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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Mar 29. 2022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가장 진부한 사람 (2)

정주가 처음부터 식물담당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교육기획을 하기 위해 입사했다. 사람은 기획팀에게 진취적이고, 활기찬 모습을 기대했다. 기획 쪽에 입사한 사람들은 항상 목소리가 밝고 커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3층에서 기획팀 신입이 인사를 하면 4층의 1인용 사무실에서까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티모에 새로운 기운을 가져오겠다, 에너지만큼은 자신이 있다, 이런 서비스를 제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패기 넘치는 이야기가 매번 3층에서 퍼져나갔다. 그 중 80%는 실제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기획팀 특유의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를 막진 못했다. 티모에서 가장 시끄러운 회의는 항상 기획팀 회의였다. 다른 부서 직원들은 복도를 걷다가 기획팀 회의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깜짝 놀라곤 했다.


기획팀에 교육담당으로 새로운 팀원이 합류한다는 소식에 팀원들은 모두 흥분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대화를 모두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주는 입사 당일, 기획팀에서 인사를 하면서 나른하고 무기력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첫인사를 들으면서 졸기 쉽지 않은데 정주의 인사는 졸렸다. “안녕하세요. X정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키실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 이게 인사말의 전부였다.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 게 아니라 시키는 걸 처리하겠다는 태도에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정주가 어떻게 이 회사를 들어올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경악했다. 정주는 주식회사 티모가 적으로 생각하는 무력하고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왜 기획팀에 이런 사람이 온 것일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로 눈을 맞췄다. 그 눈맞춤은 모두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새로운 동료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싸했다. 


 티모의 사람들은 기다렸다. 직원을 존중하고, 창의성과 개성을 극대화시키는 회사인 만큼 정주에게 기회를 주었다.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느리거나, 참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다시 티모스러움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미덕이었으니까. 이런 사례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전부 다 혁신적이고 대단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참신함이 여전히 없는 몇 명은 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서포트 업무를 찾거나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에게 리액션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티모에 남아있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래서 티모의 사람들은 정주를 기다렸다. 기다리다보면, 그가 알아서 할 일을 찾거나 다른 사람을 도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티모 기획팀의 기대는 무너졌다. 정주는 창조적이지도 열정적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는 회사에 어떤 헌신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누군가가 일을 시키면 그 일을 충실히 수행할 뿐이었다. 그는 항상 마감일에 일을 끝냈고, 일의 완성도는 딱 욕먹지 않을 정도였다. 정주에게는 ‘알아서’가 없었다. 그리고 정주는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이나 미안함이 없었다. 정주는 누군가가 일을 시켜야만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정주는 주식회사 티모의 누구와도 달랐다. 새로운 기술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기업인 티모에서 자신의 진부함에 사과하지 않는 사람은 정주가 유일했다. 정주는 처음 지정받은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고, 다른 부서로 인사하거나 협업하러 가지 않았다. 동사무소처럼 정주씨는 정해진 자리에서 부여받은 업무를 하며, 누구보다 먼저 집에 갔다. 모두가 야근을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모두가 미친듯이 일을 찾아다니는 회사에서 정주만이 유일하게 여유로웠다. 어느순간부터 아무도 정주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정주는 회사 곳곳에 있는 화분 근처에서만 볼 수 있었다. 정주는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주식회사 티모 이곳저곳에 놓여있는 식물을 봤다. 식물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그건 전반적으로 말라있었다. 가끔 사람들이 오며가며 물을 주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 리가 없었다. 분갈이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건 당연했다. 정주는 어느순간부터 5층 건물의 식물들을 돌아다니면서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해주기 시작했다. 잘 자라는 식물을 바꿔주고, 죽어가는 가지를 쳤고, 햇빛이 잘 드는 자리로 화분을 조금씩 옮겨주었다. 정주는 오후 2시부터 4시 반까지 상당한 시간을 건물의 식물들을 관리하는데 사용했다. 그건 정주가 자발적으로 하는 첫 번째 일이었다. 어떤 직원들도 하지 않고, 심지어 청소업체도 하지 않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정주의 일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식물을 관리하는 사람도 있어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그와 별개로 정주에 대한 인상은 더욱 안 좋아졌다. 기획팀에서 저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이었다. 식물을 관리한답시고, 회사 복도와 공유공간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자신이 저 일을 하기로 했으면서도 정주의 얼굴에서 기쁨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능력이 부족해서 기획을 하지 못해서 저런 일을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었다. 그치만 저런 표정으로 일하는건 용납할 수 없었다. 기왕 하는 거라면, 자신이 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게 티모의 정신에 부합한다. 정주의 저런 얼굴은 계속 모두에게 스트레스였다. 직원들은 이제 티모의 대표가 왜 정주를 뽑은 것인지 의구심을 가졌다. 물론 티모의 대표도 정주를 뽑은 사실을 후회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대표는 그녀를 여전히 채용하고 있었다. 대표는 그녀를 해고했을 때, 이상한 구설수가 불거져 회사의 이미지가 상할 것을 불안해했다. 


직원들은 정주씨에 대해서 더 많이 수근거렸다. 그들은 절대로 정주 앞에서 그걸 티내지 않았지만, 정주를 모르는 티모의 직원은 없었다. 더 많은 사람이 식물담당으로 정주를 인지할수록, 정주는 점점 더 회사 안에서 고립되어갔다. 처음에 정주에게 일을 부탁하던 사람들도 점점 정주에게 특별한 이유가 없이 일을 부탁하지 않았다. 상의할 일이 있어도 그녀에게 잠깐 시간되냐는 물음이 들어오지 않았다. 점심이나 간식도 같이 먹는 일이 드물었다. 회의 중에서 정주의 의견이 간혹 나오더라도 그 회의에서 그녀의 의견이 뽑히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그 의견선정이 익명으로 행해지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티모의 직원들이 악의적으로 정주를 괴롭히거나 따돌린 건 아니었다. 직원들은 모두 1대1로 대화를 할 때 정주에게 기분좋게 인사하고 그녀에게 친절하려 애썼다. 팀 단위로 무슨 일을 하거나 회의를 할 때 정주가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지 않도록 매번 대책을 고민했다. 사적으로 정주와 이야기할 때, 정주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 다들 노력했으며, 기념할 선물이 있으면 정주의 것도 신경써서 골랐다. 정주에게 티모의 직원들이 자신을 괴롭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할 것이 틀림없었다. 


 정주가 외로워진 것은 단지 그렇게 된 일일 뿐이었다. 완만한 언덕에서 돌이 굴러가는 것처럼 정주는 고립되었다. 티모의 직원들은 그저 자신과 친한 사람들과 점심을 먹었을 뿐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믿을만한 사람과 밥을 먹었을 뿐이며, 자신이 맡길만한 사람에게 협동을 제안했을 뿐이었다. 그건 어떤 적개심도, 악의도 찾을 수 없는 순수한 행동이었다. 단지 정주가 누구와도 제일 친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가장 믿음직스러운 상대가 아니었을 뿐이다. 누군가와 친한 것이 그 사람의 인성이 아니듯이 누군가와 멀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이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직원들은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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