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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Mar 21. 2022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가장 진부한 사람 (1)

주식회사 티모는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유명하다. 티모의 사람들은 항상 밝은 웃음과 신나는 발걸음으로 회사의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들은 편한 트레이닝복에 맨투맨을 입거나, 청바지에 셔츠를 걸치고 회사 이곳저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아무도 일하는 장소와 복장에 대하여 지적하지 않았다.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1층 카페 구석이나 5층 테라스에서 창작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수다스러운 사람들은 회의실과 세미나실에서 편하게 담소를 나누며 일을 했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노트북과 태블릿PC가 있었다. 그 장비들에는 여러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사무실에서 사람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티모의 사람들은 예의바른 말투와 기분좋은 표정을 서로 나누면서 즐거움을 증폭시켰다. 그러한 즐거움은 티모가 새로운 기술과 혁신적인 조직문화로 업계를 놀라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티모의 인테리어는 혁신적인 사람들이 더욱 발전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짜여졌다. 그곳을 보기만 해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즐거운 상상이 계속해서 나올 것 같았다. 티모의 건물은 층마다 다른 소재로 이뤄져 있어 사람들은 매일매일 원하는 느낌의 공간에서 일할 수 있었다. 집중을 하고 싶은 날에는 하얀색의 사무적인 2층에서, 편안하게 일하고 싶은 날에는 식물이 많은 목재 느낌의 5층에서, 밖을 보고 싶은 날에는 통유리로 되어 있는 1층에서 일할 수 있었다. 혼자 있고 싶은 날에는 4층의 1인용 사무실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모든 자리에 칸막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소통을 가로막는 짓을 하지 않는 게 티모의 중요한 원칙이었다.


모든 공간 중에서 직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은 1층의 카페였다. 1층의 사무공간이 전반적으로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색감을 주는데 집중한 것과 달리, 카페는 조금씩 갈라진 목재 테이블과 검정 철제의 의자로 편안한 곳에 있는 느낌을 주었다. 디자인만 보면 그곳은 인스타에 많이 포스팅 되는 을지로 카페였다.  카페의 벽은 파스텔톤의 회색으로 빛이 반사되어 포근한 느낌과 색감이었다. 조화였지만, 벽에 붙어 있는 담쟁이 식물들은 그 공간을 영화적인 곳으로 만들었다. 카페 곳곳에 있는 스피커와 장난감들은 카페에 이야기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업무적인 공간에 녹아있는 동화적이고 장난스러운 공간에서 티모의 사람들은 밤낮을 잊고 커피를 샀다. 새벽 카페인은 개발자와 기획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티모는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직장이었다. 티모의 대표는 매일 혁신과 성장의 아이콘으로 온갖 인터뷰를 했다. 티모에 다니는 사람들은 주변인들의 시샘과 부러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월급은 재벌 대기업보다는 적었지만, 그 부자인 대기업의 직원들은 티모에 가기 위해 퇴근 후 이력서를 썼다. 심지어 몇몇 직군의 월급은 대기업보다 많았다.  직원의 즐거움과 성장, 그리고 조직의 개방성이 결국에는 가장 효율적인 길이라는 티모의 원칙을 두고 언론은 MZ세대의 피난처라고 언급했다. 35년 동안 성장해야 생존할 수 있는 자들에게 티모는 평생직장이었다.


티모는 개인의 커리어를 만들기에도 좋은 회사였다. 티모는 직원들의 외부활동이 많은 회사였다. 대표만큼은 아니지만, 티모의 팀장들은 여러 컨퍼런스와 강연에서 자신의 역량을 드러냈다. 회사는 티모의 팀장들이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을 환영했다. 그곳에서 팀장들은 다른 회사의 사람들과 달리 부드러웠다.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티모의 직원들은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인기가 많은 만큼 그들은 타인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사람들은 티모에서만큼은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티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편하게 휴가를 썼으며,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었다.


티모의 직원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 일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월급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들은 돈을 넘어선 변화를 일으킨다고 믿었다. 물론 티모는 정치를 하는 곳도 아니었고, NGO도 아니었다. 티모는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였다. 하지만 티모러는 자신들의 일과 생활이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고 믿었고, 그 변화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티모를 부러워하는 만큼, 그들은 자신이 행복하며 즐거운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믿었다. 회사의 분위기, 직원들의 태도, 스스로의 믿음을 바탕으로 직원들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아무리 좋은 곳에도 단점이 있듯이 주식회사 티모 안에는 하나의 오점이 있었다. 그는 타칭 식물담당 직원인 정주였다. 외부인들은 그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내부에서도 평소에는 그를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회사에도 하나의 흠은 있었다. 총량의 법칙은 여기에도 적용되었다. 가장 좋은 회사에서도 별로인 사람은 있었고, 주식회사 티모는 그 사람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밝게 웃으면서 대하는 티모에서 사람들은 정주만을 불편하게 생각했다. 앞에서야 적당히 웃으면서 인사했지만, 사람들은 정주의 뒤에서 정주는 왜 저런 표정으로 다니는지 수군거렸다. 사람들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왜 정주씨가 일을 하지 않고 식물에 물주는 일만 하고 있냐며 수근거렸다. 그 소리는 분명 정주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정주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정도로 회사의 분위기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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