 휘적휘적하면서 사무실 안 쪽으로 들어갔다. 직원이 있는 사무실과 달리 대표실은 고급가구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직원의 안내로 대표실로 들어갔다. 대표실은 과도하게 컸다. 회의용 의자에 앉아있으니까 대표의 술냄새가 나지 않았다. 대표는 자신의 업무용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로 나를 응대했다. 그의 기분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건 내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다. 솔직히 그는 날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냥 대표는 피곤해보였다. 그는 나를 앉혀두고도 한 5분 정도 전화를 몇 군데 돌렸다. 뭔가가 자신의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듯 했다. 대표는 해야 할 일을 다 끝낸 후에야 나한테 말을 걸었다.


“아 이제 면접 시작해볼까요?”

“넵, 준비됐습니다.”

“음..기본적인 인적사항이나 지원동기 같은 거는 자기소개서에서 대충 다 쓰셨을 거고…”


대표는 서류를 몇 장 뒤적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멀리서 살짝 보이는 서류는 자기소개서처럼 보이지 않았다. 난 회의용 의자에 계속 있었지만, 그는 나를 보러 탁자에 오지 않았다. 그는 계속 자신의 업무용 책상 앞에 있었다. 면접을 시작하자고는 했지만, 대표는 또 1,2분 동안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이상한 문서들을 봤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질문을 했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요즘은 블라인드니 뭐니 해서 나이를 알수가 없어서”


분명히 이 회사의 자기소개서는 블라인드 자기소개서가 아니라서 나이를 적어내긴 했는데, 지금 이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지?


“예? 아 저는 28살입니다.”

“28이요? 어우 동안이네. 근데 아직 대학 졸업을 안했는데 어쩌다가 졸업을 안했어요?”

“여러 사정이 있습니다. 크게 진로를 확보하려고 하는 노력과 가정형편을 극복하기 위한..”

“아 네네. 거기까지만 이야기해도 될 거 같고. 일단은 확실히 대학을 다니시는 중인거죠?”

“네 그렇지만 수업을 많이 듣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직장을 다니게 되면 강의는 조정가능합니다.”

“아아, 벌써 그렇게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확실히 대학생이시고, 막 집안이 엄청 부유하거나 이런 것도 아니잖아요.”

“네, 자기소개서에 썼듯이 저희 집이 여유가 있는 편이라고는.”

“됐습니다. 고생하셨고, 돌아가보셔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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