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60년대 홍콩을 흑백사진에 담아내 동양의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사진작가 하번(何藩)은 영어이름 'Fan Ho'로 전 세계에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931년 상해에서 태어나 18살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온 그는 이안식 롤라이플렉스(Rolleiflex)를 들고 홍콩의 거리를 프레임에 담았고,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순간들을 절묘하게 잡아낸 그의 홍콩 사진들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당시 300여 개의 국내외 사진 관련 상을 수상하게 된다.
10대에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20대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많은 작품들을 남기며 1960년대까지 사진작가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 2016-2024 Fan Ho Trust and Estate
하지만 아무리 세계적인 주목을 받더라도 1960년대 홍콩에서 사진작가로 살아 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사진작업과 병행해 그의 인생 두 번째 커리어를 시작한다.
배우로... 왜냐하면 그는 영화를 너무나 사랑했고, 잘생겼으니까. 1961년부터 홍콩의 가장 큰 영화스튜디오 중 하나인 쇼브라더스(Shaw Brothers) 소속배우로 27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어느 정도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지만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1969년 그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여 1994년까지 25편의 작품을 찍게 된다.
하지만 그의 영화감독 커리어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당시 홍콩에서 영화감독들은 스튜디오가 원하는 영화를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야 했고 편집권조차 보장되지 않았다. 그 스튜디오 시스템의 희생이 된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가 직접 언급했던 작품이 1987년작 <육보단>(원제:浮世風情繪)이었다. 이후 90년대 쏟아진 홍콩의 에로틱 사극의 시발점이 된 작품이었지만 그는 말년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손을 떠나 최종적으로 편집되어 나온 이 영화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모든 영화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커리어 말년에 에로틱한 영화들을 많이 찍었고 그중에는 영화등급 카테고리 3(홍콩의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에서 흥행 신기록을 세운 작품이 있을 만큼 흥행에서도 성공한 감독이었다. 다음은 당시 그가 찍었던 영화들이다.
그는 1994년 마지막 작품을 끝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해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 즈음엔 사실 영화감독 '하번'이 아닌 사진작가 '하번'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었고 60년대 그렇게 주목받았던 그의 사진들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우연한 기회에 그의 작품을 접한 갤러리 큐레이터 'Mark Pinsukanjana'의 도움으로 2000년, 1960년대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서 개인전을 열게 된다.
이후 미국에서 개인전을 계속 열어오다 2006년 첫 번째 사진집 'Hong Kong Yesterday'를 출판하며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는 이후 2016년 미국에서 폐렴으로 사망할 때까지 홍콩을 비롯해 세계를 돌며 전시회를 열고 평범한 영화감독 '하번'이 아닌 한 시대를 풍미한 사진작가 'Fan Ho'로의 명성을 되찾게 된다.
지금도 그의 사진작품들은 '홍콩 M+박물관', '홍콩 문화박물관', '파리 국립도서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산타바바라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빛과 그림자로 빚어낸 환상적인 옛 홍콩의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